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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7 (화)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고레에다의 프랑스식 가족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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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 카뜨린느 드뇌브와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의 출연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다. 여기에 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어느 가족’, ‘바닷마을 다이어리’,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주인공이자, 가족 영화에 일가견이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감독을 맡았다. 고레다 히로카즈 감독만의 ‘가족 마법’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시티라이프

일본 배우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을 두고 ‘누가 보지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한 적 있다.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대스타지만 가족에게는 소홀했던 한 여배우가 회고록을 발간하면서 한자리에 모인 가족의 이야기다. 엄마 파비안느(카뜨린느 드뇌브)의 회고록 발간을 축하하기 위해 딸 뤼미르(줄리엣 비노쉬)가 남편 행크(에단 호크), 어린 딸 샤를로트(클레망틴 그르니에)와 함께 오랜만에 파비안느의 집을 찾는다. “엄마, 이 책에는 진실이라고는 없네요.” 반가움도 잠시, 엄마의 회고록을 읽은 뤼미르는 책 내용이 거짓으로 가득 찼음을 알게 되고, 그동안 쌓인 오해와 숨겨진 진실로 인해 갈등이 폭발한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세계적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무대를 프랑스 파리로 옮긴 첫 번째 글로벌 프로젝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와 배우가 되지 못한 딸’이라는 두 사람의 관계를 축으로 ‘연기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또 ‘연기하는 것’을 통해 어머니와 딸이 조금씩 화해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영화의 원제는 ‘카트린에 관한 진실(The Truth About Catherine)’로, ‘파비안느’라는 이름은 실제 카뜨린느 드뇌브의 중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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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시나리오를 쓸 당시부터 세 배우의 이름만이 뇌리에 있었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처음으로 일본 밖에서 찍은 영화로, ‘쉘부르의 우산’, ‘퐁네프의 연인들’, ‘비포 선라이즈’ 등 대중의 인생 영화에 모두 참여한 배우 어벤저스가 모두 모였다. 구제불능 여배우 파비안느 캐릭터를 맡은 카뜨린느 드뇌브는 ‘역대 최고 연기’라는 찬사를 들으며 레전드 여배우를 연기하는 레전드 배우로 활약한다. 나르시시스트에 이기적이지만, 급작스럽게 딸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고, 오랜 기간 자신을 참아 준 매니저에게 차마 말로 못한 속마음을 대사로 표현하는 파비안느의 모습에 관객들의 경계심이 어느 순간 허물어진다. 카뜨린느 드뇌브는 실제 프랑스 최고 여배우로 어쩌면 자신이 겪었을지도 모를 파비안느의 삶을 밀도 있는 연기로 보여 준다. 칸, 베를린, 베니스를 석권한 줄리엣 비노쉬는 쌓였던 오해 뒤에 숨은 진실을 알아 가며 감정 변화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뤼미르 역을 훌륭히 해냈다.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시종일관 거짓말을 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엄마 파비안느에게 진저리를 치지만 매번 어려울 때마다 그녀를 돕는다. 한편 아내와 장모 사이에서 난감해하지만 모녀를 묵묵히 지켜봐 주고 서로의 진짜 마음을 눈치채게 알려주는 섬세하면서도 다정한 인물 ‘행크’로 분한 에단 호크는 이번 영화에서 줄리엣 비노쉬와 명 로맨틱 케미를 선보임과 동시에, ‘딸바보’ 모습을 처음 보여 준다.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언어로, 다른 나라 스태프들과 제작한 영화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인간의 복잡미묘함, 가족에 대한 애증 어린 관심 등을 영화에 모두 묶어 넣었다. “장점이 두 가지면 사는 데 충분하고도 남아”, “내 독설은 그야말로 무해하지”, “기억은 믿을 게 못돼”, “나를 피하려고 떠난 걸 걔는 잘 몰라” 등의 파비안느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대사 사이에 숨은 고급스러운 위트, 고레에다 감독 특유의 피아노 선율을 타고 흐르는 장면 전환도 돋보인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직접 말하는 대신, 퉁명스럽게 서로를 대하면서도 그 행간에 숨은 따뜻함을 발견하게 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마법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글 최재민 사진 (주)티캐스트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줄거리가 포함돼 있습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08호 (19.12.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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