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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2 (일)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문 기수 죽음, 마사회 갑질·부조리가 부른 타살…선진 경마라는 '죽음의 경주'가 그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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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이번 사망 사고, 노동 존중 표한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나…공기업 관리·감독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

세계일보

27일 경남 김해시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부산경마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된 문중원 기수의 유가족 등이 한국마사회에 사태 해결 촉구를 위해 빈소를 서울로 옮기기로 결정했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제공


한국마사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폭로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문중원(41) 기수 유족과 노조가 빈소를 서울로 옮겨 상경 투쟁을 벌인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은 27일 경남 김해시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문 기수 빈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에서 더 강력하게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문 기수의 죽음은 마사회 갑질과 부조리가 부른 타살로 선진 경마라는 죽음의 경주가 그 원인"이라며 "이 죽음의 경주를 멈추지 않는 한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죽음은 계속될 것"이라고 분노했다.

이어 "우리가 서울로 가는 이유는 문 기수의 죽음이 노동 존중을 표한 문재인 정부에서 일어났으며 공기업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7명이 잇따라 죽은 마사회에서 더 이상의 기다림은 고인을 두 번 죽이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마사회가 고인의 염원과 한을 풀기보다 시간을 끌며 여론 물타기를 한다고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공공운수노조는 "치졸하고 비열한 마사회가 문 기수의 죽음을 왜곡해 누더기로 만들기 전에 우리가 한 발자국 앞서서 해결하고자 머나먼 투쟁에 나선다"며 "고인이 안락을 거부하고 온갖 부조리와 불의에 맞섰듯이 그 뜻에 따라 투쟁의 길, 승리의 길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고인의 장인인 오준식 씨는 "자기들의 이권을 위해 눈가림으로 현실을 피해 가려는 오만불손한 마사회의 제도를 개선해야 사람이 죽어 나가지 않는다"며 "눈물과 감정을 뒤로하고 우리 중원이 죽음이 헛되지 않게 끝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했다.

공공운수노조와 유족은 빈소를 서울로 옮기고 시민대책위를 구성해 투쟁을 이어갈 방침이다. 서울에 마련할 빈소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이들은 이날 오후 2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시민대책위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 면담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공공운수노조 "치졸하고 비열한 마사회가 문 기수 죽음 왜곡"

고인이 된 문 기수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자녀들에게 준비한 선물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과 유족에 따르면 문 기수는 목숨을 끊기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8살 딸과 5살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문 기수 부인 오은주 씨는 "남편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이브 날에 배송되도록 예약 주문해둔 사실을 남편이 남긴 편지를 보고 알았다"며 "이렇게 자녀들을 생각했던 다정했던 남편을 억울한 죽음으로 몰아간 마사회가 하루빨리 제도를 개선해 더는 남편 같은 희생자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기수가 자녀들에게 준비한 마지막 성탄 선물은 영정 사진 앞에 놓였다.

유족과 공공운수노조는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제도개선, 공식 사과 등의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장례를 연기하고 있다.

문 기수가 세상을 떠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노조와 한국마사회는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갈등은 더 커지는 모양새다.

한국경마기수협회와 한국마사회가 경마제도 개선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지만, 노조와 유족 측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하는 것에 공공운수노조 측이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21일 경기 과천시 한국마사회 정문에서 마사회장에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 과정에서 유족이 경찰에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노조와 마사회 갈등은 극에 치닫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관계자는 "문중원 기수는 엄연한 민주노총 조합원인데 유족과 노조를 배제하고 마사회와 기수 간 내부적으로 합의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말했다.

◆마사회 "유족, 기수협회가 요구했던 '경마제도 개선' 합의 이뤘다"

마사회는 전날(26일) 경기도 과천 기수협회회관에서 한국경마기수협회와 '경쟁성 완화·기수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제도 개선'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합의 내용은 승자 독식 구조의 경마 상금 제도 개선이다. 경마 관계자의 생활안정성 강화를 위해 상금 비율 조정 등으로 경쟁성을 완화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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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상금의 비중을 낮추고 하위 순위 상금을 상향하는 등 '편중 현상'을 해소하기로 했다. 기수·말 관리사·조교사 등 경주마 관계자들의 소득 안정성을 강화하는 차원이다.

상위권 기수의 기승 횟수 제한, 기승 기회 균등화로 기수들의 소득 안정화 기반도 만들기로 했다. 최소 경주 참여만으로도 최저 생계비를 웃도는 수입을 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낙순 마사회장은 "유족과 기수협회가 요구했던 '경마제도 개선'에 대한 합의을 이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도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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