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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투자迷兒' 기업들, 은행 고액예금에만 300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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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 이상 정기예금 2년새 80兆 증가…대내외 경제불안 여유자금 쌓아둬

자금난 中企는 1년새 두배 늘어…한은 금리 내려도 시중 돈 안 돌아

아시아경제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김민영 기자] 기업들이 은행에 쌓아놓는 돈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중장기 자금 조달을 위해 신규 투자를 집행하는 것이 아닌 은행에 돈을 쌓아놓고 쓸 곳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신용이 낮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심으로 차입 여건이 악화되는 자금 조달 양극화도 두드러지고 있다.


13일 한국은행 및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ㆍKB국민ㆍKEB하나ㆍ우리은행 등 시중은행 4곳의 10억원 이상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293조5032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말 214조2136억원 대비 2년 새 80조원이나 불어났다. 10억원 이상 정기예금 계좌 수도 2017년말 3만561개, 2018년말 3만2054개에 이어 지난해 말 3만4426개로 증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기예금에 10억원 이상 넣은 거액 예금주는 개인(개인사업자 포함)보다는 대부분 법인"이라며 "경기가 좋으면 기업들이 미래에 대비해 선제적으로 투자를 늘리지만 지금은 대내외 경제 상황이 불안해 여유자금을 내부에 유보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현재 경제 여건 악화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이 은행에 고이고 있는 것이라는 얘기다.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개인들도 마찬가지.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개인 자금도 경기 불황과 기업 이익 감소 전망에 증시로 가지 못하고 부동산 규제까지 겹쳐 전반적으로 자금 운용이 보수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은행에 10억원 이상 고액 예금이 쌓여가는 동안 다른 한 편에서는 자금난을 겪는 중소기업이 늘고 있다.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2019년 중소기업금융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에서 신규대출을 받은 중소기업 중 전반적 차입 여건이 나빠졌다고 응답한 비율은 2017년 17.6%에서 2018년 31.9%로 1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주요 원인으로는 금리 상승을 지적한 응답이 35.2%에서 42.8%로, 신용대출 차입 악화를 꼽은 응답이 19.3%에서 32.8%로 늘었다.


결국 한은이 금리를 내려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은에 따르면 정부가 돈을 풀면 이 돈이 민간에서 얼마나 유통되는지를 나타내는 통화승수는 지난해 9월말 기준 15.7배로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통화승수가 하락하면 정부가 돈을 풀어도 금융기관 안에서 돌지 않아 통화량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줄어든다. 화폐 1단위가 경제 구성원의 상품ㆍ서비스 생산 등에 몇 번이나 쓰였는지 보여주는 화폐유통속도 역시 지난해 1분기 0.68로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이후 2분기에도 0.69로 낮은 수준을 이어갔다.


경기 둔화 속에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도입 등으로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자보상배율 1 미만인 기업 중 중소기업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49.7%로 2014년(38.2%)과 비교해 5년 만에 10%포인트 넘게 증가했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시중 자금이 생산ㆍ혁신적인 분야 즉 기업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게 올해 은행업 감독 방향"이라며 "자금난을 호소하는 기업이 많지만 불안한 경기 전망 아래 생산적이면서도 부실 우려가 크지 않은 곳에 자금 공급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아 고민이 크다"고 우려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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