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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보도제일주의'로 日帝 맞선 기개 높은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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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건으로 본 조선일보 100년] [4] '황성신문' 출신 남궁훈 사장

독립군 활동·민족 대변에 앞장… 총독부 항일 기사 잇단 압수에 가십난 '잔소리'로 비꼬며 대응

활자 개혁에 이어 지방판 발행, 3000부였던 발행 부수 5배로 급증

"보도! 한 신문으로서, 기자로서의 직책은 다만 '보도'다."

조선일보가 창간 1주년을 넘긴 1921년 4월 9일, 대한제국 시절 황성신문 기자와 사장을 역임한 남궁훈이 제3대 사장에 취임했다. 민족을 대변하던 황성신문이 경영난에 빠지자 집문서를 잡혀서 신문을 간행한 기개 높은 정통 언론인이던 그의 취임 일성은 '보도제일주의'였다.

남궁훈을 사장으로 초빙한 것은 조선일보를 하루 전날 인수한 송병준이었다. '친일파'로 지탄받던 그는 원로 민족 언론인으로 명망 높은 남궁훈을 간판으로 내세웠다. 그 대신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편집장 선우일을 편집국장으로 데려오고, 아들에게 경영을 맡겨 실질적으로 좌우하려고 했다.

조선일보

1921년 4월 조선일보 제3대 사장에 취임한 남궁훈. 정통 민족언론인이었던 그는 ‘보도제일주의’로 조선일보 초기에 기반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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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훈은 '얼굴마담' 역할을 거부했다. 그는 "사장을 맡아 달라"는 송병준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신문 제작과 사원 채용에 간섭하지 말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는 훗날 인터뷰에서 "범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잃지 말라고 하는 말처럼 누구 돈이든지 일만 정당하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조선일보 1933년 4월 27일 자)

66세 남궁훈은 사장실에 보료를 깔고 앉아 직접 조선일보 대장을 하나하나 챙겨 보았다. 사무실 바로 뒤의 한옥에 기거하면서 신문 제작 과정을 점검했다.

남궁훈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조선일보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윤전기 도입, 활자 개혁에 이어 지방판을 발행했고 기획 기사와 캠페인, 후원 사업을 벌였다. 항일 보도도 더욱 체계적으로 이뤄졌다. 이전의 항일 기사들이 일선 기자들의 민족의식과 울분의 발로였다면, 이 무렵부터 사장 이하 전 사원이 한마음으로 움직였다. 이런 노력은 민족의 호응을 받아 남궁훈 사장이 취임할 때 3000부였던 발행 부수는 1만5000부로 늘었다. 그는 훗날 '조선일보의 기초를 든든히 한 초대 사장'으로 기억됐다.

조선일보

1921년 4월 23일자 조선일보 3면 머리기사. ‘연해주 및 만주에 재(在)한 독립단 등의 정황’이란 제목으로 홍범도·김좌진 등이 이끄는 독립군 활동상을 상세히 담았다.


'보도제일주의'가 가장 먼저 적용된 것은 독립운동이었다. 1921년 4월 23일 자는 '연해주 및 만주에 재(在)한 독립단 등의 정황'이란 기사에 홍범도·김좌진 등의 독립군 활동상을 상세히 담았다. 1921년 8월 24일 자는 "태평양회의를 기해 상해 임시정부가 다시 활동"이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1922년 10월 6일 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새 내각 명단과 임정 국무총리 대리를 역임한 독립운동가 신규식의 부고(訃告)를 실었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불붙기 시작한 소작쟁의도 보도 대상이었다. 총독부는 "조선일보가 농민을 선동한다"고 불만이었다. 하지만 남궁훈 사장은 "이 또한 중대한 사변이니까 다만 사실로서, 엄연한 사실로서 보도에 힘써야 한다"고 일축했다.

조선일보는 이와 함께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지원하고, 관동대지진 때는 조선인 피해를 집중 보도하는 등 민족을 대변하는 데 앞장섰다. 서슬 퍼런 통치자였던 사이토 총독에게 "(당신이 표방한) 문화정치가 사기이니 책임지고 사직하라"고 직설적으로 쏘아붙였다.

총독부는 조선일보의 항일 기사들에 잇단 압수로 대응했다. 이에 대해 1923년 11월 19일 자 가십난 '잔소리'는 "지난 10월에 호외로 발행한 조선일보가 (총독부의 삭제 지시로 글자를 긁어서 없앤 칸이 있는데) 경성에서는 아무 탈 없던 것이 (함경도) 나남경찰서의 손에 압수가 된 일이 있었다"며 "경성목(京城目)과 나남목(羅南目)이 다르단 말인가. 통상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할 만한 것을 나남경찰서만 알아보았다 하면 나남경찰서장의 눈은 필시 불상목(不常目·정상이 아닌 눈)인가 보다"라고 비꼬았다.

[이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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