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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5 (일)

마갈레스의 고향을 거쳐 '포르투갈의 진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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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포르투갈 여행기] 8. 아베이루와 오비두스 : '포르투갈의 베니스'와 '중세 성곽도시'?

포르투갈의 베니스. 포르투를 떠나 리스본을 향해 남쪽으로 한 시간 반 정도 달리면 '포르투갈의 베니스'로 불리는 아베이루(Aveiro)에 도착한다. 중부 포르투갈의 중심도시인 이곳은 인구가 8만에 조금 못 미치는 작은 도시이지만 아름다운 경치로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베니스의 매력은 여러 가지지만 그 중 으뜸은 빠삐용이 입었던 옷과 같은 줄무늬의 티셔츠에 멋진 모자를 쓴 뱃사공이 노를 젓는 곤돌라를 타고 베니스의 운하를 즐기는 것이다. 아베이루가 '포르투갈의 베니스'라고 불리는 이유는 아베이루에서도 비슷한 것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포르투갈 여행을 위한 정보를 찾아보고 있는데, 베니스의 곤돌라보다 훨씬 멋진 보트를 타고 운하를 즐기는 사진이 여러 장 나타났다. 어디인가 찾아보니 아베이루였다. 게다가 이곳은 19세기 포르투갈의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주제 에스테바우 코엘루 데 마갈레스(Jose Estavao Coelho de Magalhaes)의 고향이다. 그러니 당연히 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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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포르투갈 자유주의 혁명을 주도한 마갈레스의 동상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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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사 뒤편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시청사를 지나가자 그 앞 광장에 한 사람의 동상이 나타났다. 마갈레스의 동상이다. 그는 일찍이 민주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반정부 운동을 하다가 영국으로 망명을 가야 했고 1832년 왕당파들이 포르투를 공격했을 때 학생들로 구성된 공화군 학생대대를 조직해 포르투 방어에 앞장서서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이후 의회에 진출해서도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노동자 등에게도 투표권을 주는 보통선거권 등 영국의 차티스트 노선을 주장했다. 이처럼 의회 내에서 가장 급진적 노선을 폈고 자신의 사상을 펼치기 위해 신문을 창간했다. 민주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혁명을 시도했다가 다시 프랑스로 망명을 떠나는 등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 인물이다.

강가(가까이 가서 보니, 강이 아니라 운하였다)로 내려가자, 멋진 배들이 손님을 태우고 있었다. 몰세이로스라고 부르는 이 배는 앞뒤가 반달 모양으로 들려 멋진 선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곤돌라와 비슷하지만 곤돌라보다 훨씬 길고 커서 많은 사람이 탈 수 있다. 그리고 선도 곤돌라보다 훨씬 다이내믹하다. 색깔도 곤돌라가 검정색이라면 이 배는 화려한 형형색색으로 칠을 해 눈을 사로잡는다. 대신 곤돌라와 달리 노가 없고 모터로 운항한다. 배의 크기가 노를 저어 운항할 수가 없는 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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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세이로스에 오르고 있는 손님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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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자 배는 바다 쪽으로 향했다. 가다가 보니 운하가 십자로처럼 교차하는 곳이 있어 선장이 일어나 손으로 교통신호를 해서 충돌을 방지했다. 양 운하변의 경치를 구경하며 한참을 나가자 앞이 막혀 있었다. 운하와 바다를 막는 수문 같은 것이었다. 2주에 한번 수문을 열어 물을 빼주는데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와 물높이는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한다. 몰세이로스는 현재 30척 운항하고 있는데 오래전부터 이 지역에서 타던 배라 그 근원은 불분명하지만 베니스의 곤돌라와 연결된 자료는 없다는 것이 선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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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차로에서 수신호로 교통정리를 하는 선장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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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니 몰세이로스는 베니스의 곤돌라보다는 바이킹의 배를 닮았다. 바이킹의 배도 앞뒤가 반달모양으로 들려서 모양이 몰세이로스와 아주 비슷하다. 사실 바이킹은 9세기부터 12세기까지 이 지역을 여러 차례 공격해 약탈해 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 때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선장에서 바이킹 이야기를 하며 두 배의 연관성이 대해 물었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는 답이었다.

선장은 사진첩을 하나 꺼내 보여줬다. 보여준 것은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의 빛바랜 사진과 소금을 운반하는 몰세이로스 사진이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아베이루의 주요 산업은 소금 생산과 해초 채집이었다고 한다. 이 배는 오래 전부터 해초 수집에 사용하던 것으로 수집한 해초는 비료로 팔았고, 소금을 운반하는데도 배를 사용했다고 한다. 자세히 보니 원래의 몰세이로스는 지금 배와 비슷하지만 지금처럼 그 선이 다이내믹하지는 않고 유선형 모습도 배의 앞쪽만 그런 모양이었다. 이를 관광선으로 만들면서 더 세련되고 멋있게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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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몰세이로스에 대한 자료. 뒷부분이 요즘과 다르게 평평하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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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는 360도 방향을 바꾸어 유턴을 한 뒤 시내로 들어갔다. 가다 보니 아직도 아베이루가 중요한 소금 생산지라 몰세이로스에 소금을 실어와 소금 창고에 하역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내로 가는 길은 다리들이 많아 높이가 낮은 다리를 지나갈 때는 머리가 천장에 부딪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됐고 어느 다리는 사랑의 다리인지 다리 전체가 사랑의 징표로 묶어 놓은 형형색색 천으로 난간 전체가 뒤덮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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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하게 수놓은 다리 밑을 지나고 있는 몰세이로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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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 포르투 같은 포르투갈의 도시들은 오랜 역사의 흔적들이 가득한, 낡고 우중충한 건물들이 특징이고 매력이다. 그러나 아베이루는 그렇지 않다. 운하를 중심으로 양옆에 지어있는 건물들이 젊고 깨끗한데다가 푸른 운하의 물 색깔, 그리고 원색의 몰세이로스가 어우러져 아주 밝고 화려하다. 그런 만큼 기분이 유쾌하고 즐거워진다. 포르투갈이라기보다는 스페인 같은 기분이다.

"선장님, 아베이루가 포르투갈에서도 손꼽히는 해산물 요리의 도시라는데 어디 좋은 식당 소개 좀 해주세요."

"아 저기 보이지요. 저 식당이 해산물 요리는 최고입니다."

선장의 추천하는 식당에 기서 운하와 운하의 배들이 보이는 옥외에 자리를 잡고 화이트와인에 문어, 해물밥 등을 시켰다, 메뉴에 장어가 있기에 신기해서 그것도 시켜봤다. 음식을 시킨 뒤 화장실에 가려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가 놀랐다. 실내에는 한국처럼 거대한 수족관에 살아있는 게와 로브스터들이 가득 차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투명한 유리 냉장시설에 새우, 가재부터 각종 생선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해산물의 천국이었다.

음식들은 선장이 자신 있게 추천한 식당다웠다. 문어는 특이하게 꼬치에 끼워 구어서 꼬치 걸이에 매달아 나온 것이 멋스러웠다. 맛도 아주 좋았다. 최고는 해물밥이었다. 사실 해물밥은 밥이 아니라 죽에 가까웠는데, 지금까지 어디서 먹어보지 못한 특이한 맛이었고 기가 막혔다. 긴 여행에 몸보신으로 시킨 장어는 아예 한 마리를 통째로 구워서 시각적으로 좀 '거시기'했다. 서양에서 장어를, 그것도 통째로 요리해 내놓는다는 것이 기대 밖이었다. 맛은 기름에 튀겨 나와서 구워 먹는 한국의 장어보다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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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깔나게 요리한 문어꼬치 구이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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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가 막힌 맛의 해물밥은 죽에 가깝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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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식 장어통구이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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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이루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타일로 만든 벽화들이다(아베이루는 타일 공예가 발달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이 벽화가 인상적인 것은 이 타일들이 모두 노동하는 일반 서민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염전에서 소금을 거두는 노동자들의 모습으로부터 배를 몰고 있는 어부들, 해초를 정리하고 있는 아낙들의 모습을 그려놓았다. 또 긴 벽에는 소금을 거두는 노동자, 생선을 잡기 위해 그물을 던지는 어부, 달걀을 깨서 요리하는 요리사 등을 아름다운 타일로 벽화를 만들어 놓았다. 우리의 삶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는 것은 다 이 이름 없이 묵묵히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아니던가? 이를 보고 있자, 19세기 포르투갈의 가장 진보적인 정치인이었던 마갈레스의 고향답다는 생각에 마음이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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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하는 민중들을 형상화한 타일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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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유형의 노동민중 타일장식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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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도시 오비두스', '왕의 최고의 비밀, 오비두스의 체리'. 오비두스하면 떠오르는 선전문구들이다. 아베이루를 떠나 다음 행선지인 오비두스로 향했다. 오비두스는 아베이루에서 다시 남쪽으로 18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성곽도시로 아름다운 해안 도로를 따라 세 시간을 달려가야 한다. 내가 일반적인 코스와 정반대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여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지, 오비두스는 리스본에서 북쪽으로 80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리스본에서 한 시간이면 도착해 중세 성곽도시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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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두스의 체리가 왕의 최고의 비밀이라는 선전문구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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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자, 집들 위로 솟아오른 거대한 회색 성채가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왜 중세 도시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되는 풍경이다. 아무래도 마을에 차를 가지고 들어가는 것은 무리 일 것 같아 차를 마을 입구의 숙소에 세우고 걸어가기로 했다. 프런트에 물어보니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한다면서 이것저것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많은 사람들이 포르투갈의 중요한 특징으로 친절한 것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지 이해가 되는 친절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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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두스에 가까워지면 우선 성채와 성벽이 눈에 띈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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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놔두고 성으로 걸어 올라갔다. 왼쪽으로, 긴 아치형 다리의 수로가 나타났다. 도시 쪽으로 기울기를 주어 물이 도시로 흐르도록 만들어 로마제국의 트레이드마크 중의 하나인 이 수도교는 이곳이 로마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상기시켜줬다. 수도교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고대사회의 기하학적 지식과 토목기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허긴 로마시대보다 훨씬 전에 이집트에서는 건축학의 기적이라 할 수 있는 피라미드를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면, 수도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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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이 로마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알려주는 수도교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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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들어가는 흰 벽에 도자기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청색을 칠한 벽들은 색감이 범상치 않았다. 마을에 들어가자 나는 맞는 것은 화사하게 핀 꽃들이었다. 핑크빛 꽃 뒤에는 짙은 자주 색 꽃들이, 그 옆에는 빨간 색 꽃들이 피어있다. 특히 이 꽃들은 흰색과 청색 벽들과 조화를 이루어 경치가 기가 막혔다. 그리고 지나치지 않고 적당하게 피어있다. 주말이라 관광객들이 많아 한적하게 마을을 즐기기에는 너무 소란스러웠다. 이 곳이 리스본에서 한 시간거리인 인기 관광지라 단체 관광객이 많았다. 사람들이 많은 주도로를 벗어나기 위해 좌회전해서 샛길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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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와 이슬람의 특징인 밑벽 청색의 대비가 아름답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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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로에서 벗어나 언덕으로 올라가니 좁은 미로 같은 길들이 나타났다. 골목골목마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다 작품이 될 수 있는 멋진 풍경들이다. 주도로 같이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 한적하게 조용하게 마을의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햇볕을 피할 수 있도록 좁게 만든 골목길 등 아랍의 흔적에 포르투갈 특유의 화려한 마누엘스타일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한 골목에서는 한 여행객이 바닥에 펄썩 주저앉아 동네 고양이와 놀고 있었는데, 한 폭의 그림이었다. 왜 이 마을을 '서부 포르투갈의 진주'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되고 계속 골목골목을 돌고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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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와 놀고 있는 관광객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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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서양 사람들은 중세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중세의 갑옷 등을 파는 전문상점이 있고 참가자들이 중세의 갑옷을 입고 전쟁을 벌이는 중세 재현 이벤트가 인기를 끈다. 그러나 이는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중세는 원래 영주가 자신의 영토 안에 있는 농노들의 딸이 결혼을 하면 자신이 먼저 첫날밤을 치루는 초야권을 행사하던 비인간적인 농노제도가 그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고문과 화형제도의 마녀사냥의 종교재판이 지배했던 '암흑의 시대'이다. 움베르토 에코의 베스트셀러 소설 <장미의 이름>은 이 같은 중세의 야만성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경 2권 : 희극> 편이 중세체제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이 책을 감추기 위해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통해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다.

헌데 이 같이 아름다운 도시를 왜 중세도시라고 부르는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중세의 핵심은 단순히 성채나 성곽이 아니라 영주-농노라는 봉건적 사회적 관계와 억압적 종교체제이다. 봉건제의 비인간적인 사회적 관계를 사장시키고 갑옷과 성곽이라는 외형적 특징을 가지고 중세를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점에서 우리의 민속촌 같은 곳도 양반-상놈, 노비와 같은 사회적 관계를 다 거세시켜 버리고 옛날 가옥이나 지어놓고 봉건시대를 낭만화하는 것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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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핑크빛 꽃이 중세도시라는 음침한 이름과 너무 안 어울린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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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두스는 그 역사가 셀틱 때로 거슬러 올라가며 로마의 식민지였다고 한다. 사실 현재 남아있는 성 중 일부는 로마가 건설한 것이라고 한다. 이후 아랍이 포르투갈을 점령하면서 오비두스를 지배하며 도시를 확장하고 발전시켰다. 좁은 미로 같은 길 등이 그때의 흔적이다. 그러나 1148년 알퐁소 엔리케가 아랍을 몰아냈다. 이후 오바두스는 알퐁소 왕조가 사랑하는 도시가 됐다. 특히 알폰소 3세는 왕이 되기 전 다른 귀족들과의 전쟁에서 이곳에서 8개월 간 버티며 승리했고 그 보답으로 이 도시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다. 1228년 이곳에 와 본 이사벨라왕비는 이 도시의 아름다움에 반했고 디니스왕은 이 마을을 결혼 선물로 왕비에게 줬다. 왕비에게 이 마을을 선물하는 이 같은 전통은 1834년까지 지속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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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른 종류의 꽃들로 장식된 골목길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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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한 가운데 교회가 있는데 거기에는 결혼식을 끝내고 나온 하객들이 복작거리고 있었다. 산타 마리아 교회라는 이름의 이 교회는, 원래 교회였던 것을 아랍인들이 이슬람사원으로 바꾼 것을 1148년 도시 탈환 후 다시 교회로 바꾼 복잡한 역사의 성당이다. 특히 알폰소 5세가 이사벨라 왕비와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오비두스가 리스본에서 가깝고 마을 골목골목이 아름다운 만큼 여기저기에는 결혼 야외 촬영을 하는 예비부부들이 모습이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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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색과 청색 대비가 너무 아름다운 오비두스의 골목길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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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끝으로 가자 성이 나타났다. 웅장한 성이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이 성의 기본 골격을 만든 것은 로마지만, 이후 아랍이 지배하며 아랍식 방어시스템을 추가했다. 이후 포르투갈의 여러 왕조들이 보강 공사를 했고 대탐험의 시대에는 당시 유행하던 화려한 마누엘 스타일도 가미했다. 성채는 완벽하게 보존된 멋진 성이었다. 특히 성채로 올라가 내려다보는 오비두스 마을의 풍경은 또 다른 매력이다. 위에서 내려다 본 붉은 지붕들의 퍼레이드, 그리고 결혼기념 활영 중인 예비부부 등 사람들의 모습 등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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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가 깊은 산타마리아 성당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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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감싼 성벽은 1565미터에 달한다고 한다. 성벽에 올라 마을과 성 밖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걸으면 별세계에 와 있는 기분이다. 천천히 성벽을 걸으면서 경치를 음미했다. 그러나 성과 성벽을 유지하고 있다고 오비두스를 '중세도시'라고 부르고 스스로 '중세도시'라고 선전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오비두스는 어두운 '중세도시'라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꽃의 도시', '옛 성곽의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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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두스 성채. 로마가 처음 만든 것을 보강한 것이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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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외 웨딩촬영하는 신혼부부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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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에서 내려다본 마을 지붕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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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을 밖에서 본 성곽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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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의 도시답게 선전포스터도 특이하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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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에서 본 날렵한 몰레이세로의 모습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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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이루 거리의 풍경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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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두스의 거리풍경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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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두스는 거리 낙서도 멋지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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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과 나무가 어우러져 작품을 만들었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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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란 길도 예쁘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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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도 꽃이 아름답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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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두스의 골묵은 어디나 예쁘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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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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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곽을 형상화한 호텔의 장식이 아름답다. ⓒ 손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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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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