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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1 (목)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명동·종로 상인 90% “최저임금 인상 한계…너무 부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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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 8590원 시대 자영업은

    30곳 중 20곳 “알바·시간 줄였다”

    “다 내보내고 가족끼리 버티는 중”

    18곳은 새해 또 오르는 줄도 몰라

    “알바생 살리자고 자영업 죽이나”

    중앙일보

    지난해 여름 폐업한 서울 종로구의 한 노래방 입구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있다. 임성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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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13년째 돈가스집을 운영한 태영자(60)씨. 장사라면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버거웠다. 한창땐 태씨와 주방·홀 직원 3명이 꾸리던 가게였다. 올해부턴 직원을 다 내보내고 태씨와 남편 둘이서 일한다. 지난달 27일 그를 만나 “장사가 어려워진 변곡점이 언제였느냐”고 물었다.

    “2년 전부터 무너지더라고요. 최저임금이 한 번에 1000원 가까이 연달아 뛰니까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급한 대로 아르바이트생 근무 시간부터 줄였다. 그래도 버틸 수 없어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고 남편을 가게로 들였다. 처음엔 서툴던 남편도 고기에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기는 일을 곧잘 한다. 태씨 남편은 수차례 불에 덴 팔뚝을 훈장처럼 내밀었다.

    태씨는 “남편과 쉬는 날도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꼬박 13시간 일한다”며 “장사하는 입장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던 나라’가 요즘이 아닌가 싶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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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종로구에서 음식점을 하는 김영택씨가 지난달 27일 홀로 저녁 장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씨는 ’임대료·재료비도 최저임금 따라 올랐다“고 말했다. 임성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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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년 전인 2018년 연말 종로의 노래방에서 만난 사장 김모(40)씨는 냉장고에서 꺼낸 음료수를 쟁반에 담느라 바빴다. 손님 방에 음료수를 가져다주고 카운터로 돌아온 그는 “인건비가 부담스러워 저녁에는 나 혼자서 뛰고, 오후 11시부터 아르바이트생이 출근해 돕는다”고 말했다.

    당시 그가 아르바이트생에게 주던 시급은 2018년 최저임금(7530원)은 물론 2019년 최저임금(8350원)보다 높은 8500원. 술에 잔뜩 취해 노래방을 찾는 ‘진상 고객’이 많아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려는 아르바이트생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는 “2019년에는 알바 시급을 최소 9000원으로 맞춰줘야 한다”며 “법을 지키면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최저임금의 파고를 이겨내려 했던 그를 다시 찾았다. 하지만 노래방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김씨가 떠난 자리엔 ‘임대 문의’라고 적힌 안내문만 붙었다. 바닥에는 전단이 수북했다. 건물 관리인은 “김씨가 6개월 전 가게를 내놨지만, 아직 주인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작년 조사 30곳 중 2곳은 문닫아

    중앙일보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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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 8590원 시대’를 맞아 본지는 지난달 26~30일 대한민국 대표 상권으로 꼽히는 서울 중구 명동, 종로3가 일대 식당·옷가게·편의점·노래방 등 30곳의 내년도 최저임금 준비 실태를 긴급점검했다. 설문 결과 18곳(60%)이 내년도 최저임금이 8590원으로 오르는지도 모르는 ‘무방비’ 상태였다. 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충격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아르바이트생에게 최저임금을 주는 명동의 편의점 주인 황모(48)씨는 “최저임금이 2018~2019년 유독 많이 올라 새해 인상 폭이 줄어도 체감하지 못하겠다”며 “버티다 못해 올해만 아르바이트생 2명을 내보냈는데 또 올려주게 생겼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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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최저임금(8590원) 알고있나.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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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의 칼바람은 곳곳에 불어닥쳤다. 30곳 중 “최저임금 인상이 부담스럽다”고 답한 곳이 27곳(90%)이었다. 명동에서 갈빗집을 운영하는 신인철(69)씨는 “최저임금이 부담스럽다고 40년 같이 일한 직원을 그만두게 할 순 없다”며 “매출은 월 1억 2000만~1억 3000만원으로 제자리걸음 하는데 인건비가 꾸준히 늘어 4000만원 이상 나가다 보니 이윤이 거의 안 남는다”고 털어놨다.

    가장 큰 문제는 최저임금을 줄 ‘여력’이 없다는 것. 1년 전 취재한 30곳 중 2곳은 이미 문을 닫았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비해 7곳이 “아르바이트생을 줄였다”, 13곳이 “아르바이트생 근로시간을 줄였다(사장 근로시간을 늘렸다)”고 답했다. 아르바이트 근로시간 줄이기→사장 근로 늘리기→(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아르바이트 해고하기→이익 줄어도 버티기로 넘어가면서 견뎌왔지만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2018년부터 아르바이트생 2명을 다 내보내고 나와 부인, 직원 3명이 일합니다. 그러고도 직원보다 사장이 더 오래 일해야 버틸 수 있지요. 2층(30석) 장사는 접고, 1층(7석)만 운영합니다.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명동 라면집 주인 이모씨).”

    “하루 14시간씩 쉬지 않고일하다 보니 몸이 많이 상했습니다. 폐업을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19년 동안 편의점만 운영하다 보니 다른 일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결국 5월부터 야간·명절에라도 쉴 수 있는 브랜드 편의점으로 간판만 바꿔 달았습니다(종로 편의점 사장 김철근씨).”

    “명동에서만 35년째 장사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임대 문의’ 안내가 붙고, 1층 매장을 비운 곳이 눈에 띕니다. 외환위기 때도 못 봤던 풍경이지요. 대한민국 최고 상권이 이런데 다른 곳은 더할 겁니다. 경기가 좋다면 최저임금을 올려도 괜찮겠지만, 불황에도 꼭 올려야 하는지 의문입니다(명동 옷가게 사장 조기현씨).”

    “임대료보다 최저임금이 더 부담”

    최저임금이 임대료보다 더 부담스럽다고 꼽은 자영업자도 많았다. 30곳 중 11곳이 “(임대료보다) 인건비가 더 부담이다”, 9곳이 “임대료가 더 부담이다”라고 답했다. 임대료와 무관한 건물주·직영점은 6곳이었다. 임대료는 고정비지만 최저임금은 가변비용이라 이미 임계점에 다다른 자영업자에게 ‘결정타’를 때렸다는 설명이었다. 명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정모(36)씨는 “임대료 비싼 거 모르고 장사하는 사람 있느냐”며 “임대료가 부담되면 장사 안 하면 그만이지만 인건비는 내 뜻과 무관하게 나가는 돈”이라고 말했다.

    “현장을 너무 모른다”는 의견도 나왔다. 종로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최연옥(48)씨는 “최저임금이 240원 오른다고 인건비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라며 “재료비·부자재 값도 연동해 다 오르기 때문에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명동의 한 PC방 업주 최모(52)씨는 “일이 고된 갈빗집, 노래방 같은 곳은 최저임금보다 시급을 더 얹어줘야 고용할 수 있는데 현장 사정을 아는지 모르겠다”며 “알바생들 살리자고 자영업자 죽이는 게 대안은 아니잖느냐”고 하소연했다.

    김기환·임성빈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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