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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줌인] 테러 역풍 우려에도 트럼프가 '이란의 롬멜' 제거 지시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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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롬멜(Iran's very own Erwin Rommel)이 죽었다."

‘사막의 여우’로 불렸던 2차 대전 명지휘관에 견줄만큼 이란 군부에서 실세 노릇을 하던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이 이란도 아닌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 공습에 사망했다. AP는 2일(현지시각) 고위 군사 관계자를 인용해 "솔레이마니 시신이 미군 드론 공습으로 산산이 찢겨져 신원 확인이 어려울 정도였으나, 손가락에 끼인 반지로 신원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미국의 ‘제거 대상’에 오른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중동 지역 유력매체 알 자지라는 이날 "솔레이마니가 1998년 쿠드스군 사령관 자리에 오른 이후, 20년이 넘도록 서구 정보기관은 물론 이스라엘을 포함한 다른 아랍국가가 시도한 숱한 암살 시도에서 살아 남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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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사망 소식을 들은 이후 그의 지지자들이 사진을 들고 추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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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미수’에 그쳤던 암살은 어쩌다 드론까지 동원한 군사작전으로 번졌을까. 두 달째 이어진 미군시설에 대한 포격과 지난달 31일 친(親)이란 시위대의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 습격이 이번 사건의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다.

미국 국방부는 이날 솔레이마니 사망 이후 공식 발표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솔레이마니가 지난 몇달 동안 이라크를 포함한 중동지역 미국인들을 전방위적으로 공격하려는 계획을 주도(orchestrated)하고 있다는 사실을 포착했다"며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 ‘공격(attack)’을 최종 승인한 주인공도 솔레이마니"라고 밝혔다.

이어 국방부는 "해외에 체류 중인 대사관 직원을 포함한 미국인 모두를 보호하기 위한 중대하고 선제적인 방어 조치(defensive action)"라며 "작전은 ‘대통령의 지시(at the direction of the President)’에 따라 이뤄졌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 보도 직후 자기 트위터 계정에 아무 설명 없이 성조기 그림을 올려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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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 사망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성조기 그림.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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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대사관이 습격당한 직후 트위터에 "이란은 우리의 시설들에서 발생한 인명 손실 또는 발생한 피해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며 "그들은 매우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것은 경고가 아니라 협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플로리다의 한 리조트에서 연말연휴를 즐기며 "이란과 전쟁하길 원하지도 않고, 앞으로 전쟁이 벌어질 거라 보지도 않는다"고 바로 잡아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적 접근법은 그의 엄포와 달리 효과가 거의 없다’는 의구심을 자아냈다.

미국은 이번 공격으로 이란에 대한 강경 일변도의 정책에 변함이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줬다. 이란 문제와 관련해 옥죄기식 제재와 지도부에 대한 군사 작전을 이어가면서 이란에 '미국에 대응하면 고립과 죽음 뿐'이라는 겁주기에 성공했다는 것이 외신들의 분석이다.

다만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이란과 이라크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국가 지도자에 비할만큼 높았던 점을 감안하면, ‘중동의 미국인을 보호하겠다’는 애초 취지와 다르게 오히려 ‘중동 내 미국인 전부를 테러의 대상으로 돌리는’ 역풍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오사마 빈 자바드 알자지라 특파원은 "솔레이마니 사망은 이라크와 중동 전체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미국과 이라크 정부 관계에 심각한 타격을 줌과 동시에, 더 안 좋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은 일촉즉발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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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이 탔던 자동차가 미군의 공습을 받아 산산조각 난 채 불타고 있다. /이라크 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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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솔레이마니는 이란 혁명수비대 중에서도 정예부대인 쿠드스군(軍)의 총사령관으로 이란의 군사작전 설계에 깊이 관여해 왔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것으로 알려진 그는 1979년 이란 혁명 발발 당시 이슬람혁명수비대에 가담해 팔레비 왕조의 붕괴에 일조해 ‘개국공신’ 수준 지위를 누려왔다.

이후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가 수니파 급진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을 벌이자 이란을 넘어 이라크까지 진출해 민병대를 직접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이라크 내 친이란 시위대 사이에서 명성을 얻었고, 이들이 지난달 미국 대사관을 공격하게끔 부추기는 데 원동력이 됐다.

미국 외교 관계위원회 소속 상원 의원인 크리스 머피는 "우리가 외국의 유력 인사를 마음 대로 처벌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 보복으로 미국인 역시 살해당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 사건이 ‘대규모 지역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톰 우달 민주당 상원의원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헌법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의회의 승인도 없이 이란과 불법적인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며 "이런 무모한 적대적 행위는 이라크와 미국 사이 관계를 악화시킬 뿐 아니라, 미군과 미국인을 또 다른 재난으로 몰아넣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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