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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 (화)

'공격과 응전' 명분 챙기며 전면전 파국 피한 美-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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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란에 살인적 경제제재 추가” / 이란 “미사일 공격 성공적… 이제 시작” / 美, 핵개발·우방국 대한 공격 중단 / 이란, 중동서 미군 철수 최종 목표 / 상대국 변화만 요구 땐 타협 어려워 / 몇개월 내에 다른 방식 충돌할 수도

세계일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오전 백악관에서 이란의 이라크 미군기지 미사일 공격과 관련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오른쪽),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왼쪽) 등 참모진과 군 장성들이 배석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의 보복 공격에 ‘군사적 대응’ 대신 ‘경제 제재’를 택하며 전면전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 그러나 미 의회와 사전 협의 없이 수행한 이란 군부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의 절차적 문제와 법적 정당성 등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미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자의적 군사행동을 저지하기 위한 ‘전쟁권한 결의안(War Powers Act)’을 9일(이하 현지시간) 하원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치기로 했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8일 “(트럼프 행정부의) 도발적이고 불균형적인 공격으로 이란과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인들이 위험에 빠졌다”고 결의안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이란과 다시 충돌할 경우 의회가 트럼프 대통령의 ‘전쟁 충동’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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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현지시간) 이란 최고 사령관인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군수비대 정예군 쿠드스군 사령관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정보당국의 비공개 브리핑을 듣기 위해 미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도착한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가운데). 뉴시스


앞서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그랜드 포이어에서 발표한 대국민 성명에서 “내가 미국 대통령으로 있는 한 이란 핵무기 보유는 결코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즉각적으로 살인적인 경제제재를 이란 정권에 추가로 부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이란은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유화적 메시지도 보냈다.

이란 측도 확전을 자제하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라크 내 미군기지에 보복 공격을 감행했지만 이라크를 통해 미리 공습 계획을 알리는 등 수위를 조절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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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미사일 공격 타깃이 된 이라크 아인 알 아사드 미군 공군기지 위성사진. 미들베리 국제문제연구소는 상업용 위성 운영업체 플래닛 랩스가 제공한 이 사진에서 동그라미 친 부분들을 피해 입은 곳으로 추정했다. 오른쪽 아래는 피해 구역 확대본. 플래닛 랩스 제공. AP연합뉴스


하지만 이란은 미국을 향한 적개심은 거두지 않고 있다. 아미르알리 하지자데 이란 혁명수비대 대공사령관은 이날 낸 성명에서 “(이라크 내 미군 기지 2곳에 대한) 이번 공격은 성공적이었으며 거셈 솔레이마니 장군의 피에 대한 적절한 보복은 미군을 중동에서 내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번 공격은 미국인의 인명을 살상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미군의 군사 장비를 파괴하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번 미사일 공격은 앞으로 중동에서 잇따라 실행할 (대미) 공격의 시작”이라며 “이란은 미군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 수백발을 보유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직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관공서 및 대사관 밀집지역인 ‘그린 존’이 로켓 공격을 받았다. 미국 주도 연합군은 “그린존에 로켓 2발이 떨어졌지만 사상자는 없다”고 밝혔다. 이란 군의 하급 사령관들이 상층부 정책과 어긋나게 독자적으로 대미 공격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전면전 피했지만 … 對이란 경제 제재 등 ‘충돌 재개’ 불씨

미국과 이란이 서로 확전을 피함에 따라 양국 간 충돌 사태는 일단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양국이 ‘휴전’ 조건으로 상대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 사항을 고집하고, 타협보다는 압박을 통해 상대국을 굴복시키려 하고 있어 언제든 위기가 재연될 것이라는 게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대체적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8일(이하 현지시간) “양측이 단기적으로 군사적 충돌을 피했지만, 앞으로 몇 주 또는 몇 개월 내에 또 다른 방식으로 양국 간 충돌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군사적으로 반격하지 않고, 혹독한 경제 제재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의 탄도 미사일 공격으로 미국 측 사상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고, 이란이 뒤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고 강조했다.

이란의 지도자들도 미국과의 정면충돌을 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이란이 유엔 헌장에 보장된 자위권 차원에서 비례적 대응을 했고, 종결했다(concluded)”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긴장 고조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는 이란이 더는 미국에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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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서부 안바르 사막지대에 위치한 아인 알 아사드 공군기지를 지난달 29일 헬리콥터에서 촬영한 사진. AP연합뉴스


결국 미국과 이란 모두 ‘공격과 응전’이라는 명분을 챙기면서 전면전이라는 파국을 피하기 위한 퇴로를 열어놓은 셈이다. 이란은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망 후 공언한 대로 미국에 보복했다는 것을 대내외에 각인시키고, 미국은 사상자 없이 자국민 보호와 방어에 성공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특히 재선에 도전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연말 대선을 앞뒀다는 국내 변수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대선을 앞두고 있다”며 “트럼프는 이란이 물러서고 있다고 했지만, 자신도 빠져나갈 방법을 원했다. ‘강경하게 말하되 무력 충돌은 피한다’는 그의 외교 패턴에 들어맞는다”고 전했다.

정면충돌은 피했지만 미국과 이란은 서로 상대국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 개발을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며 친이란 시아파 단체들이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등에서 미군과 미국의 우방국에 대한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란은 친이란 무장 조직이 ‘대미 항전’을 계속하는 상황에서 이라크 등에 주둔하는 미군 철수를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양국이 서로 요구 조건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며 타협이 이뤄지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NYT는 “이란이 중동에 수많은 ‘대행 그룹’을 두고 있어 이들이 미군이나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와 같은 미국의 우방국을 겨냥해 문제를 일으키고, 이란이 미국의 국내 시설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을 계속할 것으로 전문가들이 우려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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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이란에 대한 추가 경제 제재도 충돌 재개의 불씨가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5년에 체결된 이란 핵 합의를 탈퇴한 이후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한하는 등의 경제 제재를 계속해왔다.

워싱턴=정재영·국기연 특파원 sisley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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