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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6 (일)

[설진훈칼럼] 오피스텔 연쇄 입주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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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 빨리 완공해주세요.” 지난 12월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 하나가 올라왔다. 첫날에만 1600여명이 동의할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지인 제보도 있고 해서 사연을 좀 알아봤다.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했다. 이떻게 이 지경이 되도록 여론화가 안 됐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한마디로 ‘부·울·경을 중심으로 전국 오피스텔 수천 가구가 길게는 1년 이상 무더기 입주 지연 사태를 맞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것도 전부 D건설사 한 곳이 분양한 오피스텔이다. 이 건설사가 과욕을 부려 2~3년간 전국 오피스텔 수십 곳을 한꺼번에 분양한 게 화근이었다. 한순간 건설사 자금 사정이 나빠지면서 소위 ‘돌려 막기’에 차질이 생긴 것 같다는 게 피해자 모임 측 변호사 설명이었다. 대구 오피스텔 분양계약자에게서 선납 잔금을 받아 부산 현장에 투입하는 식으로 문어발 확장을 하다 결국 사고가 생긴 것 같다는 얘기였다.

제보자 A씨 피해 사례를 들여다보자. 그는 지방 부동산 경기도 괜찮았던 2016년 1월 부산시내 26평짜리 투룸 오피스텔 한 채를 분양받았다. 지하철역 근처에 640가구 대단지여서 월세 100만원은 거뜬할 것이라 판단했다. 무엇보다 총 분양금 2억4500만원 가운데 중도금 70%에 대한 이자를 시행사가 대신 내주겠다는 조건이 맘에 들었다. 2017년 4월 시행사에서 한 통의 우편물이 날아왔다. “잔금 20%를 선납하면 연 12% 할인 혜택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계약서대로라면 분양대금은 부동산 신탁사에 내는 게 원칙이지만, 시행·시공사가 같은 계열사라 안심하고 입금했다. 올 1월에는 시행사 측이 “곧 준공허가가 날 것 같으니 신협 중도금 대출을 저금리 은행 대출로 전환하는 서류를 작성하러 오라”고 안내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도 연 3% 할인 혜택을 앞세워 잔금 선납을 종용했다. 당시 상당수 계약자들이 준공 약속을 믿고 잔금을 선납했다.

문제는 기약했던 준공이 1년 가까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불거졌다. 연 6% 고리에 중도금 집단대출을 해준 G신협이 시행사 대신 계약자에게 중도금을 갚으라고 통보해온 것이다. A씨는 입주도 못한 채 11월부터 눈물을 머금고 매달 83만원씩 이자를 물고 있다. 이자를 안 내고 버틴 다른 계약자들은 한때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혀 신용카드까지 정지당하기도 했다. 사건을 취재하다 보니 현 오피스텔 분양제도의 맹점이 눈에 띄었다.

첫째, 시공사 책임으로 준공이 늦어지더라도 지연이자를 계약자가 떠안아야 한다는 점이다. 어렵다 싶어 회사 측에 통보해 분양계약을 해지한 계약자마저 똑같이 중도금 지연이자를 물어야 한다. 소송이 끝나기 전까지 계약금을 못 돌려받는 것보다 훨씬 더 억울하다. 건설사가 중도금 집단대출을 갚아주지 않는 한 대출자 명의는 계속 분양계약자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오피스텔에는 HUG(주택도시보증공사) 같은 분양보증기구가 없다는 점이다. 땅도 확보하지 않은 채 상가를 선분양한 소위 ‘굿모닝시티 분양 사기 사건’ 이후 대책으로 나온 게 바로 부동산 신탁사다. 하지만 신탁에도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신탁사가 완공까지 책임지는 토지신탁, 분양대금 징수와 집행만 대신해주는 분양관리신탁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두 번째 방식이다. D건설이 이 방식으로 짓다 차질이 생긴 부산·양산·울산·대구 등 영남권 오피스텔만 5곳, 3000여가구로 추산된다. 만에 하나 부도 사태라도 발생하면 시행사 계좌로 납부한 선급 잔금은 되돌려 받을 길이 막막해진다. 물론 시행사 측은 “보유 토지 매각 등에 시간에 걸릴 뿐 준공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공사 중단된 오피스텔 옥상에서 투신 소동을 벌인 계약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국토부, 금감원 등이 서둘러 실태 파악에 나서야 할 듯싶다.

[주간국장 jinh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7호 (2019.12.11~2019.12.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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