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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헥시트' 빈자리 노리는 도쿄·싱가포르…손 놓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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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도쿄가 위기에 빠진 홍콩의 헤지펀드에 구애를 보내고 있다(Tokyo woos hedge funds in crisis-hit Hong Kong)'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홍콩의 헤지펀드 운용회사를 유치하려는 일본 도쿄도의 노력을 집중 조명했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비밀리에 홍콩에 대표단을 파견해 헤지펀드 운용회사와 접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FT는 "일본이 파견한 대표단은 아시아 금융허브로서 홍콩의 미래에 불신이 싹트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초기 신호"라고 해석했다.

실제로 금융중심지로서 홍콩이 보여주는 위상은 옛날 같지 않다. 세계 최고의 금융도시를 뽑는 금융중심지 순위에서 홍콩은 지난 9월 기준으로 3위를 기록했다. 여전히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순위다. 하지만 순위 선정의 기준이 되는 국제금융센터지수(GFCI)는 771점으로 직전 조사보다 12점이나 하락했다. 호시탐탐 홍콩의 자리를 넘보는 싱가포르(4위)가 762점으로 점수 차이를 좁혔고, 도쿄(6위)도 757점으로 홍콩을 쫓고 있다.

올해 들어 계속되고 있는 시위는 금융중심지라는 홍콩의 위상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거주 여건이나 생활 환경이 불안해지면서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홍콩을 탈출하는 '헥시트(HKExit·홍콩+엑시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홍콩을 통해 외자를 유치하던 중국 정부가 얼마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홍콩의 힘을 빼기 시작한 것도 변수다. 중국 정부는 상하이와 선전을 키우고 중국 금융회사의 해외 소유권 제한을 점진적으로 철폐하는 등 홍콩이 아닌 다른 외자 도입 루트를 개척하고 있다. 상하이는 금융중심지 순위에서 5위에 올랐을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홍콩과학기술대(HKUST)의 베로니크 라퐁-비네(Veronique Lafon-Vinais)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최근의 시위가 홍콩 금융업 고용에 확실히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이 홍콩에 직접 대표단까지 보내서 헤지펀드 운용회사와 물밑 접촉을 하고 있는 건 이런 맥락에서다. 여러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홍콩에 본사를 둔 헤지펀드 회사들은 실제로 싱가포르와 도쿄 가운데 어디로 사무소를 이전할 지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글로벌 투자은행은 현지에서 고용한 인력이 많고 이미 투자한 인프라도 적지 않기 때문에 움직이기 쉽지 않다. 반면에 헤지펀드는 인력이 적어 이전이 상대적으로 쉽다. 반면 굴리는 돈의 규모는 헤지펀드도 웬만한 투자은행 못지 않기 때문에 이전의 효과는 크다. 아시아 금융중심지 자리를 노리는 도쿄도가 홍콩의 헤지펀드 운영회사에 구애를 보내는 이유다.

FT는 "도쿄도의 1차 목표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동일본 대지진 직후 일본을 빠져나간 글로벌 자본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라며 "다양한 혜택을 제시해 헤지펀드 회사를 유혹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싱가포르도 지정학적인 이점과 홍콩보다 훨씬 좋은 거주여건, 낮은 세금 등을 앞세워 홍콩의 금융회사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조선비즈

아시아 금융중심지 경쟁에서 한국은 갈수록 뒤처지고 있다. /일러스트=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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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홍콩을 따라잡기 위해 도쿄와 싱가포르가 전력투구하고 있지만, 아시아 금융허브를 노린다던 한국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0월 열린 금융중심지추진위원회에서 지난 10년간의 금융중심지 추진 전략이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금융중심지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며 우리 금융중심지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가일층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또한 말뿐이고 뚜렷한 노력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홍콩이 흔들리자 재빠르게 대표단을 파견한 도쿄도와 달리 우리 정부 차원에서 홍콩의 금융회사를 유치하기 위해 특별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최근 들어 금융위는 사모펀드나 부동산 PF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부 은행이 일부 상품에 한해 불완전판매를 하면서 발생한 문제인데 모든 금융회사, 모든 사모펀드 상품에 대해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가뜩이나 현재 금융중심지인 서울과 부산도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북 제3금융중심지 지정 여론이 다시 힘을 받고 있다. 금융위가 한 차례 퇴짜를 놨지만 전북 지역에서는 최근 제3 금융중심지 지정이 필요하다며 다시 여론몰이하고 있다. 지난 9월 발표된 금융중심지 순위에서 서울은 36위로 타이베이(34위), 버뮤다(35위)보다 아래였다. 2015년 9월에는 서울의 순위가 6위였다.

이종현 기자(i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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