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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단독] ETN 살리기 나선 한국거래소…±3배 레버리지 허용 땐 ETN 회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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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가 사실상 고사 위기에 몰린 상장지수증권(ETN, 잠깐용어 참조) 시장 살리기에 나선다. 거래소는 내년 고배수(±3배) ETN 허용, 발행한도제한 폐지 등 업계 숙원 사항을 추진하기로 했다. 당장 연말까지는 세칙 개정을 통해 증권사가 자체적으로 지수를 개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제2, 제3의 양매도 ETN’이 나오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2014년 도입된 ETN은 ‘Exchange Traded Note’의 약어로 거래소(Exchange)에서 거래(Traded)되는 채권이라는 뜻이다. 즉 자산운용사가 발행해 거래소에 상장한 펀드는 ETF(Exchange Traded Fund), 증권사가 만들어 상장하면 ETN이 된다. 원자재·금리·주가 등 다양한 자산에 연동시키고 기초자산 가격 움직임에 따라 수익을 올리도록 설계됐다.

매경이코노미

한국거래소가 위기에 빠진 ETN 시장을 살리기 위해 고배수 레버리지 허용 등을 추진한다.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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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규정 개정 나서기로

▷업계 숙원 풀릴지 관심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2020년부터 기초자산 등락폭의 3배수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ETN 허용과 발행한도제한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제도 개선 방안을 금융당국에 제출했다. 이는 금융위원회가 지난 5월 말 발표한 ‘혁신성장과 실물경제 지원을 위한 파생상품 시장 발전 방안’ 후속 조치의 일환이다. 거래소는 당국과 협의해 내년부터 규정 개정을 위한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현재 국내 시장에는 기초지수 상승분의 2배 수익률을 추구하는 레버리지 상품만 도입된 상태다. 한국거래소는 ETN 시장에서 투기적 거래가 횡행하는 것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3배수 레버리지 상품 허용에는 보수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시장에서는 고배수 ETN에 대한 수요가 상당했다. 2015년 투자자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던 ‘UWTI ETN(VelocityShares 3x Long Crude Oil ETN)’이 단적인 예다. UWTI ETN은 원유 대표 지수인 ‘S&P GSCI Crude Oil Index’의 플러스(+) 3배 수익률을 추구했다. 당시 국내 ETN 전체 거래량은 4조~5조원에 불과했지만 3배수 UWTI ETN의 거래량은 1조원에 달했다.

발행한도제한도 옥상옥 규제라며 업계는 줄곧 폐지를 요구해왔다. 현재 증권사는 자기자본의 50%까지만 ETN을 발행할 수 있다. 국내 증권사는 이미 자기자본의 100%라는 대출 한도에 갇혀 자기자본만큼 총량 규제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발행상품 종류까지 제한받는 것은 지나친 규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ELS와의 형평성 논란도 뒤따랐다. ELS는 지난 2015년 홍콩H지수 급락으로 투자자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자 그해 10월부터 전월 상환된 액수만큼만 발행을 허용하는 총량 규제를 적용했다. 하지만 2017년 말 해당 규제가 일몰되면서 2018년부터는 H지수를 기반으로 한 ELS 발행이 크게 늘었다. 이에 앞서 거래소는 당장 연말까지 증권사가 지수를 직접 개발해 거래소에 상장 신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데 속도를 내기로 했다. 거래소는 12월 중순까지 관련 세칙을 개정할 예정이어서 내년부터 민간 사업자도 지수 사업에 나설 수 있게 된다.

현재 적용 중인 시행세칙에 따라 지수 산출기관으로 인정받으려면 지수 사업 2년 이상 영위, 5명 이상의 전문인력 유지, 20개 이상 지수 개발·운영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거래소 측은 “지수 산출기관 최소 요건은 지수에 조작이나 오류가 발생하면 신뢰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유지해온 제도였다”며 “투자자 보호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지수 사업자가 등장하도록 제도 개선에 나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래소는 진입장벽을 낮추는 대신 지수 조작이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관리와 심사를 강화한다. 최근 1년간 지수 산출과 공표 과정에서 오류 횟수가 5회 이상이면 관련 지수를 활용한 상품의 상장을 제한하기로 하고 업계 의견을 수렴 중이다. 지수 오류를 발견했을 때 즉각 신고하는 의무도 부여한다.

‘발행인 운용능력 평가제도’도 도입하기로 했다. 유동성 공급(LP), 상품 운용 경험, 내부 신고 등 업무를 성실히 수행했는지 점수로 매겨 20점 이상일 때만 새로운 상품을 상장하도록 허가할 계획이다. 증권업계는 지수 시장의 진입 문턱을 낮춘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별도 평가제도 등을 도입한 것은 아쉽다는 반응을 내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평가제도 유무와 무관하게 지수에 오류가 생기면 해당 상품과 금융사는 시장에서 자연스레 도태 수순을 밟을 것”이라며 “지수 산출기관 요건 대신 새로운 규제를 만든 것 같아 아쉽다”고 전했다.

▶기 팍 죽은 ETN 시장

▷외형 커졌지만 내실은 부실

거래소가 이처럼 기 살리기에 나선 것은 ETN 시장이 사실상 고사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ETN 시장은 지난 11월 14일 기준 종목 수 194개, 발행 총액 7조3753억원으로 집계됐다. 2014년 11월 17일 도입 시점(종목 수 10개, 발행 총액 4693억원)에 비해 종목 수는 약 19배, 발행 총액은 약 16배로 늘었다. 연도별 일평균 거래대금은 2014년 2억2000만원에서 올해 234억3000만원으로 약 107배가 됐다. 그러나 발행 총액에 비해 내실은 턱없이 부실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매출액에 해당하는 ‘투자자 보유금액’은 2018년 말 1조원에서 지난 10월 말 6800억원으로 뚝 떨어졌다. 일평균 거래대금 역시 2018년 422억원에서 올 들어 지난 11월 14일까지 234억원으로 감소했다. 지난 10월 말 기준 매출액 상위 3사는 한국투자증권(3400억원, 49%), 신한금융투자(2300억원, 33%), 삼성증권(900억원, 14%) 등으로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5개 발행사는 관련 부서의 유지 비용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다.

일부 종목 편중 현상도 아쉬운 대목이다. ETN 시장 급성장에는 한국투자증권의 ‘양매도 ETN’이라는 히트상품이 자리한다. 코스피 양매도 ETN은 코스피200지수가 박스권에서 움직일 경우 이익을 얻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중위험·중수익 상품으로 인식되며 지난해 1조원에 육박하는 투자금을 쓸어 담았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올해 2·8월 등 변동성이 큰 장세에서 손실을 냈다. 양매도 ETN 상품에 투자자가 쏠려 있는 상황에서 이 상품의 인기가 식자 ETN 시장 투자자금도 줄었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거래소가 ETN 시장 살리기에 나섰지만 우려 요인은 있다. 무엇보다 지난 7월 불거진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투자 손실로 파생상품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다. 거래소는 ETN 발전 방안을 마련하고 금융위에 보고까지 마쳤지만 세부 협의를 위한 일정 조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 입장에서는 DLF 사태에 대한 비난 여론이 비등하다 보니 DLF 대책 마련을 우선순위에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졌던 탓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ETN은 원자재 시장과 해외 주식에서 강점이 있고 수익성도 안정적인 편”이라며 “투자 저변 확대를 위해 상품을 다양화하고 ETN에 대한 규제 합리화를 꾸준히 추진해가겠다”고 밝혔다.

잠깐용어 *상장지수증권(ETN) ETN은 2000년 이후 세계 경제 저금리·저성장 국면이 이어지며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논의되기 시작했고, 지난 2014년 11월 한국 ETN 시장이 개설돼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원자재·금리·주가 등 다양한 자산에 연동시키고 기초자산 가격 움직임에 따라 수익을 올리도록 설계됐다.

[배준희 기자 bjh0413@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037호 (2019.12.11~2019.12.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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