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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서양화가 한규남, 양동 마을에서 뉴욕을 얘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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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미술기행-31] 한 달여 전 서양화가 한규남(1945~)을 서울역에서 만났다.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 붙은, 그가 10여 년 이상 거주를 겸하고 있는 뉴욕주 뉴로셸 작업실을 방문하고 1년여 만이었다. 며칠 후 그가 경주 인근 양동마을로 작업실을 옮겼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다. 나와 그의 직접적 인연은 길지 않다. 지난해 말 미술계 신참인 지인이 주관한 뉴욕 한국 작가 전시는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했다. 현지 작가를 초대하는 게 비용 측면에서 유리했다. 뉴욕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중견 화가가 국내에 들어와 작업한다는 소식에 지난해 초여름 초밥과 와인을 사 들고 인천을 방문한 게 첫 대면이었다. 갤러리 사업을 시작한 직후, 지인에게서 자신의 고교 동창이 오래전에 이민을 가 뉴욕에서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가 한규남이라는 말을 여러 해에 걸쳐 전해 들었기에 생경하지만은 않았다.

양동마을은 내게 모태와 같은 곳이다. 1960년대 중반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외가인 양동마을로 보내졌다. 아침이면 부엉이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부엉이 울음은 멀고 깊게 울린다. 푸다닥거리면 암탉이 홰에서 알을 낳고 마당으로 내려오는 소리다. 봉창 문을 열고 손을 내밀면 껍질이 굳지 않은 말랑랄랑한 달걀이 만져진다. 그곳, 지금은 관광지가 된 양동마을 계곡 쪽 높은 자리에 외로 앉은 고택에 마련된 작업실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에서든 뉴욕에서든 한옥·궁궐을 밑바탕으로 하고 퀀텀 패턴을 반복적으로 입힌다. 그는 액자로 만들지 않은 느슨한 캔버스용 광목에 먹으로 궁궐의 처마와 담, 한옥의 용마루 등을 그린다. 스케치인 셈이다. 화폭에 구체적 이미지와 반복되는 퀀텀이 패턴을 이루고 있다. 퀀텀이 원(circle)인지, 구조(structure)인지 모호하다. 여기서의 퀀텀은 quantum physics, 즉 '양자물리학'을 뜻하는 그 퀀텀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특수상대성이론 'E=mc2'에서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광속이다. 물체가 질량을 가졌다면 그만큼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반대로 파동이나 빛과 같은 순수 에너지가 입자로 변환될 수도 있다. 에너지는 비물질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로 c, 즉 광속은 입자와 파동으로 구분된다. 즉 빛은 알맹이가 파동 형태로 이동한다. 'f=c/λ'에서 f는 주파수, λ(람다)는 부피 단위다. 'λ=c/f'이기도 하다. 이러한 물리학적 서술은 '색채는 빛의 반사에 따른 직접적인 결과로 보이는 것'이라는 현상에 대한 설명이다. 한규남 작품에서 서클, 즉 퀀텀은 texture(질감 또는 감촉)와 illusion(환상 또는 환각) 역할을 한다.

그는 1972년 도미(渡美)했다. 정부의 유학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도미한 결정적인 이유는 첫사랑과 이별한 것에 대한 충격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이든 뉴욕이든 크리스마스트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어느 해 성탄 캐롤이 울리던 종로 화신백화점 앞에서 맞닥뜨린, 교제를 반대했던 여자의 오빠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화신백화점 자리는 사라지고 우루과이 태생 건축가 라파엘 비뇰리가 설계한 종로타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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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Rochell, N.Y. Studio에서 한규남(Kyunam Han)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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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본부에서 한 군 생활은 미군과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 보직이었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경기도 인천 출생인 그는 서울고를 나와 서울대 미대에 입학한 당대의 엘리트인 줄 알았으나 버림받았다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그는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 연극미술대학에서 무대장치(stage design)를 공부했으나 셰익스피어 연극을 자신이 배운 회화와 조합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었다. 다시 회화를 공부했다.

1978년 조 브라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초청으로 오하이오 콜럼버스에서 뉴저지 로키힐로 옮겼다. 대학 시절, 조각 작품을 위한 캐스팅과 거푸집을 만들어본 경험이 도움이 됐다. 70번 도로를 따라 16시간을 운전해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바닷가부터 찾았다. 인천 출신인 그는 7년간 바다를 보지 못했다.

이후 뉴저지 포트리, 테너플라이에 거주하면서 스튜디오가 있는 뉴욕 롱아일랜드 그래피티 빌딩을 무수히도 오갔다. 그래피티 블록에서 작업하는 젊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과의 교감은 퀀텀 패턴에도 영향을 줬다. 그에게 조지 워싱턴 다리는 예술과 인생이 까마귀와 까치가 된 오작교(烏鵲橋)인 셈이다.

서울 북촌의 한옥과 경복궁·창경궁·비원 등 궁궐을 이미지 작업 모티프로 선택한 이유는, 고교 시절의 어렴풋하지만 학교 주변 환경의 강렬한 기억이 미국 생활에서 더 뚜렷이 각인됐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미국 생활 중 KBS의 의뢰로 '한국미와 문화'에 대해 집중적인 탐구를 할 기회가 있었다. 뉴저지 세라로런스 (여자)대학의 마이클 자킨이 만든 동서문화연구소가 수행한 프로젝트였다. 방한 후 전국의 도요를 다니며 민화와 탱화에서 색감을 배웠고, 한지를 본격적으로 다루면서 색의 조화와 자율성을 새롭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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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beginning Double Helix, (2016~2019) 130cm x 360cm acr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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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남의 한국 활동은 사실상 1990년대 중반까지만 머문다. 1991년 선화랑 초대 전시회에서 김창실 대표(1935~2011)에게서 최종현 SK그룹 회장 부인인 박계희 워커힐미술관(현 그랜드워커힐 서울 호텔 아트홀) 관장(1935~1997)을 소개받았다. 한규남은 4년 후인 1995년 워커힐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연다. 박계희는 1950년대에 도미해, 최종현 회장과 만났을 때는 시카고 미술대학에서 응용미술을 공부하던 중이었다. 전시 초대를 한 갤러리스트가 당시로서는 드문 미국 유학파 선배였던 셈이다.

그는 한국에서 배운 기운생동(氣韻生動), 골법용필(骨法用筆)등 화론(畵論)을 여전히 머리에 담고 있다. 2학년까지 서양화과와 동양화과 간 구분이 없었다. 그가 오랜 미국 생활에도 불구하고 한지와 먹을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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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umn Leaves 59st. Newyork 2010 , 70cm x 169cm acry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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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규남은 한국 정부가 유학을 공식적으로 허락한 첫 세대 현대미술 작가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파토스보다는 로고스를 지향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김환기(1913~1974)가 뉴욕 시대(1963~1974)에 만들어낸 점화(點畵)는 한국적 서정주의에 머물렀고,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 애돌프 고틀리브(1903~1974)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으며, 61세에 세상을 떴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설적이게도 점화와 대비되는 퀀텀 시리즈에 몰입하는 뉴요커 한규남은 70대 중반을 넘어서며 점점 내밀해지는 작업 흐름으로 볼 때, 재평가될 가능성은 여전하다. 그는 현재 상황에 괘념치 않는다. '관객의 야유에 시달릴 시간이 없다'는 게 그의 변이다. 그는 육체적·정신적으로 끝까지 살아남아 작가로서 최후의 승자가 되겠다고 말한다.

[심정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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