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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여적]진정한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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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며칠간 ‘사과’와 관련된 국내외 뉴스가 보도됐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질 만한 ‘공적인 사과’들이다. 지난 5일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노재헌씨가 5·18 피해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표했다. 지난 8월 국립 5·18민주묘지 참배에 이어 이날 광주 오월어머니집을 방문한 그는 “아버지를 대신해 뭐라도 하고 싶다는 심정으로 왔다”고 말했다. 지난 6일(현지시간)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를 찾아 “어떤 말로도 이곳에서 비인격적인 처우를 받고 고문당하고 살해당한 많은 사람의 슬픔을 달랠 수 없을 것”이라고 사죄했다. 그는 앞서 지난달 독일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구체적인 사건까지 말하며 잘못을 사과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내놓은 이른바 ‘문희상 안’과 관련해 지난 6일 국회 토론회에선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꼭 일본에 사죄를 받아 명예회복해야 한다”고 눈물을 흘렸다. ‘문희상 안’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진정한 사과가 빠졌다는 점에서 비판이 높다.

세계를 감동시킨 명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의 ‘무릎 사과’다. 서독에 적대감이 강했던 폴란드 국민들은 빗속에서 바르샤바의 전쟁희생자 비석 앞에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린 브란트의 사과를 생방송으로 지켜보며 오랜 앙금을 털어버릴 수 있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진정한 사과’의 요건은 몇 가지로 추려진다. 핵심은 피해자의 마음이 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하게 사과하고, 조건이나 해명 없이, 피해자가 ‘됐다’고 할 때까지 몇 번이고 사과해야 한다. 거짓된 사과는 그 반대다. 모호한 사과, 해명성 사과, 용서해 달라고 강요하는 사과 등이다.

브란트와 메르켈의 사과는 진정한 사과의 전형이었음을, ‘문희상 안’은 사과의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노재헌의 사과는? 5·18 단체들의 요구대로, 잘못을 정확히 고백해 진상규명에 협조하고, ‘5·18의 진범은 유언비어’라고 규정한 노 전 대통령 회고록을 수정하는 것이 최소 기준이 될 것이다. 진정성 없는 사과는 때론 화를 부른다. 사과는 잘해야 한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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