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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박정훈 칼럼] 이게 ‘사회주의’ 아니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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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서 진행되는 사회주의化의 흐름은 좌파 집권의 제도화로 치닫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일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조선일보

박정훈 논설실장


‘타다’ 금지법은 못난 정치가 한국 경제에 보낸 절망의 메시지다. 전 세계에서 공유 경제가 만개했는데 우리는 있는 싹마저 뿌리째 뽑아버렸다. ‘우버’나 ‘그랩’에 비하면 별 혁신도 아니다. 첩첩산중 규제 속에서 실낱같은 틈을 찾아내 그나마 가능했던 것이 ‘타다’였다. 국제 기준으로 보면 애들 장난 같은 서비스인데 그것마저 못 하게 막는다고 한다. 이게 시장경제를 하겠다는 나라 맞나.

중국에선 설립 7년 된 신생 기업이 차량 공유 산업의 꽃을 피웠다. 4억여 명이 하루 3000만건씩 이용하는 '중국인의 발'이 됐다. 중국이라고 왜 택시 업계 반발이 없었겠나. 그렇지만 프롤레타리아 계급 정권인 중국 공산당 정부는 택시 노동자의 생존권을 이유로 혁신을 훼방 놓는 짓은 하지 않았다. 방해는커녕 있는 규제 다 면제해주고 국영 펀드 돈까지 대줬다. 신산업이 태동하면 중국은 키우고 한국은 싹을 자른다. 사회주의 중국이 시장 친화적인데 자본주의 한국은 기업과 혁신을 적대시하고 있다. 기막힌 역설이다.

한국 중·고교생이 중국보다 공부를 못한다는 조사가 나왔다. 국제 학업 성취도 조사에서 한국 학생들은 5~10위에 그친 반면 중국이 모든 영역 1위를 싹쓸이했다. 우리 청소년들 머리가 나쁜가? 아니다. 한국인의 지능이 세계 최고임은 공인된 사실이다. 2004년 영국·핀란드 교수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지능지수(IQ)는 평균 106으로, 사실상 세계 1위였다. 한국인의 두뇌 경쟁력은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당시 조사에서 중국인의 평균 IQ는 100에 불과했다. 두뇌는 우리보다 뒤처지는데 공부는 잘한다는 뜻이다. 결국 아이들 문제가 아니라 교육 탓이다. 중국은 중·고교도 입시를 치를 만큼 치열한 경쟁을 시키고 엘리트 교육에 주력한다. 반면 한국 공교육은 어떻게 공부 덜 시킬지를 연구하는 평등의 실험장이 돼버렸다. 교육 현장을 장악한 좌파 교육감들이 '무시험·탈경쟁'을 내세우며 학습 부진아를 양산하고 있다. 사회주의 중국이 경쟁과 수월성을 말하는데 자본주의 한국은 평등 지상주의에 빠져 하향 평준화된 인재를 찍어내고 있다. 어디가 사회주의이고, 어디가 자본주의인가.

이제 한국은 중국보다 더 사회주의 같다는 말이 이상하지 않은 나라가 됐다. 원격진료, 유전자조작, 빅데이터, 숙박 공유 등 중국에선 다 되는데 한국은 못 하는 분야가 한둘이 아니다. 혁신 기술을 개발한 기업인들이 규제에 좌절해 중국으로 떠났다는 식의 얘기가 꼬리를 물고 있다. 베이징 대학가는 창업 카페가 즐비한 스타트업의 천국인데 서울대 주변엔 고시촌이 진을 치고 있다. 중국 젊은이들은 백만장자의 꿈을 꾸고 한국 청년들은 공무원 시험에 청춘을 건다. 중국보다 더 사회주의적이라는 정부 정책과 규제가 이런 지경을 만들었다.

사회주의란 국가가 개입해 분배 평등을 이루려는 이념 체계다. 문재인 정부 국정은 '국가 주도'라는 점에서 사회주의 성격이 강하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주 52시간제를 강제해 개인의 '더 일할 자유'를 막았다. 과도한 최저임금을 강요해 '덜 받아도 일하려는' 개개인의 욕구를 방해하고 있다. 국가가 구체적 생활 영역까지 일일이 규정하고 개입하려 한다. "국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문 정부의 슬로건부터 사회주의적 발상과 다름없다. 5000만 국민의 삶은 다 제각각일 텐데 정부가 어떻게 일률적으로 책임진다는 건가.

문 정부 국정은 '기회의 공정'을 넘어 '결과 평등'까지 건드리고 있다. 공공 부문 성과급 폐지, 이익 공유제, 자사고·특목고 폐지 등이 그 예다. 분양가 상한제며 원가 공개처럼 시장가격에 손대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지금껏 이 정권의 책임 있는 사람이 '경제적 자유'나 '시장 원리'를 말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다. 자유와 시장의 영역을 줄이고 그 자리를 국가 기능으로 채워넣겠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의 이상은 달콤하지만 실현할 수 없는 사기극임이 판명 났다. 소련과 동구권 붕괴는 국가 주도 계획 체제의 모순에 따른 필연적 결과였다. 남미의 좌파 포퓰리즘 역시 경제 파탄으로 결말났다. 다 죽은 사회주의가 한국에서만 포퓰리즘의 탈을 쓰고 부활하고 있다. 이것은 색깔 논쟁이나 이념 시비가 결코 아니다. 기로에 놓인 대한민국이 직면한 지극히 현실적이고도 실존적인 문제다.

정치마저 사회주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 이 정권이 사활을 건 공수처는 중국의 감찰위원회를 본뜬 정권 직속 사정(司正) 기구다. 사회주의 일당(一黨)독재처럼 권력의 충견을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다. 장기 집권에 유리하게 선거제도를 바꾸고, 낙하산·코드 인사를 통해 곳곳에 좌파 진지(陣地)를 구축하고 있다. 선거 승리를 위한 정권의 개입 의혹까지 불거졌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진행되는 사회주의화(化)는 이제 좌파 집권의 영구화·제도화로 치닫고 있다. 그 끝이 어디일지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박정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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