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20 (월)

유동성 함정 빠졌나…돈 쌓는 대기업 vs 자금난 中企 '조달 양극화'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불황·증시 부진·부동산 규제 등에 대기업, 투자처 없이 곳간에 현금 쌓기

중기, 은행 대출 못받아 자금난…10개월만에 비은행대출 21% 증가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김민영 기자] 기업들이 은행에 맡기는 돈이 쌓이고 있는 것은 내부 유보금을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은 최근의 경기 상황과 직결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내외 경기가 불투명해지자 기업들이 설비투자를 줄이고 부동산 등을 팔아 현금성 자산을 쌓고 있는 결과다. 통화당국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속에서 중소기업 중심으로 자금난도 심화되고 있다. 경기 둔화 전망에 기업의 투자 심리가 잔뜩 움츠러 들다보니 중소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한 것. 개인 자금도 증시, 부동산 등 어느 한 곳으로도 흘러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유동성 함정 속에 시중에 떠도는 자금이 언제든 규제 우회로를 찾아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는 우려도 나온다.


◆불황, 증시 부진, 부동산 규제에 갈 곳 없는 돈=통화당국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의 가장 큰 원인은 경기 부진이다. 미·중 무역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제조업 경기 및 투자 부진이 지속되고 국내 경기 침체도 가속화되고 있다. 일본과 북핵 리스크, 이란 사태 등 갈수록 대외 여건 불확실성이 커지는 점도 기업들이 움츠러든 이유로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설비투자 증가율은 2018년 2분기 -4.8%로 마이너스로 돌아선 이후 매 분기마다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1분기 -19.6%, 2분기 -8.7%, 3분기 -3.7%에 이어 4분기에도 마이너스가 예상된다. 올해 경제 상황은 녹록지 않아 시중자금이 투자, 소비로 이어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로, 기획재정부는 2.4%로 예측했지만 민간에서는 1.8%까지 성장률 전망치를 낮게 보는 기관도 있다.


중소기업이나 개인 역시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로 증시로 자금이 흘러가기도 어렵다. 지난해 은행이 판매해 투자자에게 대규모 손실을 입힌 주요 해외 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 사태로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수요도 크게 줄었다. 부동산은 정부 규제에 막히면서 관망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 법인들도 여유자금을 DLS 등 금융투자상품에 수십억원씩 넣어뒀다가 손실을 봤다"며 "DLS 여파로 개인 뿐 아니라 법인들도 투자상품보다는 정기예금이나 대기성 자금에 여유자금을 묶어두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돈 쓸 곳 없는 대기업과 자금난에 허덕이는 비우량 중소기업=대기업들은 은행에 자금을 쌓아두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비우량 기업은 은행 대출조차 받기 힘겨운 실정이다. 한은이 집계한 비은행금융기관의 기업대출은 2018년 12월 165조6571억원에서 지난해 10월 200조7385억원으로 21.1% 늘어났다. 같은 기간 예금은행의 기업대출은 861조361억원에서 907조664억원으로 5.3% 늘어나는 데 그쳤다. 비은행금융기관은 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등으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중소기업들이 주로 이용한다. 은행보다 금리가 훨씬 높은 2금융권의 고리 대출이 늘어났다는 것은 중소기업의 자금난과 차입 여건이 그만큼 악화됐음을 뜻한다. 올해 경기 전망이 여전히 어둡고 은행이 건전성 관리에 고삐를 죄면서 중소기업의 자금 사정이 점점 악화, 한계기업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 간 자금 조달 양극화 속에 일각에서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일부 기업과 개인이 움켜쥔 돈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부동산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온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중 자금이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 등에 대한 투자로 가야 하는데 개인, 법인 할 것 없이 전부 땅과 건물을 사모으는 등 부동산으로 쏠리고 있다"며 "기업이나 가계 모두 이미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거나 부동산을 위한 대기성 자금을 틀어쥐고 있다"고 했다. 김완중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여유자금이 부동산 시장으로 재유입될 가능성이 있다"며 "12ㆍ16 대책 같은 주택시장 초강력 규제에도 불구하고 경기 활력 제고를 위한 건설투자 확대 등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집행 확대는 부동산 시장 자금 유입 확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