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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유엔군, 6·25전쟁 영웅 '군마 레클리스' 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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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탄약 및 부상자 운반에서 커다란 공 세워 / 철통처럼 굳건한 한·미동맹 상징하는 말[馬]로 자리잡아

세계일보

미 해병대원들 사이에 ‘6·25전쟁의 영웅’으로 불리는 말 레클리스(오른쪽). 전쟁 기간 고지 위의 미군을 위해 탄약을 실어나르고 내려갈 때에는 부상병을 운반했다. 주한미군 트위터 캡처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인들 사이에 훨씬 더 유명해졌고 결국은 미국으로 건너가 ‘영웅’ 대접을 받으며 생을 마감한 말 한 마리가 있다. 이름은 ‘무모하다’는 뜻의 레클리스(Reckless). 미 해병대 하사 계급장까지 단 이 말은 6·25전쟁 당시의 철통같은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동물로 기억된다.

주한미군사령부와 유엔군사령부는 10일 나란히 트위터에 레클리스에 관한 글과 사진을 게재했다.

두 사령부에 의하면 레클리스는 미 해병대 소속의 하사(Staff Sergeant)로 6·25전쟁의 영웅이다. 미군측은 “이 용맹한 말은 높은 산을 오르며 탄약을 실어날랐고, 산에서 내려갈 때는 부상병을 운반했다”며 “(미군에서 부상자에 주어지는) 퍼플하트 훈장을 2개나 받았다”고 소개했다.

“레클리스의 용맹함이 수많은 저서와 예술작품의 영감이 됐다”고도 했다.

레클리스가 처음부터 군용인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아침해’란 이름을 얻은 이 말은 원래 광복 직후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마로 활약했다. 두 살이 된 1950년 6·25전쟁 발발과 동시에 마부한테 팔려 한동안 마차를 끌고 여기저기 다니는 일을 했다.

전쟁 기간 한국에 주둔한 미 해병대 소속 어느 장교의 눈에 띈 것이 군용으로 전환된 계기가 됐다. 미국의 6·25전쟁 참전용사들에 따르면 이 말은 기억력이 매우 좋아 한 번 갔던 길을 모두 기억해 부대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보통 말은 겁이 많은 동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말은 군인조차 두려워하는 전장에서 끝까지 역할을 해냈다. 오죽하면 미군 장병들이 “이 말은 무모할 정도로 용맹하다“며 ‘레클리스’란 새 이름까지 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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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 하사로 임명돼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 레클리스. 왼쪽의 ‘E-6’라는 글자 위 문양은 미 해병대의 하사 계급장이다. 주한미군 트위터 캡처


1953년 6·25전쟁이 끝나고 레클리스는 미 해병대 장병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거기서 하사 계급장을 달고 계속 ‘군복무’를 하다가 1960년 퇴역했다. 1968년 약 20세의 나이로 죽은 뒤에도 미국인들의 추모가 이어졌다. 한국마사회도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4년 “우리나라 말 문화를 빛낸 영웅”이라고 아침해, 미국명 레클리스를 기렸다. 특히 마사회는 레클리스를 기념하는 의미로 70분 동안 20두의 말이 지축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를 내는 이색 공연에 ‘레클리스 1953’이란 이름을 붙였다. 지난 10월 경마공원 실내마장에서 ‘레클리스 1953’ 공연이 열렸다.

레클리스가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인들의 영웅이 됐다면 미국 출신으로 한국을 한껏 빛낸 경주마도 있다. 지난 9월 과천 경마장에서 열린 제4회 코리아컵·코리아스프린트 국제경마대회의 스프린트 우승마 ‘블루치퍼’(4세)와 코리아컵 우승마 ‘문학치프’(4세)가 대표적이다.

둘 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경주마 훈련을 받았다. 나란히 한국인 기수와 출전, 쟁쟁한 외국 말들을 제치고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당시 경마장을 찾은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 대사는 이를 두고 트위터에 “한·미 동맹이 승리의 원동력(ROK-USA Alliance produces winners)”이란 글을 올렸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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