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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기품과 연륜 묻어있는 백건우의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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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예술의전당서 열린 '백건우와 야상곡' 연주회 리뷰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쇼팽 야상곡은 진입장벽이 비교적 낮은 곡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학생이라면 몇 년만 연습하면 칠 수 있고,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에서 한두 곡 정도는 들어봤음 직한 곡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뛰어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던 쇼팽 음악을 감정을 담아 제대로 연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울려 퍼진 백건우 야상곡은 '예쁘고 아름다운' 곡이라는 선입견을 깨는 연주였다. 연주회 오프닝을 여는 첫 곡부터 남달랐다. '녹턴 1번'은 일반적인 연주에 견줘 템포가 상당히 느렸다. 젊은 피아니스트의 일반적인 연주가 우수에 차 있지만 밝음과 영롱함,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약간의 가벼움을 담고 있다면, 백건우의 쇼팽에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슬픔이 배어있었다. 하지만 그 슬픔 속에는 어떤 위엄이나 기품 같은 것도 담겨 있었다.

이어진 '녹턴 9번'에서도 백건우 손가락은 피아노 건반을 산책하듯, 가볍게 움직였지만, 전해지는 소리가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 소리는 묵중하고, 철학적이기까지 했다. '야상곡 18번'은 여러 색이 덧칠된 모네의 '수련' 연작이 음악이 된 듯 여러 소리가 겹쳐있는 듯했고, '야상곡 19번'은 탄식하는 어조로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듯 들렸다. '야상곡 20번'은 간드러지고 요염하기까지 했다.

연합뉴스

피아니스트 백건우
(서울=연합뉴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쇼팽의 '야상곡'을 연주하고 있다. 2019.12.8 [빈체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드라마틱하고 힘 있는 연주도 있었다. 후반부에 연주된 '야상곡 14번'과 마지막 곡인 '야상곡 13번'은 그간 치는 듯 마는 듯 건반을 섬세하게 다루던 연주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14번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 격정적인 감정을 담고 있었고, 마지막 13번은 격렬하게 질주하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죽기 직전 갑자기 기운이 도는 '회광반조'(回光返照)의 느낌을 전해준다는 점에서 죽음의 이미지가 느껴졌다.

쇼팽 야상곡은 겉보기와는 달리 연주하기가 어려운 곡으로 전해진다. '초절기교'로 유명했던 리스트는 1843년경 쇼팽 앞에서 이 곡을 연주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을 즉흥적인 장식과 자의적으로 변형하는 리스트 연주를 듣고, 쇼팽은 '그렇게 치려면 연주하지 않는 편이 났다'고 비판했다. 리스트가 어떻게 쳐야 하는지 자문하자, 쇼팽은 현장에서 야상곡을 연주했다. 쇼팽 연주를 듣고 리스트는 '역시 이런 곡은 마음대로 연주하면 안 되는군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백건우의 연주는 호불호가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생동감 있고, 컬러풀하며 가벼운 우수에 찬 연주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의 연주는 무채색에 가까웠지만, 무게감이 있고, 기품이 있었다.

백건우는 오는 11일 예술의전당에서 쇼팽 야상곡에 즉흥곡과 폴로네이즈, 왈츠 등을 더한 공연을 선보인 후 오는 20일까지 김해, 강릉 등지에서도 연주한다.

연합뉴스

피아니스트 백건우
(서울=연합뉴스)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공연을 마친 후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2019.12.8 [빈체로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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