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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사설] 도박판 돼 가는 아파트 청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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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가구를 분양하는 경기도 안양의 한 신축 아파트 청약에 무려 3만3000여명이 몰려 4191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청약 자격 제한이 없는 무순위 청약이란 변수도 작용했지만, 분양가 상한제 시행 이후 새 아파트 당첨은 '로또 대박'이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데 따른 기현상이다. 서울 강남권의 입주 1년 이내 새 아파트는 매매가가 분양가의 두 배에 달한다. 정부가 분양가를 누른 덕에 확실한 차익이 보장되니 유망 지역 분양 아파트는 청약 경쟁률이 400~500대1에 이르는 경우가 흔하다. 대출 억제 탓에 현금 부자가 아니면 아파트 청약은 엄두도 내기 힘들다.

정부가 '12·16 대책'으로 9억원 초과 아파트의 매수를 대폭 규제하자 풍선 효과도 본격화됐다. 경기도 용인·평촌·구리·광명·안양 등지에선 9억원 이하 아파트 매매가가 최근 한 달 새 1억원 이상 치솟았다. 서울 학군 좋은 지역에선 전세 매물이 품귀를 겪고 전세금이 폭등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단지에선 전용면적 84㎡의 전세금이 작년 초 6억원 수준에서 1년 새 11억원대로 올라 세입자들이 공포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집 있는 사람들도 행복하지 않다. 집 하나뿐인데도 보유세 부담이 몇십%씩 급등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부동산 시장이 상당히 안정되고 있다"고 한다. 보고 싶은 측면만 보고 하는 얘기다. 집값 안정을 위한 근본 대책으로 지적되는 아파트 공급 확대와 거래세 인하에 대해선 부정적 입장을 보인다. 당장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8번의 대책을 쏟아내고도 지금의 상황을 초래한 것은 부동산을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로 다루기 때문이다. 투기 수요는 없애야 하지만 감정적인 보복 정책은 죄 없는 실수요자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획기적인 공급 확대 정책 없이는 어떤 것도 본질적 대책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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