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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집으로 가는 험난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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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장애인 홈리스 김한수씨가 서울역에서 겨울을 나는 이유

위험한 쪽방 나왔지만 주거지원 정책은 진입 장벽 높아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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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4일 오후 5시, 김한수(68)씨는 서울역 2번 출구 아래 지하도에서 휠체어에 앉아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파란색 얇은 점퍼와 얼마 전 활동가와 함께 남대문시장에서 산 검정 바지를 입고 양말 두 켤레를 겹쳐 신은 김씨가 머무는 곳은 서울역이다. 서울역 지하도와 서울역 3번 출구 앞에서 낮을,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에서 밤을 난다. 김씨의 하루 일정은 단조롭다. 저녁 8시 지하도에서 지원센터로 올라가 잠을 청한 뒤 새벽에 다시 지하도로 내려온다. 빵을 사먹을 때나 담배 피울 때를 제외하면 하루 내내 대체로 지하도에서 머문다.

서울역에서 ‘사는’ 김씨에게도 주소지가 있다. 서울시 용산구 동자동에 있는 한 쪽방. 하지만 김씨는 날씨가 춥건 덥건 거리에서 산다. 매달 25만원씩 꼬박꼬박 월세를 내면서도 지난 9월17일 계약한 이후 한 번도 그 방에 가지 않았다. 김씨에게 쪽방은 ‘집’이 아니었다.

다리 잃고 직업도 잃어



10월 말, 김씨는 ‘자신의 구역’인 서울역 3번 출구 앞에서 볕을 받으며 휠체어에서 졸고 있었다. 역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김씨 옆을 멀찌감치 돌아 지나갔다. 김씨의 코끝엔 미처 다 닦지 못한 코피가 검붉게 말라 있었다. “아침에 휠체어 바퀴가 턱에 걸려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아는 놈이 밀어준다고 하다가 그렇게 됐다.” 김씨의 오른쪽 무릎 아래 바지가 힘없이 펄럭였다. 20년 전 사고로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김씨는 이후 삶이 180도 달라졌다.

“유명 구두 회사에서 20년 정도 일했다. 여자 구두를 디자인했다. 신발 디자인부터 가죽 자르고 굽 들어가는 것까지 검수하고 공장에 일감이 나가는 것까지 관리·감독했다. 내 구두가 인기가 있어서 오래 일했다.” 김씨가 하청을 준 업체에 김씨가 뜨면 사장들이 주머니에 돈을 찔러주던 시절도 있었다. 일감이 줄어들라 김씨 말 한마디에 업체 사장들이 “벌벌 떨었다”.

다리를 절단하면서 회사를 그만둔 뒤 다리가 아파 7년 동안 입원했지만 병원에서의 기억은 좋지 않았다. “보호사들이 툭하면 나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서 때렸다. ‘왜 때리냐’고 욕하면 더 때렸다. 그래서 어느 날 내가 당한 일을 쪽지에 써서 보호사들 관리자 손에 쥐여줬다. (문제가 커질까봐인지) 병원에서 나가고 싶냐고 물어보길래 그렇다고 했다.”

그렇게 “새장을 나온 새처럼” 거리 생활을 시작했다. 올 1월이었다. 거리 대신 노숙인 시설에 들어가는 게 어떻겠냐는 홈리스 단체의 조언도 있었지만 폭행당한 기억 때문에 거절했다. “담배 한 대 딱 피우고, 맥주 한 캔 마시고 자면 좋다. 쪽방보다 여기가 낫다. 내가 여기(서울역 3번 출구 앞) 있으면 사람들이 안 온다. 되레 피해 간다.”

김씨의 주소지 동자동 쪽방은 화장실과 샤워실이 공용인 여인숙의 방 한 칸이다. 화장실은 푸세식이다. 비장애인에게도 버거운 푸세식 화장실은 휠체어를 타는 신체 장애인인 김씨가 사용하기엔 매우 위태하다. 김씨는 재활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아 목발을 이용해 걸어본 적이 없다. 휠체어에서만 생활한 김씨가 쪽방에 딸린 화장실을 이용하다가는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엘리베이터 있는 전세임대주택에 살고 싶지만



게다가 쪽방이 있는 건물들은 대부분 오래돼 문턱이 높은데다 복도 너비가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아, 김씨가 방에 들어가려면 휠체어에서 내려 몸을 바닥에 끌며 문턱을 넘어야 한다. 휠체어를 타고 복도에 들어간다고 해도 휠체어를 회전할 공간이 나오지 않아 이동이 제한적이다. 김씨는 “쪽방에 갈 수 없다. 쪽방이 경사가 높은 데 있어서 휠체어로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다. 그래서 쪽방엔 짐만 두고 있다.”

김씨에겐 거리가 쪽방보다 더 살아가기 편한 공간인 셈이다. 서울역엔 장애인용 화장실이 있고 이동이 편한 엘리베이터도 있다. 빵을 사먹을 수 있는 편의점과 급식나눔터도 가깝다. 풍찬노숙이 비바람을 가려주는 쪽방 생활보다 나은 아이러니였다.

올 3월에도 쪽방에서 살아보려고 했지만 열악한 주거환경에 마음을 돌렸다. “못 살겠던” 쪽방에 다시 김씨가 6개월 만에 주소지를 두기로 결정한 덴 이유가 있다. 현재 주거취약계층이 임대주택을 신청하려면 쪽방, 비닐하우스, 고시원 등 비주택에서 3개월 이상 거주한 기록이 있어야 한다. 이동권이 보장되지 않은 쪽방 대신 노숙을 택한 김씨는 애초에 임대주택을 신청할 자격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장애인인데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홈리스인 김씨는 주거취약계층이 아니었던 걸까.

김씨가 3개월 동안 임대주택을 신청하는 과정은 장애인 홈리스 지원체계의 사각지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김씨는 활동가와 함께 서울주택도시공사(SH), 한국토지주택공사(LH), 용산구청, 국토교통부, 보건복지부, 동주민센터까지 여러 곳을 찾아 문의했지만, 주거환경이 ‘최악’인데다 장애까지 앓고 있는 김씨에게 살 만한 집을 지원해준다는 답을 얻진 못했다.

쪽방에 주소지를 두며 9월부터 ‘주거취약계층 예정자’가 된 김씨는 애초에 주거취약계층이 살 곳을 지원해주는 임대주택 중 매입임대주택을 신청하려고 했다. 매입임대주택은 공공주택사업자가 주택을 매입해 임대를 놓는 것으로, 2년마다 건물주와 재계약해야 하고 전세금이 오를 수 있는 전세임대와 달리 20년간 살 수 있어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LH와 SH로부터 매입임대주택의 경우 대체로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신체장애인인 김씨가 여전히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주거취약계층 주택지원은 ‘주는 대로 살라는 뜻’으로 보였다. 현재 SH는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매입임대주택을, LH는 매입임대·전세임대를 운영한다.

방향을 바꿔 매입임대보다 주거지를 선택할 폭이 넓어 상대적으로 엘리베이터가 있을 확률이 높은 전세임대를 신청하려 문의했지만 장벽은 다른 곳에 있었다. LH는 김씨에게 이혼을 증명할 서류를 요구했다. 국토교통부의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업무처리지침’(지침)의 소득기준 때문이다. 지침을 보면 입주 대상자는 ‘무주택세대 구성원으로서 해당 세대의 월평균소득이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소득의 50퍼센트 이하인 자’다. 실제 관계가 단절됐더라도 주민등록상 아내가 있는 김씨의 경우 아내 소득이 일정 이상이면 주거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또 아내가 소득이 있는지 확인하려면 배우자의 소득조사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김씨는 몇년째 소식이 끊겨 아내와 자녀의 연락처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김씨는 주거지원을 받기 위해 연락이 끊긴 아내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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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길에서 숨진 두 명의 장애인



연이은 거절 뒤 긴급복지지원법에 따라 주거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구청에 문의했지만 또다시 대상자가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긴급복지지원법은 “생계곤란 등의 위기상황에 처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신속하게 지원함으로써 이들이 위기상황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긴급복지지원법의 ‘위기상황’을 보면 보건복지부 장관 고시에서 정한 사유로 “가족으로부터 방임·유기 또는 생계유지의 곤란 등으로 노숙을 하는 경우”라는 항이 있지만, 노숙을 하더라도 “노숙인 시설 및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에서 노숙인을 사정(조사)하여 시·군·구청장에 긴급지원 대상자로 신청한 경우” “노숙을 한 기간이 6개월 미만”이라는 두 조항을 만족해야 한다.

김씨를 돕는 강민수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간사는 “구청에 긴급지원 대상자로 신청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구청에선 김씨의 처지가 ‘긴급복지지원법에서 정한 위기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해 긴급지원 대상자로 추천할 수 없다’고 답했다. 노숙을 위기상황으로 판단하지 않으면 뭐가 위기상황인 건지 모르겠다. 긴급지원은 노숙하지 않도록 지원하는 제도인데 제도가 섬세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긴급복지지원법은 ‘갑작스러운’ 실직이나 사고 등으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지원하는 제도라, 노숙이 6개월이 넘는 경우는 만성 노숙인으로 판단해 긴급지원 대상자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김씨는 아내에게 이혼소송을 낸 서류를 근거로 배우자와의 별거를 인정해주겠다는 SH에 매입임대 신청을 했다. 하지만 승인되리란 보장은 없다.

강 간사가 수개월째 김씨의 임대주택 진입을 돕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강 간사는 2016년 장애를 가진 홈리스 두 명이 길에서 죽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2016년 6월9일 불편한 다리 탓에 휠체어 생활을 했던 박원규(당시 53살·가명)씨가 서울역 우체국 앞 지하도 계단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그를 알고 있던 주변인들에 의하면 1997년 IMF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서울 중구 만리동에서 박씨가 운영하던 봉제공장이 망한 뒤 박씨는 거리에서 생활하게 됐다. 2011년 어느 날부터, 막노동을 하다 못을 밟아서인지, 노숙 중에 깨진 유리 조각을 밟아서인지 서울역에서 대장 노릇을 했던 박씨가 목발을 짚고 다녔다. 차일피일 치료를 미룬 게 화근이 돼서 구더기가 생긴 왼쪽 다리는 2014년 겨울엔 거의 썩어버렸다고 한다. 몇 번이나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지만 노숙 중에 제대로 치료받지 못했던 그는 휠체어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그리고 2016년 여름을 앞두고 계단에 떨어져 사망했다.

박씨와 단짝으로 지냈던 오영민(가명)씨도 박씨가 사망한 지 보름 만에 119에 실려갔다. 오씨 또한 하지정맥류와 관절염 탓에 휠체어 생활을 했다. 박씨가 죽고 한 달 뒤 오씨도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강 간사는 “홈리스 중에서도 장애를 가진 경우 생활하기 더 열악하다. 심지어 비주택인 쪽방에서조차 그들은 땅바닥을 기어야 하는 등 인간으로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모멸적인 환경에 처한다”고 말했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6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통계결과표’를 보면 노숙인은 1만1340명으로 쪽방에 거주하는 6192명을 포함하면 약 1만7500명으로 늘어난다. 이 중 ‘지적장애, 시각장애, 손·팔·다리 등의 장애 진단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33.9%였다. 장애가 있다고 답한 거리 노숙인의 55%, 쪽방 거주민의 51.8%가 ‘지체장애가 있다’고 답했다.

여성·장애인 홈리스 지원 명문화해야



김씨의 소득은 기초노령연금 30만원이 전부다. 현재 두 달치 월세는 구청에서 준 지원금으로 냈다. 다행히 다음달부턴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돼 수급비를 받게 됐다. 수급비로 쪽방이 아닌 곳에서 ‘살고’ 싶지만 요원한 바람이다.

이동현 홈리스 공동행동 대표는 “기존 ‘노숙인 지원법’에 장애인, 여성 등 핸디캡이 있는 홈리스들의 지원을 분명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은 ‘노숙인 등’이라는 문구로 대상자를 뭉뚱그렸다. “노숙의 고통이 홈리스 모두에게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 노인, 아동, 장애인에겐 문턱이 더 높다. 예를 들어 여성의 경우는 가정폭력으로 노숙을 택한 경우가 상당수인데 남성 위주의 시설 탓에 이용하기가 어렵다. 핸디캡이 있는 사람들에게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장애인, 여성, 노인이라는 대상을 분명히 적고 근거를 마련해야 그들이 지원체계에서 배제되지 않는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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