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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리뷰]백건우, 설원 위를 걸은 야상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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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서울=뉴시스] 백건우. (사진 = 빈체로 제공) 2019.12.08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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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만년설 같은 백발이 비결일까. 더 백발이 성성해진 피아니스트 백건우(73)의 타건은 마치 설원 위를 걷는 듯했다. 7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백건우와 야상곡'이 풍긴 정서다.

야상곡(夜想曲)은 주로 밤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작곡한 소품이다. 특히 쇼팽의 야상곡은 밤의 몽환적이고 신비로우며 감성적인 기운을 머금었다.

백건우는 지난 3월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을 통해 발매한 '쇼팽: 녹턴 전집' 간담회에서 쇼팽이 하고 싶은 말은 야상곡에 있지 않나 한다고 말했다.

즉 이날 공연은 그의 연주뿐만 아니라 쇼팽, 그리고 백건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날 백건우의 연주는 피아노 하나만으로 그려낸 수묵화 같았다. 생전 가본 적도 없는 설원에 청중들은 초대됐다. 이전까지 주로 꿈결 같이 들렸던 쇼팽의 야상곡에 수많은 사연과 정서가 녹아 들어갔다.

특히 서글픈 시름을 앓는 듯한 19번은 고즈넉함으로 겨울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무르익음의 결정체인 17번은 자연의 이치처럼 정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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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피아니스트들이 리사이틀 등에서 앙코르로 자주 연주해 특히 청중의 귀에 익숙한 20번과 2번은 푸르렀고 애잔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에서는 망명을 한 것처럼, 다른 질감을 들려줬다. 읊조리는 쇼팽, 아니 백건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환청은 저마다의 고독하고 경건한 풍경을 보여주는 환시(幻視)도 일으켰다.

겨울 추위에 소품 사이사이 객석 기침의 폭격이 이어졌지만, 백건우의 야상곡 세계는 그 마저 초연하게 덮었다.

압권은 마지막으로 연주한 13번. 간절한 기도 같은 울림이었다. 몰아치는 폭풍우를 뚫고 백건우가 마지막 한 음을 마침내 때려냈다. 이후 그의 두 손은 10초가량 건반 위에 머물렀다. 고독한 설원 속에서 홀로 서 있는 사람이 그려졌다.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롱테이크 장면을 보는 듯한, 경건한 미학. '건반 위의 구도자'가 거기 서 있었다.

한편 백건우는 11일 오후 8시 같은 장소에서 '백건우와 쇼팽'도 연다. 14일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 15일 통도사 설법전, 19일 강릉아트센터, 20일 오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으로 올해 남은 투어를 이어간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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