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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신약 개발 새 역사 쓴 SK바이오팜…20년 뚝심 엑스코프리(뇌전증 신약) 美 FDA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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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바이오팜이 국내 신약 개발 역사를 새로 썼다.

SK바이오팜이 개발한 뇌전증(epilepsy)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가 미국 FDA(식품의약국) 판매승인을 받았다. 그동안 국내 제약사가 기술수출한 신약 물질이 미국 FDA 벽을 넘은 적은 있었지만 후보물질 발굴부터 임상시험, FDA 신청과 승인까지 파트너십 체결 없이 독자적으로 해낸 것은 엑스코프리가 처음이다. 이로써 SK바이오팜은 미국 제약사 재즈파마슈티컬스와 공동 개발해 올해 3월 FDA 승인을 받은 기면증 치료제 ‘수노시(성분명 솔리암페톨)’까지 FDA 승인 혁신 신약을 2개 보유하게 됐다.

엑스코프리가 FDA 승인을 받기까지는 수많은 역경이 있었다. 초기 임상 단계에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은 부지기수. 오랜 기간 이렇다 할 성과가 없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태원 SK 회장은 2007년 지주사 체제 전환 이후에도 신약 개발 조직을 따로 분사하지 않고 지주회사 직속으로 두면서까지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오너의 과감한 지원사격 속에서 SK바이오팜은 연구개발(R&D)을 이어갈 수 있었다. SK바이오팜이 최근 8년간 연구개발 비용으로 쏟아부은 돈만 5000억원이 넘는다.

본격적인 임상에 들어간 뒤에도 난관은 계속됐다. 무엇보다 그동안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가운데 독자적으로 미국 FDA 임상을 끝까지 진행한 곳이 없다 보니 조언을 구하거나 참고할 만한 선례가 전무했다. 매 순간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과정이었다. 하나하나 몸으로 직접 부딪쳐가며 노하우를 익혀야 했다. 엑스코프리는 2001년 최초 후보물질 탐색으로부터 약 20년에 걸친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일궈낸 결실이다.

조정우 SK바이오팜 사장은 “실패를 엄청 많이 경험했다. 경험과 내공을 쌓아나가는 과정 끝에 글로벌 제약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혁신 신약 개발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지닌 토종 제약사가 탄생한 것”이라며 “한국 바이오 산업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서는 신호탄”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매경이코노미

SK바이오팜이 독자 개발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가 미국 FDA 판매승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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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약 대비 두 배 효과

▷‘완전발작소실’도 확인

엑스코프리가 대상으로 하는 뇌전증은 뇌신경 세포의 일시적인 이상 흥분 현상에 의해 특정한 유발 요인 없이 경련이나 발작이 반복되는 만성 신경계 질환이다. 흔히 ‘간질’이라고 불리는 병. 과거에는 치료가 어려운 질병이며 잘 낫지도 않는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귀신에 들린 것처럼 몸을 떠는 발작 증세는 부정적인 인식을 한층 키웠다.

의학 발달로 치료제가 하나둘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뇌전증은 완치가 쉽지 않은 질병이다. 특히 한 가지 약물로 증상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아 여러 치료제를 병용 투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존에 출시된 뇌전증 치료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엑스코프리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이상건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는 “기존 뇌전증 치료제로 치료가 어려웠던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경우 엑스코프리가 새로운 치료 옵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엑스코프리의 또 다른 강점은 뛰어난 약효다. 이미 1~3개의 뇌전증 치료제를 복용 중임에도 발작이 멈추지 않는 환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임상시험에서 엑스코프리는 모든 용량에서 위약 투여군 대비 발작 빈도를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6주간 진행된 첫 번째 임상에서 엑스코프리 200㎎을 복용한 환자의 발작 빈도가 56% 감소했다. 위약 투여군 22% 감소와 비교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다. 12주 동안 진행된 두 번째 임상에서는 100㎎, 200㎎, 400㎎의 엑스코프리를 복용한 환자들의 발작 빈도 중앙값이 각각 36%, 55%, 55% 감소해 24% 감소한 위약 투여군을 크게 웃돌았다.

무엇보다 두 임상시험에서 약물 치료 유지 기간 동안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의 환자들로부터 ‘완전발작소실’이 확인됐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SK바이오팜 임상개발실장은 “약물 투약 기간 중 발작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은 환자의 일상 복귀가 가능하다는 것”이라며 “이는 환자가 정상적 일상으로 돌아감과 동시에 향상된 삶의 질을 누리는 데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결과”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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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역 직판체제 구축

▷매년 1조원 매출 기대

SK바이오팜은 2020년 상반기에 미국 시장에서 엑스코프리 출시와 함께 본격적인 판매에 돌입할 계획이다. 세계 주요 국가 뇌전증 시장 규모는 약 61억달러(약 7조2000억원)에 달하며 이 가운데 54%(33억달러)가 미국 시장이다. 특히 미국 뇌전증 치료제 시장은 2024년 41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뇌전증 환자 수도 꾸준히 증가 추세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전 세계 뇌전증 환자 수는 약 6500만명에 달하며, 매년 약 2만명이 새롭게 뇌전증 진단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SK바이오팜은 엑스코프리를 앞세워 ‘신약 개발로 돈 버는 바이오텍’ 대열에 합류할 전망이다. 엑스코프리 경쟁 약물로 UCB제약의 ‘빔팻’ ‘케프라’ ‘브리비액트’, 에자이의 ‘파이콤파’ 등이 있다. 이 중 세계 판매 1위 뇌전증 치료제 빔팻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약 13억달러(약 1조5300억원)어치가 팔렸고, 올해도 상반기에만 8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선민정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엑스코프리는 글로벌 임상 2b상에서 빔팻 대비 우수한 발작 억제 효과를 입증했다. 이를 감안하면 6~7년 뒤부터는 매년 약 1조원 규모의 매출 달성이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SK바이오팜은 더 나아가 현지 제약사를 거치는 대신 직접 판매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할 예정이다. SK바이오팜의 미국법인 SK라이프사이언스가 미국 현지 판매와 마케팅을 직접 맡는다. 하나의 제품을 두 회사가 공동으로 판매하는 ‘코프로모션(co-promotion)’을 하는 경우 개발사가 가져가는 이익이 절반 이하로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조정우 사장은 “미국 전역을 12개 권역으로 나눠 빠짐없이 커버할 수 있도록 110여명의 현지 영업 인력을 이미 채용해놓은 상태다. 이들은 미국의 1만4000여명 의사를 대상으로 2020년 1월부터 곧바로 엑스코프리 마케팅에 나설 예정이다. 2분기 이후 판매가 시작되면 CVS나 월그린 같은 판매상에 내놓을 수 있도록 의약품 공급 채널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항암제 등 파이프라인 확대 박차

▷2020년 상장…기업가치 5조~6조원

SK바이오팜은 앞으로 엑스코프리의 적응증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다. 뇌전증은 크게 전신발작과 부분발작으로 나뉘는데, 이번에 미국 FDA 승인을 획득한 것은 부분발작에 대해서다. 전체 뇌전증 환자 중 부분발작 환자가 52%, 전신발작 환자가 43%를 차지한다. 전신발작까지 적응증이 확대되면 뇌전증 환자의 95%가 엑스코프리의 투약 대상이 된다. 추가적인 매출 상승을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제2의 엑스코프리’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SK바이오팜은 그동안 중추신경계 질환 분야에서 차별화된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왔다.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엑스코프리와 수면장애 신약 ‘수노시’ 외에도 소아 희귀발작(카리스바메이트), 희귀 신경계 질환(렐레노프라이드), 집중력 장애(SKL13865), 조현병(SKL20540), 조울증(SKL-PSY, SKL24741) 등 6개 신약 파이프라인에서 상당한 진척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항암 신약 연구 인력을 보강하면서 케미칼 의약품 위주에서 바이오 의약품으로 파이프라인 확장도 꾀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5년 전부터 삼성병원과 뇌종양을 중심으로 치료제 개발을 진행 중이다. 조정우 사장은 “조만간 임상 허가를 받을 만한 항암 신약 후보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신약 개발의 새 장을 연 만큼, 바이오 의약품 분야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해도 좋다. 앞으로 우리 회사 이름이 왜 SK바이오팜인지 알게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한편 엑스코프리의 미국 FDA 승인으로 SK바이오팜의 IPO(기업공개)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SK바이오팜은 2020년 상반기를 목표로 코스피 상장을 준비 중이다. 예상 기업가치가 5조~6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기대주로 꼽힌다. 선민정 애널리스트는 “SK바이오팜은 신약 개발이 단순히 하나의 모멘텀이 아니라 기업의 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선례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장 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뒤를 잇는 대형 바이오 기업으로 공모금액 규모만 1조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류지민 기자 ryuna@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6호 (2019.12.04~2019.12.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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