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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오세철의 내 인생의 책]②알제리에서의 편지 - 카를 마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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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 죽음과 혁명

경향신문

병마에 고통받던 마르크스는 1883년 3월14일 영원한 혁명 동무 엥겔스 곁에서 눈을 감았다. 65세 때다. 서한집은 사망 한 해 전인 1882년 봄과 여름, 요양하러 간 알제리와 리비에라에서 딸 예니와 사위 롱게 등 가족과 엥겔스에게 쓴 편지를 모은 것이다. 질베르 바디아는 서한집의 해설에서 마르크스의 심경을 헤아리며 “끝마쳐야 할 많은 일들에 대한 감정으로 그냥 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탕탈(Tantal)의 욕망에 의해 고통당한다는 것을 우리의 마르크스는 절대 수용하지 않았으리라”고 썼다.

편지 대부분의 수신자는 엥겔스였다. 두 혁명가의 인간적 관계가 편지에서 드러난다. 햇볕 때문에 예언자 같은 수염과 모발을 제거했다(1882년 4월28일)는 일상·일신의 변화를 알렸다. 자신을 괴롭히는 병, 죽음 같은 슬픈 상념에 관한 암시를 딸들에게는 하지 않았다. 그 고통과 상념은 오직 둘도 없는 동무 엥겔스에게만 숨기지 않고 토로했다.

엥겔스에게 쓴 마지막 편지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영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매사에 무관심해진다네”(1882년 5월8일)라고 적었다. 마르크스는 항상 편지를 끝내면서 ‘자네의 늙은 무어인’이라고 적었다. 엥겔스는 12년을 더 살며 마르크스가 남기고 간 저술들을 완성하는 일에 몸과 마음을 바쳤다.

번영하는 자본주의의 끝자락에서 파리코뮌을 보았던 마르크스는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의 시작으로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혁명가나 노동계급이나 자신들의 생물학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 마르크스의 마지막 서한집은 병들어 고통받는 위대한 혁명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다. 혁명의 객관적·필연적인 과제를 다시 곱씹어보는 계기이기도 하다.

오세철 | 코뮤니스트 활동가·연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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