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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8 (수)

휴대폰 닮은 돌도끼? 1만년 이어온 일상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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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 디자인 평론가와 함께 본 국립중앙박물관의 ‘핀란드 디자인 10000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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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통나무 조각, 살로이넨(Saloinen) ⓒ핀란드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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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툴, 나뭇가지·나무, 사비타이팔레 ⓒ 핀란드국립박물관 민족학자료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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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의자, 에로 아르니오(Eero Aarnio), 사출금형 플라스틱 의자와 받침·크롬 도금 강철관 다리, 아스코(Asko) 사, 1966 ⓒ 핀란드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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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스(Trice), 접이식 의자, 섬유유리와 캔버스 천, 한누 케회넨(Hannu Kahonen), 1985 ⓒ 핀란드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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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인간의 특성·본질을 물건이나 연장을 만드는 ‘도구의 인간(호모 파베르)’으로 봤다. 호모 사피엔스보다 인간의 본성은 스스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존재, 그 도구로 환경을 변화시키며 자신도 거듭나는 존재라는 의미다. 고대 인류는 주변의 나무나 동물뼈·돌멩이를 변형시켜 도구를 만들었고, 지금도 유물로 전해진다. 수십만년에 걸쳐 인류는 주변 물질 탐구와 창의적 발상, 기술 개발, 미적 감성을 응용해 수많은 도구를 만들며 진화했다. ‘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도구는 인간을 만드는’ 끊임없는 상호작용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금의 물질문화를 이루고 있다.

디자인 강소국 핀란드 진면목

석기시대 돌도끼 등 유물부터

현대 산업디자인까지 한눈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마련된 특별전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핀란드 디자인 10000년’은 인간과 물질의 특별한 상호작용, 물질의 변형으로 상징되는 인간과 물질문화의 관계를 살펴보는 전시다. 디자인전이란 이름이 붙었지만 최근 인기리에 자주 열리는 북유럽 디자인전, 흔히 봐온 디자인전과는 다르다. 명품이나 유명 디자이너 작품의 나열, 디자인 스타일에 초점을 둔 게 아니라 그 디자인을 낳은 구조와 뿌리, 1만년에 이르는 역사 속에서 디자인 요소의 연속성을 확인하는 전시회다. 석기시대 돌도끼와 21세기 노키아 휴대폰을 함께 전시하며 그 둘의 닮은 모양이 아니라 시대변화에 따른 생존도구로써의 구조와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 긴 세월 이어진 디자인을 통해 미래 디자인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기존 디자인전과 차별화되며 디자인·미술계를 중심으로 이번 전시가 화제를 모으는 이유다. 핀란드 디자인은 스웨덴·덴마크와 함께 단순간결한 아름다움, 뛰어난 기능성, 친자연성 등 북유럽 디자인 특성을 지녔다. 모던 디자인이면서도 ‘차가운’ ‘직선의’ 바우하우스 디자인과 달리 ‘따뜻한’ ‘곡선의’ 디자인이란 평가다. 이 특별전은 ‘디자인 강소국’ 핀란드를 통해 한국 디자인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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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인간, 물질 그리고 변형’ 전시장에서의 디자인 평론가 최범 한국디자인사연구소장.


디자인 평론가인 최범 한국디자인사연구소장(63)과 함께 최근 특별전을 찾았다.

전문가가 보는 전시회의 특징과 의미 등을 듣기 위해서다. 전시장에는 핀란드의 갖가지 고고학·민속 유물과 현대 산업디자인·사진·영상 등 140여건, 한국의 고고·민속 유물 20여건 등 160여건이 선보이고 있다. 물론 대중적으로 유명한 디자인·디자이너들도 있다. 세계적으로 핀란드 모던 디자인을 대표하는 건축가·디자이너인 알바 알토와 아이노 알토 부부로, 이들은 많은 디자인을 협업하고 가구·조명으로 유명한 브랜드 아르텍을 설립했다. 직물과 가방·액세서리 브랜드로 이름난 마리메코를 세운 디자이너 안티 누르메스니에미와 부오코 누르메스니에미 부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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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카포이카(Jokapoika), 셔츠, 면에 프린팅, 마리메코사를 위해 부코 에스콜린누르메스니에미가 디자인, 1956 ⓒ 마리메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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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유리 제품으로 유명한 브랜드 이탈라, 의자와 그릇 등 생활용품, 삼성전자와 애플에 앞서 세계 휴대전화 시장 선두를 지켰던 노키아의 제품, 가위 손잡이를 쇠에서 플라스틱으로 바꿔 현대 가위의 새 원형을 선보인 피스키스의 가위 등도 있다. 하지만 이들 디자인도 기존 디자인전들과는 달리 그저 인간과 물질문화의 관계 속 한 부분으로만 전시될 뿐이다. 이번 특별전은 지난해 핀란드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디자인의 만년’전의 세계 첫 순회전으로, 중앙박물관 학예사들과 핀란드 전시기획자인 건축가 플로렌시아 콜롬보, 산업디자이너 빌레 코코넨이 전시 재구성 등 협업 큐레이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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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 구부러진 자작나무, 요로이넨(Joroinen) ⓒ핀란드국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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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1718, 겹쳐놓을 수 있는 음료 잔, 누타예르비 유리공장을 위해 사라 호페아가 디자인, 1954 ⓒ 헬싱키디자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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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베리(Kalveri), 음료 잔, 유리·사출성형 플라스틱, 이탈라사를 위해 요르마 벤놀라가 디자인, 1980 ⓒ 핀란드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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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 평론가는 “많은 이들이 중앙박물관에서 디자인전을, 그것도 고고·민속유물과 산업디자인을 함께 선보이는 것을 신기해한다”며 “사실 돌도끼든 휴대폰이든 모두 디자인 시각에서 볼 수 있는데 그동안 우리는 주목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번 전시는 기존 전시와 달리 새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연대기적으로 과거에서 현재를 보는 게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를, 특히 현대디자인의 눈으로 인간과 물질문화의 폭넓은 관계, 디자인의 뿌리를 살펴봅니다. 현재 삶을 중심으로 기원을 거슬러오른다는 점에서 니체의 계보학적 접근이죠.”

최 평론가는 “디자인전은 명사·형용사·동사적 접근 방식이 있는데, 이 전시는 한국에서 보기 드문 동사적 전시”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디자인전은 형용사처럼 디자인을 수식하는 부가적·장식적인 형태·외형에 집중하죠. 명품 컵들을 늘어놓은 뒤 컵의 모양·색감·손잡이가 어떻네, 화려하네·심플하네 합니다. 그 형용하는 장식적 차이를 마치 디자인의 차별화로 봅니다. 하지만 디자인의 본질은 장식을 배제할 때 제대로 보이죠. 이번 전시는 모양·장식적 요소를 넘어 구조와 기능이 어떻다를 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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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날 도끼, 돌, 루오베시(Ruovesi), 석기시대 ⓒ핀란드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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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키아 커뮤니케이터 9000i, 1996 ⓒ헬싱키디자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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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수천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핀란드 문화와 디자인의 연속성도 주목했으면 한다. “석기시대 돌도끼에서 중세·현대의 도끼와 노키아 휴대폰, 통나무 의자에서 최첨단 에어백 의자 등에서 우리는 연대기적 변화를 봅니다. 연대기적 변화에 그치지 말고 수천년 전의 디자인적 요소가 현대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면 좋겠습니다. 한국 디자인과 큰 차별점이니까요.”

최 평론가는 “안타깝게도 한국 디자인은 반만년의 역사에도 불구, 디자인의 구조적 연속성이 단절됐는데, 여러 이유가 있지만 올해 50주년을 맞은 새마을운동도 단절의 장본인”이라며 “한국에서 디자인은 상품 수출을 위한 포장·장식으로 시작돼 그렇게 이해됐고, 아직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사실 서구에선 근현대기 미술공예운동으로 디자인이 모두의 일상생활 속으로 들어왔지만 한국은 지배계층의 장식으로 머문 점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핀란드와 달리 역사 속 디자인의 연속성이 우리는 단절됐음을 인식했으면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우리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는 찬란한 옛 유물이 지닌 디자인적 요소를 찾아내 구조적 연속성을 이루기보다는 그저 유물의 형태를 베끼고선 현대 디자인이라고 얘기하는데 그래선 발전이 없습니다.”

인간과 물질문화 폭넓은 관계

디자인의 뿌리 살필 수 있어

수천년 이어온 연속성 인상적


최 평론가는 “디자인은 결국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반영된 삶의 총체적 양식”이라며 “핀란드 디자인 이해는 핀란드 자연환경과 사람들의 가치관 이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박현택 중앙박물관 디자인전문경력관도 “일본 디자인이 정교한 금속제 칼이라면 핀란드 디자인은 무디지만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담긴 목검으로 최근 핀란드 디자인에 관심이 높다”며 “핀란드 디자인을 진정 벤치마킹하고 싶다면 그들의 제품·매체가 아니라 생활태도와 가치관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번 전시장은 기존 벽장식 전시가 아니라 모듈식 전시로 색다른 흥미를 돋운다. 각 부스에 있는 설명서도 전시 이해에 유용하다. 특히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 작품이나 황홀한 오로라를 감상하는 공간, 핀란드의 상징인 사우나실 등 공감각적 요소를 적극 도입한 체험공간도 관람객의 호응을 얻는다는 평가다. 백승미 중앙박물관 학예사는 “핀란드 디자인의 본질과 그것을 낳은 문화를 보다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는데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최범 평론가는 전시장을 나서며 “전시 취지와 함께 나를 성찰할 수 있으면 의미 있고 좋은 전시”라고 말했다. “핀란드인은 어떻게 살고 있나, 이런 가치를 귀하게 여겨 이런 디자인이 나오는구나와 같이 타자 이해가 중요하죠. 타자 이해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나, 우리의 디자인은 어떠한가 자문하면 좋겠습니다.”

이번 전시는 중앙박물관(4월5일까지)에 이어 국립 김해·청주 박물관으로 순회한다. 관람료는 성인 3000원.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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