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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독일 정치와 사회를 만든 기반, 연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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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 books]

정치학을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조성복 박사가 앞서 출간한 두 권의 책-<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과 <독일 사회, 우리의 대안>-에 이어 독일의 지방자치를 구현하는 독일 연방제를 주제로 한 책에 대해 이렇게 서평을 쓰게 되어 기쁘다. 이 세 권의 책은 모두 '우리의 대안'이라는 제목을 갖는다. 그러니까 독일 연방제를 주제로 한 이 책은 그가 오랜 기간 독일에서 공부한 결과물로서 독일 정치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3부작의 마지막 부분이다.

본 서평자의 생각에 정치와 사회에 이어 연방제에 이르기까지 독일 정치의 중심이 되는 모든 측면, 모든 분야에 대해 3부작으로 저술할 수 있는 한국의 정치학자는 조성복 박사가 거의 유일하다고 본다. 앞선 두 권의 책을 읽고 추천사를 쓸 기회를 가졌던 나는 그 두 책의 탁월함을 알게 됐고, 독일 정치와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가 두 권의 책을 통해 보여주었던 독일에 대한 폭넓은 지식으로 미루어볼 때 독일 연방제에 대해 책을 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진지하게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주제가 다른 세 권의 책을 연달아 저술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과업인가에 대해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저자에게 연방제를 주제로 한 또 하나의 책을 쓸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었다. 만약 원고를 완성할 수 있다면 저자 자신에게는 필생의 과업일 것이고, 독일에 대해 관심을 갖는 한국의 정치인, 정치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 정책전문가, 학자 그리고 독일 정치와 사회에 대해 관심을 갖는 많은 사람들에게 크게 기여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이 세 번째 책의 완성된 원고를 읽었을 때, 그는 나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분명 그 이상이었다.

본 서평자의 생각에 내용과 질적 수준에서 볼 때 세 권의 책은 동일하다. 각각 다른 주제를 다룬 3부작이 어느 것이 더 좋다고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질적 수준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도 이 기획은 의심의 여지없이 성공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독일 연방제와 지방자치 ⓒ섬앤섬


그러나 나는 3권 가운데 연방제를 주제로 한 이 세 번째 책을 특별히 평가하게 된다. 연방제라는 주제가 정치와 사회라는 일반적인 주제에 비해 독일 정치의 하위수준에서의 지방정치와 지방자치로 이해하거나, 또는 독자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전국수준의 중앙정치에서 일정하게 떨어져 있는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독일의 연방제는 독일의 정당 체제와 그에 기초한 의회 중심의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통해 이룩한 오늘날의 독일 정치와 사회를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가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라는 사실이다. 이점과 관련하여 독일 연방제가 어떤 장점을 갖기에 그토록 특별한가에 대해 다음 세 가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독일 연방제 하에서의 선거제도가 의회중심제를 구현하는 투표방식이라는 점이다. 소선거구 지역구에 기초한 정당 후보에 대해 투표하는 것과 동시에 또한 지방의 주에서 작성된 정당명부에 투표하는 방식을 통해 국가 전체를 구성하는 주들의 역사적 전통과 다양성을 동시에 대표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16개 주는 모두 자체의 지방자치 선거를 통해 그들 자신의 주 정부와 주 의회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연방정부(중앙정부)와 주 정부는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순기능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가? 서평자의 관점에서 독일의 정부구성 관련 최대의 장점은 연방정부와 주정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제도로서 독일 연방상원(Bundesrat)의 역할이다.

독일의 정치 시스템 하에서 연방정부는 입법이나 주요 정책의 결정에서 강력한 권력을 사용하여 주정부를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끊임없이 의사소통하고 타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나는 독일의 연방 체제야말로 연방제의 또 다른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의 연방제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독일의 연방제는 관료행정의 중앙 집중화를 허용치 않음으로써 중앙의 권력 독점을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주요 정책영역의 대부분은 2차 대전 후 연방정부의 구성 초기에 주 정부로 이양된 바 있다. 교육정책은 전통적으로 지방정부의 소관이었고, 전후 연방국가 건설 이후에도 그것은 변하지 않았다. 전후 독일의 사회복지를 위한 사회정책의 수행기관은 주 정부이지 연방정부가 아니다.

교육, 사회복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언론, 문화영역에서의 연방정부의 영향력 내지 정책일 것이다. 전후 독일에서 중앙정부가 연방 수준에서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운영하려던 시도는 실패했다. 연방정부가 언론문화정책을 확장하려던 시도는 (아데나워정부시기 법원의 판결을 통해) 주 정부에 의해 좌절됐다.

실제로 연방정부가 관장할 수 있는 영역은 외교안보, 거시경제 운영이나 전국적 수준에서 정부의 공적 역할이 요구되는 철도, 도로, 교통, 통신과 같은 분야 정도에 한정된다. 프랑스, 일본, 스웨덴 등 여러 나라들과는 달리 주 정부로의 하향 분산이야말로 공공행정에서 보이는 독일의 특징이 아닐 수 없다.

셋째, 독일 연방제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통해 여러 주 사이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최소화함으로써 시민들의 삶의 조건을 평등하게 유지하는데 진력해왔다. 16개 주 가운데 옛 동독 지역의 5개 주는 재정자립도가 낮고 가난한 반면, 서독 지역의 여러 주들은 부유하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독일 남부의 바이에른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가장 부유한 주에 속하고, 헤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역시 독일의 부와 경제발전을 만들어내는 금융과 산업의 중심지대로 부유한 주에 해당한다. 만약 이들 간의 차이를 방치한다면 동독 지역 시민의 불만은 팽만하고, 주 재정의 궁핍으로 사회복지 또한 빈약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부유한 주는 이러한 지역불균등을 완화하기 위해 가난한 주에 재정지원을 함으로써 그들도 비슷한 수준의 사회복지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물론 지역 간 격차가 존재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이와 같이 서로 협력함으로써 평등한 공생이 가능한 연방주의 체제를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을 제대로 살펴보는 것이 독일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측면이다.

조성복 박사의 <독일 정치>와 <독일 사회>에 이은 세 번째 책인 <독일 연방제와 지방자치>가 왜 중요한지는 분명하다. 우리의 광역단위에 해당하는 독일 주 차원의 정치를 제대로 알아야 비로소 독일 정치의 전체 면모를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또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가를 훨씬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 사회라고 말하는 보통 사람의 사회경제적 생활이 이루어지는 영역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를 이해하는 데에도 마찬가지이다. 요컨대 연방제의 실제 모습을 알지 않고서 독일의 정치와 사회를 이해하는 것은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 정치는 지방자치 수준에서의 정치를 알지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한국의 정치 전체에서 그렇게 큰 중요성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은 다르다. 독일 연방제의 실제 내용과 작동방식을 알아야 독일 정치와 사회에 대해 전반적이고도 구체적인 이해가 비로소 가능하다. 내 생각에는 한국의 독자들이 실제 독일의 정치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연방 수준에서의 정치보다 그 하부구조로서 주를 단위로 하는 지방정치를 볼 때 더 큰 격차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를 개선하기 위해 독일 연방제의 제도와 실제, 또는 그 어떤 부분을 배우려 하거나 모델로 삼으려 할 때, 여러 단계나 여러 차원이 있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배울 수 있는 것은 연방제 또는 지방자치 정치의 이상형적 모델이 어떤 것인가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고, 또 독일 정치를 훨씬 더 실제 모습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한 이상형에 대한 이해 없이 우리가 구체적인 대안을 먼저 생각하기는 어렵다.

조성복 박사의 이 책이 우리에게 기여한 것은, 우리의 지방자치가 현재의 상황보다 훨씬 더 진일보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정치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지방자치의 발전은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독일 정치의 전모를 알 수 있도록 한국의 독자들을 안내해 준 저자의 지적 작업을 매우 높게 평가하는 바이다.

기자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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