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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정진홍의 컬처 엔지니어링] 달빛을 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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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무협지의 생생한 무대… 달빛황제 文을 겨눈 협객 尹의 月光斬刀

2020년 경자년에는 천하대의 구현하여 나라를 구하리라!

조선일보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 ‘붉은 수수밭’으로 유명한 중국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모옌(莫言)의 소설 가운데 ‘월광참(月光斬)’이 있다. 직역하면 ‘달빛을 베다’이다. 여기 등장하는 월광참도(月光斬刀)는 피를 내지 않고도 사람의 목을 벨 수 있는 칼이다. 신묘한 쇳덩어리에 대장장이 스스로 자신의 피를 떨구는 혈제(血祭)를 지낸 후 지옥불보다 뜨겁게 달구어 두드리고 또 두드려 만든 것이 월광참도다. 그 얼마나 날 선 칼이면 베어도 피가 나지 않을 정도이겠는가. 작금의 대한민국에 그 월광참도를 들고 홀연 등장한 협객(俠客)이 있으니, 다름 아닌 검사 윤석열이다. 얼마 전 청와대 압수수색은 그의 월광참도가 잠시나마 ‘번쩍’거린 예광이었다. 마치 칼집에 꽂혀 있던 칼을 살짝 들어올려 그 차갑게 날 선 빛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듯 청와대에 대한 압색은 앞으로 전개될 일들이 결코 예사롭지 않음을 강렬하게 예고한 것이다.

# "이게 나라냐" 싶을 만큼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무협지의 생생한 무대다. 만약 지난해 94세를 일기로 타계한 무협의 신필(神筆) 진융(金庸)이 살아 있었다면 최소 열 권짜리 대하장편 무협지를 작금의 대한민국을 무대로 썼을지 모른다. 여제(女帝) 박씨의 어처구니없는 몰락 이후 덩그러니 비어 있던 옥좌(玉座)에 정말이지 대책 없이 덜커덩 앉아버린 달빛황제 문씨의 난정(亂政)이 그치지 않자 월광참도를 지닌 협객 윤이 보다 못해 오늘의 자신을 있게 했던 황제 문을 향해 날 선 칼을 들이대는 놀라운 반전(反轉)에 반전이 거듭되는 모습이니 말이다.

# 그런데 달빛황제 문이 협객 윤을 날 선 검사들의 대장으로 세운 것이 불과 다섯 달 전인데 당시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리라 생각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 하지만 황제 문이 협객 윤을 중용한 것은 그 자신의 실수나 실책이기보다는 차라리 팔자요 운명인지 모른다. 달빛황제 문씨는 '재인(在寅)'이란 이름자에서 보듯 호랑이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관상은 다분히 소(牛)다. 본래 소와 호랑이는 천적이다. 관상은 소인 사람이 이름자에는 호랑이를 지녔으니 자기 천적을 스스로 업고 다니는 형국이지 않은가. 결국 협객 윤이 소를 닮은 달빛황제 문의 급소를 치는 호랑이인 셈이다. 더구나 2019년 기해년 한 해 달빛황제 문의 운세는 12운성(運星)의 '태(胎)'에 해당하여 '갇히고 고립되어' 지극히 외로운 운세였다. 여제 박씨가 2016년에 딱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런데 내년 2020년 경자년 문의 운세는 12운성의 '절(絶)'에 해당한다. 갇히고 고립되는 것을 넘어서 '끊고 내쳐지는' 형국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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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빛황제 문은 세상이 요동치는 가운데 비어 있던 옥좌에 슬쩍 얹히듯 오르긴 했으나 자기 힘으로 오른 것이 아니었다. 그를 옥좌에 떠밀다시피 한 휘하들 역시 전투다운 전투도 하지 않은 채 성을 장악해 여제 박씨가 버리다시피 남겨놓은 전리품들이 성안에 발에 채듯 널려 있자, 그것을 게걸스럽게 집어 먹기에 바빴다.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태양광, 2차전지, 스마트시티 등으로 포장된 각종 이권에 빠져들어 흥청망청 어지럽게 돌아가며 자기편을 이곳저곳에 흩뿌리듯 진주시켰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들이 그토록 표방했던 '공정'의 깃발은 빛이 바래다 못해 찢긴 지 오래다. 이른바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을 통해 드러난 바이지만, 달빛황제 문의 최측근이라 할 윤건영(국정상황실장)과 김경수(경남지사)가 공식 인사 라인이 아닌 천경득과 유재수를 통해 인사를 쥐락펴락한 정황은 그들 네 명으로 구성된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해 이미 드러나 있다. 청와대 내부의 인사 관리에 국한해야 할 총무비서관실 인사담당 선임행정관 천경득이 어째서 청와대 바깥 인사까지 장기판의 차(車), 포(包) 치듯 인사 전횡에 나섰던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청와대 인사수석은 허수아비였고 총무비서실의 일개 행정관이 이를 뛰어넘어 사인방의 일원으로 인사를 쥐락펴락했으니 그토록 '공정, 공정!'을 강조했던 달빛황제 문씨의 얼굴이 '흙빛'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게다가 이게 어디 금융권만이었겠나. 이러니 최순실만 욕할 거 없다. 이건 남자 '최순실'이 하나도 아닌 여럿이 아예 청와대 안에 상주한 것이나 진배없는 일 아닌가.

# 윤석열은 '협(俠)'의 정신을 지닌 이 시대의 협객(俠客)이다. 협(俠)의 정신이란 대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사신취의(捨身取義)의 정신이다. 달리 말해 천하의 근심을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기쁨은 나중에 기뻐하는 자세다. 그런 그를 보노라면 이순신이 오버랩된다. 변경 녹둔도에서 만호로 떠돌다 종6품 정읍현감에서 수직 상승해 정3품 전라좌수사를 거쳐 삼도수군통제사에 올라 왜적에게 무너지는 조선을 홀로 떠받치고 있다가, 다시 선조 임금에 의해 역적으로 내몰려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으나 백의종군한 후, 13척으로 적선 133척을 멸절시킨 명량대첩을 이뤄내고 끝내 노량해전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충무공과 닮아 보인다. 그래서 협지대자(俠之大者), 즉 협(俠)의 대의가 있는 이는 위국위민(爲國爲民), 곧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것이리라.

# 시절이 하수상하게 요동칠수록, 시대가 더없는 난세의 수렁으로 빠져들수록 강호의 무협은 되살아난다. 인재강호(人在江湖) 신불유기(身不由己)라 했다. 사람이 강호에 있으면 그 몸은 더 이상 제 것이 아니다. 협객 윤도 마찬가지다. “목숨에 기대지 말지어다. 살고자 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것이다.” 영화 ‘명량’에서 최민식이 분한 이순신이 한 말이다. 때론 영화가 역사이고, 무협이 미래다. 협객 윤의 월광참도가 달빛을 베는 광경을 곧 목도하리라.

[정진홍 컬처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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