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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이라크 미 대사관 ‘피격·방화’…트럼프 ‘대이란 정책’ 수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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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명 반미 시위대, 미군의 시아파 민병대 공습에 반발 공격

새해 첫날 대사관 앞 연좌농성도…미군 750명 중동으로 급파

트럼프 “큰 대가 치를 것” 하메네이 “당신 무력해” 트윗 설전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 정책이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카타이브 헤즈볼라(KH)에 대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군 공습에 반발하는 반미 시위대가 주이라크 미국대사관을 공격하고 연좌농성을 벌인 장면은 미국 처지가 여의치 않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최대 압박’ 작전에도 이란이 항복은커녕 걸프지역 곳곳에서 시아파 민병대 등을 동원한 군사행동을 펼치면서 트럼프 행정부를 진퇴양난으로 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79년 주이란 미국대사관 인질사건 등 미국의 중동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는 말도 있다.

수천명 규모의 시위대는 31일 오전 바그다드에 있는 미국대사관 앞에 모여 반미 구호를 외치고 성조기를 태웠다. 수십명이 5m 높이의 대사관 철문을 부수고 공관 안쪽으로 진입해 입구 부분에서 불을 질렀다. 주이라크 미국대사관이 시위대 습격을 당한 것은 처음이다. 대사관을 지키던 미 해병대는 최루탄과 섬광탄으로 대응했고, 시위대는 대사관 앞 경비초소를 불태우고 감시 카메라를 부쉈다.

시위대는 1일 대사관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대사관 부근 주차장과 공터에 텐트 50동을 치고 간이 화장실까지 설치해 장기 농성을 예고했다. 이들은 KH를 지지하는 시민과 조직원으로 보인다.

미국은 병력 750명을 중동에 급파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성명에서 “제82 공수사단 즉각대응부대(IRF)의 보병대대를 미 중부사령부 작전지역으로 배치하는 것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폭스뉴스는 최소 500명이 이라크 인근 쿠웨이트로 이동 중이라고 했다. 폭스뉴스는 제82 공수사단 내 4000명 규모 여단의 낙하산 부대원들이 수일 내에 투입될 수 있도록 군장을 챙기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전했다. 급파 병력은 지난해 5월 호르무즈해협에 증파된 1만4000여명 병력과 함께 유사시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트위터에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와 카이스 알-카잘리가 이를(대사관 공격) 조직하고, 이란의 대리인인 하디 알 아마리와 팔레 알 파야드가 선동했다”며 자신이 지목한 4명이 시위대 속에 있는 사진을 올렸다. 알무한디스는 KH의 창설자로 시아파 민병대에 영향력이 큰 인물이며, 카이스 카잘리는 시아파 민병대 아사이브 알 알하크의 수장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정책 한계와 혼란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로버트 포드 전 시리아 주재 미국대사는 AP통신에 “이란이 놓은 덫에 걸려들었다”고 말했다. 미군의 친이란 민병대 공습이 이라크 내 반미 정서를 부추기면서 이란 지원세력, 나아가 이란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라크와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다. 이라크 총리실은 1일 아델 압둘-마흐디 총리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전화를 걸어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군의 시아파 민병대 공습에 대한 불만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이란은) 아주 큰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지만 수단이 마땅치 않다. 미국인과 미국 시설에 대한 시아파 민병대의 공격이 계속될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 민병대 공습과 같은 강수를 다시 두기는 어렵다. 중동 분쟁이 고조되면 재선가도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트럼프 트윗을 리트윗하면서 “이자가 바그다드 사건의 책임이 이란에 있다고 트위터에 적었는데 첫째, 당신은 무력하다” “둘째, 그럴 리 없지만 당신이 논리적이라면 당신들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범죄를 보라. 그 범죄 때문에 여러 나라가 미국을 증오하게 됐다”고 반박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핵 개발을 자제하는 대가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이란핵합의(JCPOA)를 일방적으로 탈퇴한 것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이란이 미국의 경제제재 복원에 반발해 대리세력을 통한 도발을 이어가면서 중동 정세가 혼란스러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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