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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시선]차별이 인간 본성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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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다는 그 사람, 집에서는 가부장적이네. 젊을 때는 부모를, 결혼해서는 아내와 자녀를 힘들게 하면서도 당연한 줄만 아네. 자신은 밖에서 힘든 일 한다는 핑계로 차별에 둔감하네. 그러면서 성차별 말만 들으면 요즘 세상 좋아졌다면서 지금은 남자가 힘든 시대라고 하소연이네. 이러쿵저러쿵 온갖 이유 만들어 그건 차별이 아니라고 하네.

경향신문

성차별에 반대한다는 그 사람, 학력주의는 찬성하네. 대학 이름은 사람의 성실함을 대변한다면서 주변 사람을 무안하게 하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이 되어야 한다는 말만 나오면 공정하지 않다고 분노하네. 어쨌든 시험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기에 공정한 것이라면서, 그 빌어먹을 노력을 동등하게 할 수 없는 사람들을 외면하네. 이러쿵저러쿵 온갖 이유 만들어 그건 차별이 아니라고 하네.

자녀들의 미래를 위해 학력주의를 타파하자는 그 사람, 난민 이야기만 나오면 결사항전을 치를 기세로 반대하네.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서 어쩔 수 없다는 끔찍한 논리로 사람을 괴물로 묘사하네. 특정 지역, 문화, 종교에 대한 왜곡된 정보로 오염되어 그릇된 시야를 가지고 있는 자신이 괴물인 줄 모르네. 관용이 필요하다는 연예인에게 ‘답답하면 자기 집에 데리고 사세요!’라면서 빈정거리네. 이러쿵저러쿵 온갖 이유 만들어 그건 차별이 아니라고 하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종교의 가르침을 실천한다는 그 사람, ‘성적 지향’이 포함된 차별금지법이 통과되면 한국이 소돔과 고모라 꼴이 날 거라면서 흥분하네. 동성애를 혐오할 자유도 있다면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이성애자만이 선택할 수 있는 자연적 산물인 양 주장하네. 정상, 비정상이라는 편견 탓에 성소수자들의 자살률이 더 높다는 현실은 모른 척하고 끊임없이 ‘고칠 수 있는’ 질병 운운하네. 이러쿵저러쿵 온갖 이유 만들어 그건 차별이 아니라고 하네.

인문학만이 미래의 길을 제시한다며 공자를 읊어대던 그 사람, 집값 앞에서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네. 동네에 특수학교 들어서는 걸 기필코 막겠다는 주민들의 의견은 인문학의 힘으로 반대하지 않네. 대출받아 겨우 집 장만했기에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다면서 장애인 권리만 권리냐는 이상한 말을 하네. 결국 근처에 청년 임대주택이 조성된다는 말이 나오자 재산권 보장하라면서 띠 두르고 항의하네. 이러쿵저러쿵 온갖 이유 만들어 그건 차별이 아니라고 하네.

기성세대의 기득권에 반대하는 그 사람, 정작 자신이 꼰대인 줄 모르네. 주변에서 무슨 말만 하면 간섭하지 말라면서 벽을 치더니 OO충(蟲)이라면서 사람을 벌레 취급하네. 노키즈존 찬성하더니 전체 관람 영화도 노키즈관 만들어 아이들을 따로 분류하자고 난리네. 밑도 끝도 없이 요즘 부모가 얼마나 진상인 줄 아냐면서 행동의 통제가 아닌 사람 자체를 배제하는 게 소비자의 권리인 양 포장하네. 이러쿵저러쿵 온갖 이유 만들어 그건 차별이 아니라고 하네.

그 사람, 배달노동자가 인사 안 했다고 쯧쯧 혀를 차네. 그 사람, 백화점의 직원이 상냥하지 않다면서 쯧쯧 혀를 차네. 그 사람, 기차역 노숙인을 보며 외국인 보기에 창피하다면서 쯧쯧 혀를 차네. 그 사람, 심지어 사투리 쓴다고 사람을 싫어하네. 그 사람, 외모가 곧 사람의 평소 생활습관이라면서 태연히 혐오하네. 자신은 딱 보면 알 수 있다면서, 자신의 수준을 딱 보여주네. 이러쿵저러쿵 온갖 이유 만들어 그건 차별이 아니라고 하네.

누구는 차별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성이라고 하네. 그래도 인류가 불평등의 크기를 줄여오지 않았냐고 하면, 유토피아는 없다면서 비꼬네. 사회구조를 탓하면 제발 긍정의 자세를 가지라고 타박하네. 차라리 머리 긁적이며 살아보니 속물일 수밖에 없었다고 반성이라도 하면 다행인데 자유, 권리, 역차별 등의 단어를 멋대로 짜깁기해 차별을 차별이 아니라고 하네. 그런 한 해가 저무네.

오찬호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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