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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우석훈의 경제수다방]저학년 스쿨버스,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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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큰애를 어디에 보낼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다. 나나 아내나, 특목고는 물론이고 초등학생 때부터 별나게 공부시킬 생각이 별로 없다. 우리 어머니는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한다고 난리를 치셨지만, 유치원은커녕 그냥 어린이집에 다녔다. 그런데 아내가 처음으로 사립초등학교 고민을 해보자고 해서 고민이 시작되었다.

경향신문

이유는 간단하다. 사립초등학교는 돈만 내면 스쿨버스가 다니는데, 국공립에는 이런 게 일절 없다. 그리고 알아보니까 꽤 많은 엄마들이 꼭 사립학교에 보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스쿨버스 때문에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주변에 알아보니 정말로 그랬다. 한국의 엘리트 교육은 ‘분리’가 목표다. 영어유치원부터 사립초등학교를 거쳐 특목고까지, 점점 더 분리시키는 것이 더 좋은 교육으로 간주되었다. 나는 이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내가 몇 년 더 고생하기로 하고, 그냥 집 근처 국공립 초등학교에 보냈다. 입학식 설명서에 “대중교통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라고 딱 한 줄 써 있는 것을 보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면 고맙겠다, 그런 정도가 아니라 자가용으로 오면 문제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이미 아이를 국공립에 보내기로 했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다.

결혼하고 9년 만에 연달아 아이 둘을 낳았다. 둘째는 태어나면서부터 아팠고, 폐렴으로 여러 번 입원을 했다. 아내가 재취업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결국 내가 아이들의 등하교를 당분간 맡기로 하면서 대외활동들을 접어야 했다. 여섯 살인 둘째가 초등학교 2학년을 마칠 때쯤이면 혼자서 등하교 정도는 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등하교를 맡는 건 앞으로 4년간이다.

물론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는 지점에 초등학교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주 멀지는 않아도 아이가 혼자 가기에는 아직은 좀 무리다. 학교에는 주차장 같은 게 당연히 없고, 인근에 차 세울 데도 없다. 정말로 나는 주차장 사용료를 꼬박꼬박 내면서 불법주차는 안 하던 인생인데,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서 불법주차인생이 시작되었다. 딱 시간 맞춰서 데리고 와야 하는데, 그거 좀 편하자고 초등학교 1학년에게 키즈폰을 사주기도 좀 그렇다. 그렇게 나의 불법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냥 살짝살짝 눈감고 봐주는, 그런 관행도 없다. 경찰서에서는 한 달에 한두 번, 경찰차 여러 대와 오토바이들이 토끼몰이를 한다. 큰아이의 학교 앞에서 한 번, 둘째 아이의 어린이집에서 한 번, 하루에 두 번 딱지 끊은 날도 있다. 견디다 못해 결국 둘 다 태권도장을 보내게 되었다. 갈 때는 여전히 불법주차를 하지만, 끝나고서는 태권도 사범님들이 집 근처까지 데리고 오신다. 그러니까 그냥 사립 보내랬지, 쯧쯧. 주변에서는 이런 나를 ‘병신’ 취급한다.

국공립 어린이집 스쿨버스와 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저학년용 스쿨버스가 전혀 논의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14년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제일 처음 시행하려 했던 게 이 제도다. 워킹맘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 저학년들 등하교라서 명분은 충분했다. 게다가 시나 도에는 업무용 버스들이 있어 크게 운행계획을 짜면 그렇게 예산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마을버스 회사들의 집단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돈 내고 갈 사람들이 스쿨버스로 줄어들면 수익성이 악화된다는 것이다.

그 후 미세먼지 대책이 강화되었지만, 마을버스 회사들의 반발을 의식한 정부에서는 스쿨버스와 관련해서는 논의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등교와 하교, 하루 두 번씩 자가용 운행을 줄이는 것도 도시의 미세먼지 감소에 도움이 되는 일이다. 답답해서 교육청 실무자랑 얘기를 해봤더니, 초등학교는 원칙적으로 등하교 거리에 있는 거라서 자가용 운행이 필요 없는 기관이란다. “네가 한번 해봐”, 한마디 해주고 싶었다.

현재의 제도는 더 비싼 돈을 주고 사립학교에 보내면 아무 문제가 없게 되어 있다. 고등학교 무상교육 시행과 저출산 대책을 보면서, 국공립에 스쿨버스 하나 보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제도인가, 이런 질문이 계속 입안에 돈다. 시장 만능주의를 외치던 보수정권은 “모든 게 다 돈이다”, 이런 기조를 오랫동안 유지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새로운 정부에서도 스쿨버스 문제는 도통 논의가 없다.

작게 보면 저출산 대책, 넓게 보면 미세먼지 대책인 어린이집과 초등학교 저학년의 스쿨버스, 이제는 좀 정책 차원에서 논의해보면 좋을 것 같다. 엄마들의 등하교, 이 정도는 좀 줄여줄 방법이 있지 않은가 싶다. 사립학교 보내거나 태권도장 보내거나, 이게 정부가 할 대답은 아닌 것 같다. 경찰들의 하굣길 주차단속 토끼몰이도 볼 때마다 너무 서글프다. “나는 분명히 대중교통 이용하라고 했다”, 이러고 끝낼 일이 아니다. 자녀 학교 보내는 거, 부모가 죄인인가? 많은 직장인 부모들이 초등학생 등하교가 곤란해 돈을 더 부담하면서 사립학교에 보내는 거, 더 이상은 정부에서 눈감고 있을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의 등하교를 국가가 책임지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우석훈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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