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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장난감 수리비는 아이들 웃음으로 받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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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닥터' 유원일씨의 재능기부

"AS센터 부족하단 기사 보고 시작… 반짝이던 아이들 눈빛 잊지 못해… 소외지역 위한 원정 수리도 할 것"

"이건 접촉 불량이에요. 장난감이 낡아 건전지 접합 부분이 녹슬었어요."

지난 12일 경기 성남의 한 교회 3층 사무실에서 확대경을 쓰고 앞치마를 두른 '토이 닥터(Toy Doctor)' 유원일(50)씨가 버튼을 누르면 동요가 나오는 장난감을 드라이버로 수리하며 말했다. 유씨 손을 거친 장난감에서 곧 '곰 세 마리' 멜로디가 멀쩡하게 흘러나왔다. 장난감 주인인 11개월 아이가 노랫소리에 맞춰 엄마 품에 안겨 팔을 흔들었다. 엄마 장소영(40)씨는 "아이를 춤추게 하던 장난감이 고장 나 속상했는데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유씨는 장씨가 가져온 다른 장난감 2개도 15분 만에 모두 수리했다.

조선일보

지난 12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불꽃장난감척척수리센터에서 대표 유원일씨가 고장 난 장난감을 고치고 있다. 작년 7월 센터를 연 유씨는 1년 5개월 동안 700개가 넘는 장난감을 고쳤다. /장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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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는 작년 7월부터 교회 사무실을 빌려 '불꽃장난감척척수리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장난감 수리센터가 부족하다는 기사를 본 것이 계기였다. 유씨는 "요즘 장난감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 부담을 느끼는 많은 부모가 장난감을 지인에게서 물려받거나 중고로 산다"며 "여러 아이를 거쳐 낡고 고장 잦은 장난감을 수리할 곳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유씨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컴퓨터 키보드 회사 행정직으로 일하다가 20년 전부터 교회 행정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본업이 따로 있지만 틈날 때마다 고장 난 장난감을 수리해준다. 최소한의 부품값 외에 수리비는 전부 무료다.

1년 5개월 동안 700개가 넘는 장난감이 유씨 손을 거쳐 갔다. 에듀테이블, 인형, 모빌, 보행기 등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수리 성공률은 90%가 넘는다. 성남 지역 엄마들 사이 유씨는 '맥가이버 척척박사'로 통한다. 유씨는 "가끔 고치기 어려운 장난감을 받으면 잠을 못 잔다"며 "밤새 유튜브 찾아보고, 다양한 부품을 맞춰보며 연구한다"고 했다.

유씨는 장난감 수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다. 어렸을 때부터 전자 기기를 분해·조립하는 것을 좋아해 장난감도 중고로 사 뜯어보고, 다시 조립해보며 수리법을 터득했다. '국민 문짝'이라며 인기가 많은 집 모양 장난감 '뉴 러닝홈'은 수리 방법을 연구하려고 사무실에 중고품을 4개나 사들여 보관하고 있다. 유씨는 자신의 네이버 카페, 유튜브,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수리할 수 있는 장난감 목록과 장난감 관련 정보를 부모들과 적극 공유하고 있다.

가장 보람된 순간으론 '기뻐하는 아이들을 볼 때'를 꼽았다. 유씨는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여자아이가 다리가 빠진 강아지 인형을 들고 센터를 찾아왔었는데, 고친 인형을 받아들자 반짝반짝 빛나던 아이 눈을 잊을 수가 없어 지금까지 왔다"고 말했다.

앞으로 유씨는 지역 복지관, 보육원과 연계해 장난감 수리를 계속할 예정이다. 또 성남까지 장난감을 고치러 올 수 없는 전국 소외 지역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 원정 수리'라는 꿈도 밝혔다. "요즘 애들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논다지만, 장난감은 감각을 발달시키는 중요한 교구예요. 힘이 닿는 한 수리를 계속해 더 많은 아이에게 '장난감'같이 친근한 척척박사가 되고 싶습니다".

[강다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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