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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기고]신약은 왜 비싸야 하는지부터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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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비급여 신약 보장성 강화를 주장한 한림대 미래융합스쿨 권경애 교수의 ‘비급여 신약 보장성 강화가 필요하다’ 기고문이 경향신문(2019년 12월24일자)에 실렸다. 권 교수는 정부가 의약품 사후 재평가 등 규제는 강화하면서 혁신 신약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은 부진한 것을 비판하고 글로벌 제약사들이 국내 출시를 꺼리는 상황을 걱정한다. 이 기고문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오도할 우려가 있어 반론을 제기한다.

우선 의약품의 안전성 검증은 여느 규제들보다 더 엄격히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신약이라 해서 면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의 관절염 유전자 치료제 사례에서 보듯 신약의 검증이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신성장 사업과 혼동될 때 그 결과는 참혹하기까지 하다. 신약의 가격 문제 역시 그렇게 쉽게 다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고가 항암제의 신호탄을 올렸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가격은 월 132만원 선인데 이후 개발되는 항암제의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해서 1990년대 공인된 림프종 치료제 리특시맙의 가격은 월 200만원, 2011년 공인된 간암 치료제 타세바의 가격은 월 230만원, 2014년 공인된 다발성 골수종 치료제 벨케이드의 가격은 월 400만원이 넘는다. 최고가 약제는 2015년에 공인된 골수섬유화증 치료제 자카비정으로 월 600만원이지만 이 기록은 바로 깨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등재를 앞둔 표적 치료제가 줄줄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1년 약제비가 1억원에 육박하는 폐암 치료제 키트루다의 급여 적용에는 7만여 명의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간 상태이다. 이런 현실을 비웃듯 티-림프구 표적 항원 치료제 킴리아가 곧 시판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약제는 고가 의료의 선봉인 미국에서도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1회 치료비가 37만달러에서 47만달러다. 5억원이 넘는다.

의료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는 엄연한 현실하에, 그리고 그 재원은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로 충당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 국민 평균 월급여를 훌쩍 뛰어넘는 약가를 지원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일찌감치 약제의 경제적 효용성까지 분석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효과뿐 아니라 효과 대비 가격 적정성도 검증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런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신약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도 부족하고 대부분의 언론 홍보물들은 “이 ○○신약은 기존 약제에 듣지 않는 환자들에서 우수한 치료 효과를 보인다” “○○신약을 개발한 □□회사는 이 약제 매출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등과 같이 약에 대해 아무런 실질적 정보를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절박한 상황에 몰린 암 환자들에게는 잘못된 믿음을 심어주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우도 많다.

신약이 왜 그렇게 비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서구에서도 논란이 많다. 약제 개발의 초기 비용은 대부분 국가에서 지원하는 연구비로 충당되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제약업체의 정당한 몫인지에 대해 비판이 끊이지 않음에도 제약사들의 고삐 풀린 약가 책정에는 역부족이다.

우리나라 의료비 재정 중 약제비는 약 28조원으로 전체 의료비 재정의 20% 이상을 약값으로 지출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선진국의 약제 비용은 10% 선이고 약가가 높은 것이 사회문제가 되는 미국조차 약제비 비율은 12%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폭발적인 증가 추세로 2010년에서 2018년 사이 우리나라의 약제비가 무려 38%나 증가했다는 점이다. 이 기간 고가 신약들의 급여가 인정되면서 급격히 청구 액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의료의 근간이 되는 진찰료 비중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 2014년 22.5%에서 2017년 20.9%로 줄었다. 우리나라 의료현장의 문제점 중 하나는 높은 1인당 약제비다. 세심한 진료는 멀고, 약 처방을 클릭하는 것은 가깝게 하는 정책상의 문제가 반영된 것이다. 다수의 의사들이 환자들의 증상을 충분히 듣고 약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설명할 만한 적절한 진료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천기 |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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