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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설]예산 견제는커녕 깜깜이 협의로 나눠먹기한 탐욕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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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보다 9.3% 늘어난 513조 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이 그제 밤 국회를 통과했다. 문재인 정부가 처음 짠 2018년 예산 규모 428조 원과 비교할 때 2년 연속 9%대 증가가 이뤄지면서 무려 85조 원이 늘어난 초대형 예산이다. 그런데도 국회 심의에서 겨우 1조2000억 원이 삭감되는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12월 올해 예산이 470조 원 규모로 확정될 때의 삭감액 5조2000억 원도 너무 적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 수준에도 훨씬 못 미쳤다. 총선이 열리는 해의 예산은 선심성이 많아 예년보다 더 많은 삭감이 필요한데 삭감하는 시늉만 낸 꼴이다.

의원들은 있는 예산은 늘리고, 없는 예산은 만들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지역구인 세종시 지역교통안전환경개선사업은 정부안의 9억5000만 원보다 5억1200만 원이 늘어났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이자 자유한국당 정책위의장인 김재원 의원의 지역구가 포함된 구미 군위 의성 지역 국도 건설 사업에는 정부안 170억 원보다 50억 원 많은 예산이 배정됐다. 민주평화당 조배숙 원내대표는 정부안에는 없던 전북 익산 미륵사지 관광지 조성 예산 7억2500만 원을 지역구를 위해 따냈다. 이런 식으로 정부 원안보다 무려 10조 원을 늘려놓은 뒤 고작 1조2000억 원을 삭감한 것이다.

더구나 예산 협의 과정이 깜깜이로 진행돼 여당과 들러리를 선 군소야당 간에 어떤 나눠먹기가 이뤄졌는지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 예산안 처리가 순조롭게 이뤄진 해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예년에는 여야가 예결위에서 우여곡절 끝에 합의한 안이 본회의에 부의됐다. 예결위는 국회 공식 기관이므로 부족하나마 수정의 근거를 남긴다.

하지만 이번에는 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 아직 정당 요건을 갖추지 못한 대안신당이 모인 ‘4+1 협의체’라는 임의 단체가 수정한 예산안이 본회의에 부의돼 통과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이 협의체는 아무런 자료를 남기지 않았다. 나눠먹기한 예산은 앞으로 하나씩 들춰내서 몰수라도 해야 할 판이다.

국회의 임무는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이다. 국민 돈을 거둬 쓰는 예산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견제와 감시는커녕 여당은 ‘행정부의 시녀’ 역할이나 하고, 그 와중에도 여야를 막론하고 실세 의원들은 개별 이익을 챙기는 몰염치한 행태를 보였다. 국민을 봉으로 여긴 채 그 어떤 비판에도 귀를 막고 노골적인 탐욕을 부린 의원 한 명 한 명을 기억해 유권자들이 엄정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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