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트럼프, 넌 내가 상대하마"… 22년간 反美전선 지휘한 이란의 롬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 제거된 솔레이마니는 누구?

하메네이 최측근·권력 2인자

드론공격 등 '그림자 전쟁' 주도, 중동 전역 드나들며 야전가 명성

헤즈볼라·하마스에 무기 지원, 이라크선 장관 임명에도 관여

미국의 기습적인 드론 공습으로 제거된 가셈 솔레이마니(62)는 이란 군부의 최고 실세이자 전략가로 꼽힌다. 이란의 신정(神政) 일치 통치 체제를 떠받치는 핵심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에서도 '두뇌'에 해당하는 쿠드스(Quds)군의 총사령관을 22년째 맡아온 인물이다.

쿠드스군은 해외의 친(親)이란 군사 조직을 지원하고, 비밀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두 가지 임무를 맡는 정예 조직이다.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반군,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등 중동 각지의 친이란 무장 세력에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며 이란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큰 그림을 그려왔다. 지난달 31일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관을 공격한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도 쿠드스군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솔레이마니는 사이버 공격, 드론 폭격, 외교관 암살 등 '그림자 전쟁'도 지휘해왔다. 주된 공격 타깃은 미국과 이스라엘이었다.

조선일보

미국의 공습으로 폭사한 솔레이마니(가운데) 이란 쿠드스 사령관이 지난 2018년 9월 군 수뇌부를 이끌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를 접견하면서 어딘가를 매섭게 쏘아보고 있다. 최고지도자 비서실은 3일(현지 시각) "우리의 최고 영웅을 죽인데 대해 격렬한 보복을 하겠다"며 이 사진을 다시 배포했다. /EPA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미 CNBC의 중동 문제 전문가 제이크 노백은 "솔레이마니는 미국에서 (IS 우두머리였던) 알바그다디보다 덜 유명하지만 매일 중동 뉴스를 보고 분석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세계 최고의 악당"이라며 "그의 죽음으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솔레이마니는 이란 테헤란에 박혀 있지 않고 중동 전역을 제 집 드나들듯 옮겨다니며 현장에서 작전 지시를 내리는 '야전 사령관'이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동·아프리카를 휩쓸고 다니던 나치 독일의 전쟁 영웅 에르빈 롬멜에게 빗대 '이란의 롬멜'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테러 단체 IS(이슬람국가)에 의해 우방인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이 무너지지 않도록 2015년 시리아에서 직접 IS 퇴치 작전을 지휘하는 모습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대미(對美) 강경파인 솔레이마니는 직접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에 맞짱을 뜨기도 했다. 트럼프가 2018년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 빗대 "제재가 오고 있다"는 문구를 자신의 사진과 합성한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며 이란에 경고하자, 솔레이마니는 곧바로 본인의 사진에 "당신 따위는 내가 상대하겠다(I will stand against you)"고 적은 포스터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솔레이마니는 최근 이라크에서 활동을 집중해왔다. 작년 10월 이라크에서 민생난에 지친 반(反)이란 성격의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자 서둘러 바그다드로 날아가 이라크 정부 핵심 인사들을 소집해 대책 회의를 주재했다. 그 직후 이라크 군경이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기 시작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는 "이라크 정부는 솔레이마니의 재가를 받아야만 장관급 인사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란에서 솔레이마니는 아야톨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잇는 '권력 2인자'로 통한다. 실질적인 힘이 대통령을 능가한다고 한다. 쿠드스군 총사령관이 된 이듬해인 1999년 대학생들이 반정부 시위를 벌이자 솔레이마니는 모하마드 하타미 당시 대통령에게 "오늘 이슬람 혁명 정신을 지킬 수 있는 결단을 못 한다면 내일은 너무 늦을 것이다"며 공개적인 경고 서한을 보냈다. 워낙 이란 보수층에서 인기가 높아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솔레이마니의 출마를 촉구하는 캠페인이 벌어졌을 정도다.

솔레이마니는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나 13세부터 건설 현장 인부 등으로 일하며 아버지의 빚을 갚았다. 1979년 이란 대혁명이 벌어지자 혁명수비대에 입대했고, 1980년부터 8년간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맹활약한 무공으로 30세 무렵에 일찌감치 사단장으로 진급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솔레이마니를 눈엣가시로 여겨 오래전부터 제거할 궁리를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2011년부터 솔레이마니를 제재 대상으로 지정, 어떤 미국인이나 미국 기업도 솔레이마니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이란이 보복을 다짐하면서 중동 정세는 한층 불안해질 전망이다. 국제 테러감시 단체 시테의 리타 카츠 대표는 "중동에 주둔하는 미군과 미국 관련 시설은 보다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고 했다. 이란이 미국에 대해 게릴라식 반격을 가할 가능성은 있지만 미국의 제재로 원유 수출이 봉쇄돼 심각한 경제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대대적인 보복전을 전개할 여력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파리=손진석 특파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