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02 (일)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됩니다 [일상의 말들] (3)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세계일보

SBS ‘스토브리그’ 캡처


일요일 내내 아들과 남편 때문에 적지 않은 속앓이를 했다. 한 사안을 둘러싸고 아들과 나는 이견을 보였고, 중간에 남편이 나서 대안을 제시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이 아들의 편을 들기 위한 작은 계략(?)임을 알아차리게 된 탓이다. 참고로 남편에게 그럴 의도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다.

점점 커가는 아이는, 점점 아빠와 여러 면에서 비슷해져 가고 있었다. 그것이 맞고, 순리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정 부분에서 엄마가 제안하는 이견들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서로 이견의 골이 깊어지고, 급기야 ‘반칙’을 불사하는 그들 앞에 나의 인내심은 한계와 임계점을 넘기고 말았다. 화가 났다. 그리고 몹시 ‘기분이 나빴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침묵’이었고, 그들과의 ‘심리적 격리’였다. 근처 카페라도 가고 싶었지만 이 편한 집을 애써 나서는 것조차 귀찮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화가 나니 평소 좋아하는 것들도 왠지 싫어졌고, 꼼짝도 하기 싫었다.

조용히 내 방에 들어가 밀린 원고를 쓰고 마음을 가다듬어 보려고 했지만 마음이 불편하니 좋아하는 글쓰기마저 내 편이 아니었다. 부산한 마음을 잡으려고 여기저기 평소 관심도 없던 쇼핑 사이트를 뒤적이고, 이 책 저 책을 꺼내 읽고 또 읽었다.

그러다 문제의 그 시간이 도래했다. 대한민국 엄마들이 가장 분주한 바로 ‘밥 때’가 됐다. 학원에 체류하는 시간이 부쩍 길어진 아들과 평일에는 얼굴조차 보기 힘든 남편, 나는 나대로 집안일에다 강의와 원고작업까지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 할 일이 많은 우리 가족은 주말에는 가능하면 함께 밥을 먹으면서 얼굴이라도 제대로 보고 평일에 못다한 이야기도 하고, 여행이나 가족행사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주말 밥 때는 그래서 우리 가족에게는 조금은 특별한 시간이다.

그런데 아무리 귀를 주방과 거실로 치켜세워도 밥 먹을 ‘생각’이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때부터 나의 고민이 시작됐다. ’그래도 밥은 주고 화를 내자’, ‘아니다. 무슨 밥. 전화 한통이면 뭐든 배달되는 대한민국에서 밥 때가 뭘 그리 중요하랴’ 햄릿의 그것마냥 이 논제를 두고 어느 편의 손을 들어야 할지 수십번 고민하다 결국 밥상을 차리고 말았다.

그래 밥은 먹여놓고 화를 내자가 내 결론이었다.

기분이 나빴지만 나의 ‘태도’ 즉, 주말에 한두끼는 가족끼리 함께 먹자는 태도에 내 나쁜 기분이 지고 말았다.

’기분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맞다.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야만 한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면 평소와는 다른 태도를 취하게도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인간인지라 그것 또한 쉽지 않다. 일관된 태도가 주는 신뢰와 자기 신념의 무게를 안다. 그래서 오늘도 방학맞이 삼시세끼를 차리기도 하고, 주문하기도 하며 태도의 중요성을 곱씹어본다. 그리고 이 일상의 말을 한번 더 읽는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됩니다.”

SBS 금·토드라마 ’스토브리그’ 중에서

*스토브리그란 프로야구의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하기 전까지의 기간. 보통 계약 갱신이나 트레이드가 이루어지는 기간으로 스토브를 둘러싸고 팬들이 평판을 한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출처=표준국어대사전

세계일보

이윤영 작가, 콘텐츠 디렉터 blog.naver.com/rosa0509, bruch.co.kr/@rosa0509

*’한량작가’가 들려주는 일상의 말들은 일상에서 보고 듣고 느낀 말들을 전합니다. 이 작가는 방송과 영화, 책 등 다양한 대중 콘텐츠를 읽고 씁니다.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