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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회사는 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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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편집장의 편지

한겨레21

내 것이란 뭘까. 어디까지 내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차명이 아니라면 내 이름으로 된 집, 토지, 자동차, 통장, 증권이 내 것이란 건 의문의 여지조차 없다. 내가 세운 회사는 어떨까. 내 것일까. 회사를 세울 때 내가 돈을 거의 다 냈거나 가장 많이 댔다면 내 맘대로 해도 될까?

2년 전 스티브 잡스를 다룬 다큐멘터리와 영화를 볼 때였다. 몰입했던 시선이 잠시 튕겨나갔다.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는 장면에서다. 애플은 그가 세운 회사가 아니었던가. 실적 부진을 이유로 회장님을 내쫓을 수 있을까. 한국의 기업 풍토에 익숙한 나에게 낯선 장면이었다. 애플은 다시 그에게 손을 내밀었고, 돌아온 잡스는 애플을 세계 최고 기업으로 키웠다.

잡스가 살았던 미국이나 내가 사는 한국이나 다 자본주의 국가다. 1주 1표란 주식회사 원리가 작동하는 곳이다. 이 법칙에선 회사를 세웠더라도 보유 주식 수에 밀려 회장님도 쫓겨날 수 있다. 해고 통지를 받는 잡스의 초라한 모습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당연한 원칙과 상식의 연출에 불과한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익숙한 풍경이 아니다.

초·중·고를 지나면서 ‘근면’ ‘성실’ ‘하면 된다’ 등과 함께 교실에 가장 많이 걸린 급훈 중 하나가 ‘주인정신’이었다. 학년이 바뀔 때마다 1년이면 옮길 교실을 네 집처럼 생각하고 시설과 비품을 아끼라는 뜻이었다. 주인정신은 사훈으로도 많이 쓰인다. 종업원, 근로자, 노동자 어떻게 불리든 회사에서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받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계약의 의무를 넘어 자신의 일처럼 회사 일을 열심히 하라는 주문이다. 정작 기업가, 사업가로 분류되며 회장, 사장으로 불리는 ‘주인’이 노동자를 일할 때 이외에 주인으로 대해주는 곳은 거의 없다.

대부분 회사에서 회사를 세웠거나 주식을 가장 많이 쥔 1인과 그 특수관계인들은 ‘유아독존’의 태도다. 기업은 주주만이 아니라 노동자, 소비자, 협력업체, 지역사회 공동의 것이라기보다 그들 ‘개인’의 것으로만 취급된다.

딸들이 요즘 가장 많이 시켜먹는 한 치킨 프랜차이즈의 회장님은 10억원 넘는 회삿돈을 빼돌려 아들 미국 유학비 지원 등에 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회사 동료들과 가끔 가는 초밥 전문 뷔페 프랜차이즈의 회장가도 회삿돈 횡령 혐의 등으로 수사받고 있다. 아들이 세운 엔터테인먼트사에 그룹 계열사 자금을 지원하는 등 500억원 넘는 회삿돈을 횡령하거나 배임으로 손해를 끼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건설사 회장님. 직원을 시켜 일본도와 석궁으로 닭을 잡게 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으로 지난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인터넷 업체 회장님의 직장 갑질과 횡령 의혹….

수없이 많은 기업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비리와 범죄의 뿌리는 자신이 세웠거나 자신이 대주주인 회사가 자신의 것이란 오래된 착각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단순히 지분을 넘겨주는 것을 넘어 온갖 편법과 탈법, 불법을 써가면서까지 회사를 통째로 자녀에게 물려주려는 것도 회사를 내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회사를 내 것으로 여기는 이들은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마저 자신이 맘껏 부릴 수 있는 대상으로 물화한다. 노동자는 기껏 자신을 위해서 일하는 존재다.

내 돈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불문하고 회사를 세우는 순간 내가 회장을 맡든지 아니면 대표이사나 이사회 의장을 맡든지 간에 나 또한 계약을 맺고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생각한다면 기업범죄는 줄고 봉건적 기업문화도 바뀌지 않을까. 그 첫 단추는 이윤 극대화만이 아니라 내가 일하는 회사가 누구의 것인지 묻는 것이다.

*상법 등 법률적 정의와 주식회사 형태 등을 따로 구분짓지 않은 채 일상생활에서 쓰는 용어로서 ‘회사’를 썼음을 밝혀둔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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