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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숭인동 崇仁洞…추억, 물건, 오래된 것의 가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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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숭인동은 끼인 동네다. 서쪽 창신동과 인접한 동대문구 신설동, 남쪽의 황학동, 북쪽의 보문동에 비해 크기나 지명도에 있어서 그렇다. 조선 초 한성부가 행정 구역을 정할 때 동부 12개 방 중 동대문 밖에 숭신방, 인창방을 두었다. 그 뒤 1914년 이름을 바꿀 때 두 방의 앞 글자를 따 숭인동이라고 불렀다. 해방 후 동대문구에 속했다가 1975년 종로구로 편입되었다.

시티라이프

숭인동 동관왕묘(위키미디어 ©Egg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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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인동은 애초부터 창신동에서 청계천으로 연결되는 곳이었다. 주로 서민들이 살았고 변변한 집이나 공장 없이 판잣집, 노점이 많았다. 이런 숭인동에 변화의 손길이 닿은 것은 청계천 복개와 이 지역의 봉제 공장과 고미술품 상가가 이전하면서다. 1980년대 고미술품점들이 대거 장안평으로 이전하면서 중고품을 거래하는 만물상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2005년에는 청계천이 정리되면서 황학동만물시장과 동대문풍물시장이 생겼다. 동묘시장은 이 시장들의 확장판이라 하겠다.

숭인동을 대표하는 것은 단연 동묘다. 동묘시장, 동묘구제시장으로 더 알려진 동묘는 원래 사당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종묘사직’의 종묘와는 판이한 곳으로, 중국 촉나라 유비의 명장 관우를 모신 관왕묘다. 그 유래는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선조 때 조선에 출병한 명나라 군사들은 현신한 관우의 신령 체험을 통해 승리와 목숨을 지켰다고 한다. 명나라 군사들은 전쟁 중에도 곳곳에 수호신으로 관우를 숭모해 관왕묘를 세웠고 전쟁이 끝난 후 조선 조정에 공식적으로 관왕묘를 세울 것을 요청했다. 1599년 공사를 시작해 1601년 지금의 자리에 동관왕묘東關王廟가 들어섰다. 당시 한성에는 동관을 비롯해 남, 서, 북에 총 4개의 관왕묘가 섰다. 그중에서 이 동관왕묘가 가장 크고 화려하다. 1908년까지 제사를 지냈지만 이후 폐지되었다.

동묘가 유명세를 탄 것은 바로 동묘 담을 따라 노점이 활성화되면서다. ‘아니 저런 것을 누가 산다고 팔까’라는 생각과 ‘이곳에서는 못 파는 것도, 못 구할 것도 없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온갖 물건이 600여 점포에 나열되어 있다. 구제 옷, 오래된 가전, 책, 골동품, 도자기, 시계, LP, 중고 가구, 시계, 보석, 카메라 및 각종 기계, 공구류, 등산용품은 물론이고 자전거, 피아노까지 그야말로 ‘없는 것이 없다’. 사실 이곳에 시장이 형성된 것은 꽤 오래 전부터다. 이웃한 창신동에 청룡사라는 절이 있다. 조선 비운의 국왕 단종의 왕비 송 씨가 이곳에 머물렀다. 정순 왕후 송 씨는 영월로 유배 가 비명횡사한 어린 단종을 위해 매일 영월을 바라보며 통곡했는데 그 장소가 숭인동 동망산 동망봉으로 지금의 숭인근린공원 자리다. 그때 궁에서 쫓겨나 어렵게 생활하는 정순 왕후를 돕기 위해 여인네들이 야채나 채소를 내다 팔아 얼마간의 돈을 보탰다고 한다. 이곳의 노점상들이 주로 여인네들이라 ‘여인시장’ 혹은 ‘장거리場巨里’라고 불렀다. 그들이 모여서 장사를 한 곳이 지금의 동묘시장 자리다. 시장 역사로 보면 꽤 깊은 셈이다.

동묘시장에는 많은 사람이 모인다.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은 물론이고 그저 소일거리 삼아 오는 이도 있고, 이곳에서 사람 구경하다가 출출하면 요기를 하러 국밥, 순댓국, 토스트, 우동에 파전, 반계탕을 찾는다. 모든 음식이 다 적정한 맛을 유지하는데 저렴하지만 양은 많고 따뜻한 정이 가득 담겨 있다. 레트로 트렌드가 지속되면서 동묘시장은 패션과 구제 옷, 중고 물품에 관심이 있든 없든 한 번쯤 찾는 명소가 되었다. 지하철 1, 6호선 3번 출구로 나가면 바로 동묘시장과 연결된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추억을, 또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과거로의 여행이 가능한 지점이다. 여러 세대가 동시에 만나는 곳인 셈이다. 그 연결 끈이 ‘오래된 것’임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적어도 오래된 것은 ‘버려야 할 것’이라는 등식이 아니라, 한 번 살펴봐야 할 또는 간직해도 됨직한 소중한 것임을 우리가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위키미디어, 서울비짓]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08호 (19.12.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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