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양가족 5인 이상 돼야 가능한 점수… 거주 어려운 집까지 분양 열기
예비 청약자들이 지난해 서울 서대문구 DMC금호리첸시아 견본주택을 둘러보고 있다. 금호산업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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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서초동 지에스타워 주상복합 청약 당첨자 발표에서는 전용면적 25.91㎡에 청약점수 79점의 당첨자가 나와 화제가 됐다. 79점은 무주택기간 15년 이상(32점)에 부양가족 5인(30점), 청약통장 가입기간 15년 이상(17점)이어야 가능한 점수다. 두 명이 살기도 빠듯한 8평 주택에 대가족을 거느린 40대 중반 가장이 나선 셈이다. 이번 청약은 경쟁률 5.78:1을 기록하며 청약점수 30점대였던 사회초년생은 대거 탈락했다.
전용면적 33㎡ 이하 초소형주택의 청약 당첨점수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1ㆍ2인 가구에 어울리는 작은 집까지, 애초 거주가 불가능한 높은 청약가점자가 휩쓸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규제에 따른 이른바 ‘로또 분양’ 바람을 타고 높은 임대수익을 보장하는 또 다른 ‘똘똘한 한 채’를 찾는 청약 고점자가 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금융결제원 아파트투유 등에 따르면, 초소형주택 청약점수는 지난해부터 계속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7월 분양한 서울 광진구 구의자이엘라 전용면적 20.43㎡은 최고 청약점수가 64점에 달했다. 지난해 11월 분양한 서울 서대문구 DMC금호리첸시아 전용면적 16.03㎡은 108대 1 경쟁률에 최고 청약점수가 67점을 기록했다. 최근 서초동 지에스타워 주상복합의 전용면적 26.43㎡ 청약에서도 최고 점수는 71점이었다. 60~70점대는 30대 신혼부부는 꿈도 꾸기 어려운 점수다.
지난해 서울 초소형주택 청약 최고가점. 그래픽=송정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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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형주택은 ‘현금 없는’ 청약 고점자에게 투자가치가 높다. 대부분 분양가가 9억원 미만이어서 저금리의 중도금 집단대출이 가능해 자금을 마련하기 수월하다. 최고 청약점수 79점을 기록한 지에스타워 주상복합 전용면적 25.91㎡의 분양가는 4억4,000만원이었다. 서울의 초고가 아파트는 당첨이 되어도 중도금만 수억원에 달해 아예 신청을 포기하는 70점대 청약 고점자도 적지 않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타고 기대수익도 높아졌다. 국토교통부는 이르면 다음달부터 서초구 등 투기과열지구에 2년 이상 거주해야 해당지역 주택청약 1순위 자격을 부여할 예정이다. 지방 거주자가 청약으로 서울에서 내 집을 구하려면 우선 전ㆍ월세 거주가 불가피하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팀장은 “대출규제를 피하면서 임대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어 초소형주택 수요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엔 월세도 상승세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내 전용면적 33㎡ 이하 원룸의 평균 월세 가격은 보증금 1,000만원 기준 53만원으로 전월 대비 4% 상승했다. 지난해 7월 이후 5개월 만에 오른 것이다.
이런 현상 속에 초소형주택의 주인이 돼야 할 청년층은 점점 밀려나고 있다. 사회초년생 다수가 가진 청약점수 20~30점대로는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는 4월 분양가상한제 유예기간이 종료되면 초소형주택의 청약점수는 더 높아질 전망이다. 주변 시세보다 낮은 ‘로또 청약’ 아파트가 대거 현실화되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은 주택의 가점도 함께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지금도 당첨 커트라인이 높아질 수 있다는 불안심리로 고점자가 청약을 서두르는 것”이라며 “재건축 규제 등으로 청약 매물이 더 줄어들 거란 생각도 깔려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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