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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outlook] 미국, 장군 솔레이마니 잡고 순교자 솔레이마니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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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도 교수가 본 미국·이란 충돌

역대 미국 눈엣가시 솔레이마니

트럼프 전임자들 감히 못 건드려

탄핵 저지 위해 없앴다면 자충수

미군 철수 불 댕길 영웅 만든 셈

중앙일보

지난 3일(현지시간)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오른쪽)는 미국 공격으로 숨진 솔레이마니 (액자 속 인물) 자택을 방문, 가족들을 위로하고 ‘가혹한 보복’을 다짐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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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첨단 드론 MQ-9 리퍼 공습으로 이란 혁명수비대의 최정예 쿠드스군 사령관인 솔레이마니 장군과 4명의 이란 혁명수비대 장성, 이라크의 시아파 인민동원군 부사령관인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등 10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중에는 솔레이마니의 사위와 2008년 이스라엘이 암살한 헤즈볼라 지도자 이마드 무그니예의 사위도 있었다.

2018년 2월 15일 무그니예 사망 10주년 기념일에 솔레이마니는 무그니예를 “우리 시대의 전설”이라고 치켜세우며 그의 죽음을 이란 혁명 지도자 호메이니의 서거 이래 가장 슬픈 일이라고 애도했다.

그는 “미사일로 적을 죽이는 것보다는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정권을 파괴해야 진정한 보복”이라고 강조하고, 이를 “신의 약속”이라고 하면서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스스로 그러한 날을 보지 못한 채 무그니예의 사위와 함께 목숨을 잃은 것이다.

중동 지역 반이란 국가들과 미국의 눈엣가시였던 솔레이마니를 트럼프 대통령이 폭사시키면서 중동에 끝 모를 안보 긴장감이 몰려오고 있다. 예루살렘을 뜻하는 아랍어 꾸드스의 페르시아어 발음 고드스를 채용한 쿠드스군은 이름에서 볼 수 있듯 팔레스타인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부대다.

솔레이마니, 이란 영향력 크게 키워

솔레이마니는 쿠드스군을 1997년부터 지휘하며 이란의 대이라크·시리아·레바논·아프가니스탄 외교 업무를 지휘해 왔다. 탁월한 능력과 성실함으로 솔레이마니는 주변 국가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는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내에서 미국보다 이란이 이라크 정치지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데서 여실히 드러났다.

트럼프 이전 미 행정부에도 솔레이마니는 대단히 불편한 존재였다. 그러나 그를 제거할 경우 그 후과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제거 작전을 펴지 못했다. 또 이스라엘이 솔레이마니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도록 막아왔다. 이스라엘 언론은 2018년 1월에야 비로소 미국이 이스라엘의 솔레이마니 암살 작전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최근까지 이란은 솔레이마니를 죽이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적의 음모를 따돌렸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신변의 불안을 늘 느끼고 있었던 솔레이마니는 언제나 순교 준비가 되어 있음을 공공연히 밝혔고,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이런 그를 두고 살아 있는 순교자로 부르기까지 했다. 참모진마저 놀라게 한 트럼프 대통령의 솔레이마니 살해 승인은 이러한 의미에서 대단히 충격적이다. 과연 파급효과를 진중하게 고민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는 전임자와 달리 이라크·레바논·예멘의 ‘친이란 무장세력’을 이란과 구분하지 않고 한몸으로 간주해 이란에 압박을 가해 왔다. 이라크의 시아파 인민동원대,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시 반군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이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고 규정한 것이다. 이러한 압박은 이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미국은 이들 작전을 모두 솔레이마니가 지휘한 것으로 보았다.

미국은 솔레이마니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을 공격했고,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서 양측의 합동작전은 IS 몰락에 결정적 공헌을 했다고 해도 지나친 평가가 아니다. 그러나 2017년 IS 소탕전이 마무리돼 가면서 양측의 관계가 상당히 경직됐다. 미국은 솔레이마니가 미국의 국익을 침해하는 움직임을 보인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당시 중앙정보국(CIA) 국장이었던 폼페이오 현 국무장관은 솔레이마니에게 경고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솔레이마니는 이를 개봉조차 하지 않고 돌려보내 당시 이란 언론에서 극찬을 받기도 했다.

이때부터 사실 미국은 이란에 경고장을 보냈고, 이스라엘 측 정보에 따르면 미국인이 한 명이라도 다칠 경우 솔레이마니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주지시켰다고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이번 공격은 결국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의 미군기지 공격으로 미국인이 목숨을 잃자 공격 원점인 민병대 보복 차원을 넘어 솔레이마니에게 책임을 지운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미국, 보복 안하면 제재 풀겠다 제안”

문제는 이후 미국의 움직임이다. 아랍 쪽 중재자를 통해 이란 측에 보복하지 않으면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제안부터, 주이란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미국의 공격에 상응하는 정도로만 보복하라는 요청, 더 나아가 보복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혁명수비대의 폭로까지 허투루 들을 수 없는 말들을 종합해 보면 미국이 솔레이마니 제거 이후 이란의 보복을 상당히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역시 가지 않은 길을 더듬어 찾아가는 느낌을 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보복하면 79년 이란의 미 대사관 인질 수에 맞게 이란 내 중요한 52개소를 파괴하겠다고 공언하고 나섰다. 말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이란은 보복을 이야기하면서도 서두르지 않는다. 늘 그랬듯 차분하게 때를 기다리는 분위기다.

세 번째 이맘 후세인의 순교를 기리는 붉은 깃발이 이란 중북부 종교도시 곰의 잠카란 모스크에 올랐다. 불의에 저항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란은 미군 시설 타격보다는 이라크와 주변 지역에서 미군 철수를 원한다. 그러나 미국은 그럴 의향이 보이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에 쏠린 관심을 분산시키려고 솔레이마니를 제거했다면 세파흐보드(장군) 솔레이마니와 샤히드(순교자) 솔레이마니의 차이를 참모들에게 조언받지 못한 잘못이 크다. 장군과 순교자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솔레이마니는 이제 저항의 역사에 영원히 잊히지 않는 영웅이 됐다. 적어도 미국이 이라크에서 철수할 때까지는 말이다.

■ 박현도 교수

중앙일보

박현도 교수


캐나다 맥길대 이슬람연구소에서 이슬람학으로 석사·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이란 테헤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동연구회 전문위원,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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