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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만물상] 김우중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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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90년대 대한항공 승무원들에게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별난 사람'이었다. 일등석을 탔지만 의자엔 거의 앉지 않았다. 마치 노숙인처럼 바닥에 드러누워 담요를 뒤집어쓰고 내내 잠만 잤다.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기내식조차 거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시차를 이겨내고 이 나라 저 나라 날아다니며 '세계경영'을 하고 다녔다.

▶대우가 아프리카·동유럽·남미·동남아 등으로 뻗어나갈 때 그는 1년 중 200일을 해외에서 보냈다. 시간을 아끼려 스케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움직였다. 직원들과 회식은 길어야 20분이었다. 한 비서 출신은 "우리가 두 숟가락 먹고 나면 회장님은 벌써 식사를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고 했다. 술은 한 방울도 못 하는 체질이어서 외국 귀빈을 접대할 때는 비서가 몰래 양주잔에 넣어둔 보리차를 마셔가며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한다. 일 외엔 취미도 없고 골프조차 안 치는, 말 그대로 '일벌레'였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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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대우가 동유럽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자 현지 언론은 그를 '김기스칸'이라 불렀다. 칭기즈칸 이후 동유럽을 휘젓고 다닌 첫 아시아인이라고 했다. 초원을 휩쓰는 몽골 기마병처럼 김 회장의 '세계경영'도 지구가 좁게 보일 만큼 가공할 스피드로 진행됐다. 단순 제품 수출을 뛰어넘는 현지화 전략으로, 세계 곳곳을 '경제 영토'로 만드는 장대한 비즈니스 모델을 펼쳤다. 숨 가쁜 확장을 거듭하는 '닥공(닥치고 공격)' 경영으로 한때 재계 순위 2위까지 올랐지만 기적은 거기까지였다. 외환 위기의 쓰나미가 닥쳐오면서 대우는 빚에 못 이겨 공중분해가 되는 운명을 맞고 말았다.

▶대우는 해체됐지만 '김우중'은 사라지지 않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그의 말은 젊은 세대의 도전 정신을 자극하는 어록이 됐다. 그는 청년들에게 입버릇처럼 "밖을 보라"고 했다. "해외에 나가면 도처에 돈이 보인다"며 세계를 무대로 뛰라고 했다. 그는 지난 2000년 도피하다시피 출국해 주로 베트남에서 살았다. 하노이에 교육 시설을 차려놓고 해외 사업을 꿈꾸는 청년들을 데려다 직접 강의도 하며 교육을 시켰다. 이 인재 양성 사업이 그의 '유작(遺作)'이 됐다.

▶김 회장 건강에 이상이 감지된 것은 재작년 여름이었다. 투병 생활 동안 거의 말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넓은 세상'을 외쳤던 그가 자꾸만 작아지고 쪼그라드는 지금 시대를 향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세계를 삼킬 기세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개척했던 '김우중 정신'이 절실한 요즘이다.

[윤영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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