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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산책자]아주 보통의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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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출판사에서는 최근 ‘아주 보통의 글쓰기’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했다.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이 시리즈를 이끌어갈 저자들이다. 너도나도 책을 내는 시대에 평범한 저자들의 등장은 그리 새로운 시도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어떤 테마나 형식이 있는 것도 아니며 어떻게 보면 자기 삶의 고백, 자서전적인 글쓰기를 담게 될 것이다.

경향신문

지난가을 출판사로 투고되어온 원고들 중에 유난히 눈길이 가는 글 두 편이 있었다. 이들이 최근 연달아 책으로 나왔다.

출간을 결심한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삶이 소설 한 권을 써도 좋을 만큼 드라마틱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랬다면 책을 내는 데 주저했을 수도 있다. 책을 내보지 않은 이들이라 판매나 인지도 측면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좋은 글에 이골이 난 눈으로 볼 때도 뛰어난 글쓰기로 자신을 표현해냈다. 강호의 숨은 고수들이랄까. 글로 다듬어져 나온 이들의 생애는 때론 눈물이 날 정도였고, 분노와 고통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질투나 자책의 감정을 느끼게도 했다.

그렇다고 이들의 글이 기성 작가들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표현이나 플롯, 남다른 안목, 상상력 등에서 작가들보다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 다만 이들의 글은 자기 삶을 극복하거나 정리해내려는 의지가 강하다.

예를 들면 어릴 때 겪은 트라우마의 극복, 가까운 이의 죽음으로부터 빠져나오기, 글을 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삶의 끝자락에 다시 갖게 되는 글쓰기의 소망 등 구체적이고 분명하다. 그러다보니 삶을 정면으로 대하는 자세를 갖추고 특정 시기의 일과 사건에 대해 그게 뭐였냐며 끈질기게 추궁한다. 그 정면승부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준다.

특히 ‘아주 보통의 글쓰기’라며 시리즈로까지 낼 생각을 한 것엔 일종의 ‘수집 욕구’가 작용한 측면도 있다. ‘직업적 문체’라는 것을 책의 형태로 한번 끌어모아 보고자 하는 욕심이라고 해도 될까. 세상엔 많은 직업이 있지만 우린 평생 그중 극히 일부밖에 경험하지 못하고 생을 마무리한다. 그런데 직업세계에는 그 세계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어,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평생 식당을 운영해온 사람에게는 음식과 손님의 관계 속에서, 침술을 가르쳐온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침을 맞고 배운 학생과의 관계 속에서, 나무 묘목을 키워 판매하는 사람에겐 또 우리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여러 문제가 그들에게 기쁨과 슬픔을 주는 삶의 중요한 요소로 등장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경험한 대로 만들어지는 측면이 있다고 할 때, 이들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진솔하게, 내밀하게, 중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만나볼 수 있는 방법으로 책만 한 게 있을까.

또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생로병사의 과정, 누군가를 만나 결혼하고 싸우고 헤어지는 과정,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고 어떤 일을 도모해서 도전하는 과정, 사기를 당하고 배신을 당하는 과정, 자살을 시도하거나 이민을 떠나거나 하는 등의 온갖 일은 보편적이면서도 특수한 문제들이다. 누구에게나 비슷한 형태로 찾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적이지만, 그걸 겪어내는 방법이나 정도의 차이는 각양각색이라는 점에서 특수하다. 특히 나는 이 특수성에 방점을 찍는다. 자신이 선택한 것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게 삶이라는 말이 있듯, 선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권리지만 그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그 선택의 배경이 되는 사연도 사람마다 구구절절하다. 이것은 의사, 변호사, 공무원, 회사원, 가정주부, 식당 종업원 등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판에 박힌 지식을 뛰어넘을 것이다.

이제 겨우 두 권을 냈고, 세 번째 책을 편집 중이지만 ‘아주 보통의 글쓰기’ 시리즈가 보통 사람의 특별한 삶을 알리는 창으로 꾸준히 계속될 수 있었으면 한다. 어찌 보면 예전에 수필을 싣는 월간지에서 자주 만나볼 수 있었던 ‘독자투고’나 생활에세이 같은 글을 이제는 책의 형태로 만나는 것일 수도 있다. 둘의 차이라면 잡지에 실린 글은 단편의 에피소드로 끝나지만 책은 한 사람의 생애 전체가 풍부한 맥락이 되어 책에 심겨져 있다는 것이리라. 나 개인적으로는 이 시리즈가 사회에서 주어진 직업을 평생 살다 간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직업을 살다 간 사람들의 삶을 모아놓은 색인집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출판은 어쨌든 시대를 기록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것을 유지해나가야 할 명분도 뚜렷하다. 그 의미를 좀 더 많은 독자가 알아주는 운이 따라주기를 기대한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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