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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생명존중 인식 확산’ 연극 무대 올린 이상철씨 “무료 공연에 지갑은 비어가지만, 마음은 풍요로워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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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년 넘게 자살예방 연극 공연을 하고 있는 이상철씨가 지난 4일 연극 <New 정거장>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 경향아트홀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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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청소년에 연기 지도

아예 극단 ‘버섯’ 창단해 공연

이은주와 인연 ‘자살 예방극’

“오늘 최선 다하면 내일 행복”


개성파 조연으로 TV드라마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탤런트가 이젠 무대에서 ‘버섯’을 키우고 있다. 24년째 연극을 통한 나눔을 이어가고 있는 배우 겸 연출가 이상철씨(57)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경향아트힐 공연장에서 만난 이씨는 “1년 중 열한 달을 준비해 한 달 공연을 올리는 과정을 생각하면 ‘이가 갈릴 정도’로 힘들지만, 즐거워하는 관객들을 보는 맛이 ‘죽인다’ ”면서 “가장 잘할 수 있는 연기로 봉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이씨와 길을 가다 마주친다면 ‘어, 낯이 익은데’라는 생각이 들 법하다. 열 살 때 아역 배우로 데뷔해 1977년 제1회 KBS 방송대상에서 아역상을 탄 베테랑 연기자다. 1985년 박상원, 이재룡 등과 MBC 18기 공채 탤런트로 합격한 뒤 드라마 <수사반장> <엄마의 바다> <아스팔트 사나이> <대장금> 등 여러 작품에서 개성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그의 인생행로가 바뀐 것은 1994년, 엉뚱하게도 예비군 훈련 때문이었다. “연예인이라고 장기를 해라, 만담을 해라 이것저것 너무 시키는 거예요. 동사무소에 하소연을 하니까 꿈이 배우인 학생 둘을 가르치는 봉사를 제안하더라고요.” 그때부터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모아서 연기를 가르치고, 후원을 시작했다.

1995년에는 극단 버섯을 창단했다. “음지에서도 잘 자라고 잘 퍼지는 버섯처럼 꿋꿋하게 서자”는 의미를 담았다. 연기를 가르친 학생들을 단원으로 모아 소외계층을 위한 공연을 올렸다. “각자가 받은 도움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이었다.

이씨와 버섯의 활동은 2005년 다시 한번 변곡점을 맞는다.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부른 배우 이은주씨의 죽음이었다. “당시 가르치던 학생들이 이은주씨와 같은 학과(단국대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하면서 연이 닿았어요. 좋은 취지를 듣고 스케줄을 맞추자는 얘기까지 나오다가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거죠.”

이씨는 그 사건을 계기로 자살 예방과 생명 존중을 모토로 하는 작품들을 잇따라 무대에 올렸다. 그 과정에서 전국 순회공연을 다니고, 국회에서 막을 올리기도 했다. 공연을 할수록 마음은 풍요로워졌지만, 자꾸만 지갑은 비어갔다. 모두 무료 공연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기업 홍보팀에서 ‘거머리’로 유명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제작비를 받기 위해 기업과 기관을 일년 중 열 달 넘게 쫓아다닌다. 최근 활동이 뜸한 것도 그러한 이유가 있다며 웃었다. “게이트 앞에서 퇴근길에 기다리다 담당자를 쫓아가는 거죠. 예전엔 100군데는 다녔는데 이젠 10군데만 가도 돼요. 아예 우리 공연에 예산을 배정해주시는 곳들도 생겼거든요(웃음).” 올해는 서울시 후원 덕분에 한숨 돌렸다. 오는 21일까지 경향아트힐에서 ‘생명 존중 인식 확산’ 연극 <NEW 정거장>을 무료로 공연하고 있다. 객석이 보통 절반은 넘게 차고, 종종 매진되기도 한다고 했다.

이제 그의 수중에 남은 건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18평짜리 인천 아파트 한 채와 2000년식 SM5 한 대다. 하지만 값을 매길 수 없는 재산이 있다. 그의 품을 거쳐간 150여명의 청소년과 그의 공연을 관람한 12만명의 관객들이다. 그의 명함에는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은 없다’는 글귀가 쓰여 있다. 감히 이해를 하기보다는 응원을 하게 되는 이씨의 목표를 물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짜장면인데요. 랍스터나 짜장면이나 먹고 나오는 건 똑같잖아요. 지금 삶에서 마음이 행복하고 풍요롭다면 힘든 쪽을 택하고 싶습니다. 오늘 최선을 다하면 내일도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배문규 기자 sobbe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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