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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김광일의 입] 문 대통령님, ‘타다’ 한번 타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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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수억 명의 독자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영국의 역사 소설가 켄 폴릿이라는 작가가 있다. 올해 일흔 살이다. 켄 폴릿이 쓴 ‘영원의 끝’이라는 다큐 장편소설 제2권 718쪽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 앵커맨이 방송에서 쫓겨나면서 대통령을 빗대 하는 말이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만일 대통령이 여러분께 비가 온다고 말하는데 정말 진정성이 보인다면, 어쨌거나 창밖을 내다보세요. 그저 확인을 해보시란 겁니다."

너무 가슴에 와 닿는 말이어서 밑줄을 쳐놓고 간혹 들춰보곤 한다. 대통령이 비가 온다고 하면, 어쨌거나 그대로 믿지 말고, 창밖을 한번 내다보라는 것이다. 특히 문 대통령을 생각할 때마다 간혹 이 말이 너무 절실하게 떠오르곤 한다. 문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가 거의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확실하다’고 거듭 장담을 하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다’고 말하고, ‘부동산은 안정됐다’고 말하고, ‘소득주도 성장이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하고, 그럴 때마다 자꾸 창밖을 쳐다보게 된다. 문 대통령은 오랜 가뭄 끝에 비가 온다고 하는데 창밖을 내다보면 차가운 날씨 속에 흙바람만 불고 있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했던 발언 하나를 소개한다. 이런 발언이다. "19세기 말 영국에 붉은 깃발법이 있었다.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려고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 증기자동차가 전성기를 맞고 있었는데, 영국은 마차업자들을 보호하려고 이 법을 만들었다. 결국 영국이 시작한 자동차 산업은 독일과 미국에 뒤처지고 말았다.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혁신은 속도와 타이밍이 생명이다." 누가 한 말 같은가? 렌터카 호출 서비스 업체인 이재웅 쏘카 대표가 한 말 같은가? ‘타다 금지법’에 반대하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한 말 같은가? 아니다. 이 말은 작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이 한 말이다.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을 방문해서 이 ‘붉은 깃발법’을 얘기했었다.

여객운수법 개정안, 일명 ‘타다 금지법’이 숱한 논란 끝에 국회 관련 상임위인 국토교통위를 통과했다.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문 대통령의 발언과는 정반대로 진행하고 있다. ‘타다’는 검찰에 의해 위법으로 규정되고 경영자들이 기소됐다. 법원의 판단을 기다릴 틈도 없이 이번에는 정치권이 나서서 ‘타다 금지법’을 만들고 상임위를 통과시켰다. 대통령은 비가 온다고 했는데, 창밖에는 수십 년 묶은 마른 먼지만 풀썩거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유튜브 방송을 보고 있는 분들 중에는 택시기사 분들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회사택시, 개인택시 기사들, 그분들의 가족까지 수십 만 명, 그리고 택시회사를 운영하는 분들까지 보고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의 이익이 침해되어서는 안 되고, 생존권이 위협 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와 동시에 대통령에게, 아니 대통령 부부, 그 부부의 친구들, 타다 금지법을 주도한 국회의원들에게 그냥 한 번 묻고 싶다. "타다를 타 봤나요? 타보기는 했나요?"

나는 여러 번 타봤다. 아니 애용자다. 어제 밤에도 이용했다. 내 카드로 다른 사람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타다를 호출하면 목적지를 입력하도록 돼 있다. 그 순간 요금은 자동으로 결제되도록 절차가 시작된다. 잠시 뒤 타다 차량이 온다. 흰색 혹은 검은색 카니발이다. 차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기사가 "안녕하세요" 하고 짧은 인사를 정중하게 건넨다. 차 안에는 93.1 메가헤르츠 KBS 클래식 음악 방송이 낮게 흐르고 있다. 차안은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다. 담배 냄새 절대 없다. 기사는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최대 4명까지 탈 수 있는 일반택시와는 달리 타다는 승합차량이어서 승객이 예닐곱 명까지 탈 수 있다. 차량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자동으로 차문이 열리고, 기사는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를 짧고 정중하게 건넨다. 이용하기 쉽고 친절하다. 그걸로 끝이다.

‘타다’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상징적인 비즈니스라는 말을 꺼낼 필요도 없다. 차량 공유가 4차 산업 중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표적인 업종이라는 점도 이제는 더 이상 강조할 필요가 없다. 택시기사들의 불만을 완전 무시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그 분들의 생존권을 보호하면서 또 궁극적이고 장기적으로 택시 산업과 차량 호출 산업과 차량 공유 산업의 미래를 위한 타협점을 찾자는 얘기다. 그렇다고 4차 산업의 싹을 잘라버리는 일을 제발 대통령과 정치권이 모르는 척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법을 만들어 멈추게 만들려고 해도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도도한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는 일이다. 붉은 깃발법을 빗대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했다. "말(馬)들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다면 오늘날 자동차는 없었을 것이다."
‘타다 금지법’은 문 대통령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던 영국의 ‘붉은 깃발법’이나 똑같다. ‘타다 금지법’은 사실상 ‘혁신 금지법’이다. 문 대통령은 비가 내린다고 했는데, 창밖을 내다보니 마른 먼지만 날리고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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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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