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사진)가 지금껏 가보지 못한 길을 향해 성큼 걸어가고 있다. 테리사 메이 전 총리가 끝내 넘어서지 못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실행하기 위한 하원 통과를 성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EU와 아름다운 결별을 하기 위한 여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전환 기간이 11개월에 불과해 영국과 EU 간 협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우려로 브렉시트 법안 통과 직후 반등한 파운드화가 되레 하락하며 장을 마치는 등 시장에서는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영국 하원은 20일(현지시간) 하원에 상정된 EU 탈퇴협정 법안(Withdrawal Agreement Bill·WAB) 표결에서 찬성 358표, 반대 234표로 124표 차 가결했다. WAB는 영국과 EU 간 합의한 탈퇴협정(국제조약)을 이행하기 위해 영국 내부적으로 필요한 각종 시행법(국내법)이다. 내년 1월 7~9일 WAB에 대한 하원의 추가 토론 과정, 상원 승인, '여왕 재가' 등을 거치면 정식 법률로 효력을 가진다. 지난 12일 총선에서 존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안정적인 하원 과반 의석을 확보해 나머지 절차는 무난히 완료할 것으로 보인다.
존슨 총리는 이날 WAB 가결 직후 트위터를 통해 "영국이 브렉시트를 완수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다가섰다"고 밝혔다. 그는 표결에 앞서 "지난 3년간 유감스러운 얘기는 끝내고 이제 앞으로 나아가자"며 "EU와 야심 찬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기 위한 길을 닦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번 표결에 앞서 의회가 브렉시트 과도기 기한(2020년 12월 31일)을 추가 연장할 수 없게 하는 내용을 WAB에 담았다. 이는 영국이 다음달 브렉시트 발효 이후 11개월 내에 EU와 무역협정 등 미래 관계 협상을 마쳐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각에서는 1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미래 관계 협상을 마무리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국이 아무 합의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에 가까워졌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셸 바르니에 EU 측 브렉시트 협상 대표는 "내년 말까지 협정을 마무리 짓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과제"라며 "영국은 부작용을 줄이고 무역협정을 체결하기 위해 EU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우려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파운드화는 브렉시트 법안이 하원을 통과한 직후 1.3080달러까지 치솟았으나 이내 떨어져 전장보다 0.03% 떨어진 1.3005달러에 마감했다. 파운드화는 나흘 연속 하락했다.
다만 긍정적인 견해도 만만치 않다. EU와 영국 모두 브렉시트 피로감이 극에 달한 까닭에 하루라도 빨리 협상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속내가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영국 경제가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3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붕괴되지 않았다는 점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주목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일방주의에 맞서 프랑스와 독일이 군사·정보·외교·무역 파트너로서 영국이 지닌 가치를 이해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내부적으로는 스코틀랜드의 독립 주민투표 추진이 향후 브렉시트 추진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지난 19일 존슨 총리에게 독립 주민투표를 실시할 권한을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하지만 존슨 총리는 주민투표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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