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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7 (목)

[오래 전 ‘이날’] ‘무죄’ 받았던 노회찬 ‘X파일 공개’ 그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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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뉴스][오래 전 ‘이날’] ‘무죄’ 받았던 노회찬 ‘X파일 공개’ 그러나 …

195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2009년 12월5일 노회찬 ‘X파일 공개’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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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노회찬, 함께 꾸는 꿈> 표지 | 후마니타스 제공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X파일 공개’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X파일’은 1997년 9월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부회장과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이 나눈 대화내용을 옛 국가안전기획부가 불법녹취해 기록한 파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X파일 공개’ 사건은 이 녹취록에 나오는 소위 ‘떡값 검사’ 실명을 노 의원이 2005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서 공개해버린 사건이지요. 당시 검찰은 국정원의 불법 도청에 대해서만 수사하고, 삼성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는 질질 끌고 있었습니다. 삼성의 로비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라고 촉구하기 위해서 노 의원이 결국 떡값 검사 실명을 만천하에 드러내 버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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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노회찬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안기부X파일에 담긴 대화를 읽어내려갑니다.

“X파일에 보면 말이지요, 홍석현… 이분이 뭐라고 얘기했는가 하면 ‘아, 그리고 추석에는 뭣 좀 인사들 하세요? 검찰은 내가 좀 하고 싶어요. K1(경기고)들도. 검사 안 하시는 데는 합니까?’ (중략) ‘이번 목요일 김두희(전 법무장관)하고 김상희(당시 법무 차관) 있잖아요.’ 홍 회장이 둘을 만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이학수가 리스트에 들어 있다고 확인을 해줍니다. 그러자 홍 회장이 하는 얘기가 ‘김상희 들어 있어요? 그럼 김상희는 조금만 따로 성의로서 하겠다’….”

노 의원이 X파일 대화를 그대로 읽은 그 자리엔 김상희 당시 법무차관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 의원은 김 차관에게 물었습니다. “적지 않은 액수인데 받았는지 여기서 밝혀달라.” ‘X파일 공개’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노 의원은 이때 이른바 ‘떡값 검사’ 7명의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검사 7인 중 2인이 그를 명예훼손·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고소했습니다. 1심에선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의 유죄가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선 무죄 판결이 나왔습니다. 10년 전 ‘오늘’ 경향신문은 바로 그 무죄판결을 1면과 3면에 배치했습니다. 그러나 씁쓸하게도 2년 뒤인 2011년 대법원이 부분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해버렸고 이어 2013년 최종적으로 노회찬은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습니다. 2013 2월, 그는 19대 국회에 들어간 지 10개월만에 의원직을 잃었습니다.

‘무소용’이 돼 버린 X파일 공개 ‘무죄 선고’를 다시 살펴보는 것이 허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항소심 재판부가 제시한 논리를 통해, 사법 정의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10년 전 ‘오늘’의 경향신문 보도를 통해 2심 재판부가 왜 무죄 판단을 했는지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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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 요지는 불법으로 녹취된 파일을 인용했다고 하더라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검찰 수사를 촉구하기 위한 선택이었으니 국회의원 신분으로서 할 수 있는, ‘정당한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이민영 부장판사)는 “통상의 합리성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삼성그룹이 (안기부의) 녹취록 내용대로 검사들에게 금품을 지급하였을 것이라고 강한 추정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당시 서울지검장인 안강민씨가 금품전달 대상이라는 점도 쉽게 알 수 있다”며 “노 대표(노회찬 의원·당시 진보신당 대표)가 이를 ‘허위사실’이라고 인식, 고의로 명예훼손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민영 당시 부장판사는 또 국회 회의 시작 전에 (회의에서) 발언할 내용을 보도자료로 낸 것에 대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이 기소한 대목에 대해서는 “보도편의라는 정당한 목적에 의한 것이고 국회의원의 직무상 행위로 면책특권 대상에 해당한다”고 소를 기각했습니다. (국회의원에게 왜 ‘면책특권’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아울러 노 의원이 X파일 녹취록을 홈페이지에 올린 것에 대해서는 “면책특권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검찰의 수사를 촉구하는 정당한 목적이 인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선고 내용을 보면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의 로비 의혹에 대해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고 있지 않다고도 지적했습니다. X파일에 등장하는 인물이 홍석현·이학수가 맞다는 ‘한국법음향연구소의 감정’이 있었는데도 “(이들에 대해선) 수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밝힌 겁니다.

경향신문의 3면 보도 <‘불법 녹취’ 인용, 공익 부합 땐 “정당”>이라는 기사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습니다. “국내 최대재벌과 검찰 간의 부적절한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녹음파일이 공개됐음에도 단지 불법녹취됐다는 이유만으로 커넥션의 실체는 수사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한 국회의원만 처벌하려 한 것에 대해 재판부가 일침을 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지금도 재벌과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일침’을 놓는 판사들도 아직 우리 곁에 있을까요.

무죄 선고가 내려지고 약 3년 뒤인 2013년 2월, 결국 노회찬 의원은 법적으로 ‘처벌’을 받고 말았습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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