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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 하늘도 예상 못한 과한 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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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시간과 하늘을 만들고자 한 임금 ‘세종(한석규)’과 관노 출신 과학자 ‘장영실(최민식)’.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역사에서 깊이 다루지 않았던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와 함께, 천문 의기에서 한글 발명으로 이어지는 영화적 픽션을 전면에 내세운다. 임금의 가마 ‘안여’가 부서지는 사건으로 장영실을 국문한 세종과 이후 모든 기록에서 사라져 버린 장영실 사이의 숨겨진 이야기를 상상력으로 풀어내고 있다.

시티라이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세종, 노비로 태어나 종3품 대호군이 된 천재 과학자 장영실. 타고난 재주가 눈에 띄어 태종 집권기에 조정에 발탁된 장영실에게 세종은 즉위 후 정5품이라는 높은 관직을 하사한다. 그리고 둘은 당시 조선 경제에서 가장 중요했던 농업과 직결되는, 조선만의 날씨와 계절 정보를 알려주는 천문 의기들을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그간 비밀에 부쳐 왔던 이 천문 사업이 명나라에 발각되고, 장영실은 사대의 예를 어겼다는 죄목 아래 명나라로 압송될 상황에 놓인다. 그러던 중 임금이 타는 가마 ‘안여(安與)’가 부서지는 사건으로 세종은 장영실을 문책하고, 그 이후 장영실은 자취를 감춘다. 영화는 이러한 실제 역사에서 출발해 장영실의 생사는 물론, 발명품의 제작 자료에 대한 기록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의문을 남긴 채 사라진 이유를 좇는다.

1997년 ‘넘버 3’, 1999년 ‘쉬리’ 이후 재회한 한석규, 최민식 두 걸출한 배우의 역사적인 만남이 우선 큰 이슈가 됐다. 둘은 대한민국 최고라는 수식어에 맞게 대사 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지난 2011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고뇌하고 예민한 군주 ‘이도 세종’을 연기했던 한석규가 또 다시 세종 임금을 연기한다. 조선 시대 최고로 어진 임금이라는 타이틀 대신, 때론 외롭고 때론 유약하지만 막판엔 선왕에게 물려받은 묵직한 카리스마를 선보이는 임금을 보여 준다. 영화 ‘대호’ 이후 4년 만에 다시 사극 작품으로 스크린 컴백을 알린 최민식은 조선의 역사에서 사라진 천재 과학자 ‘장영실’로 돌아왔다. 알려진 것이 많은 세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진 것이 적은 장영실이라는 인물이 최민식이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때론 장난기 넘치지만 과학과 세종을 따르는 충심에 있어서는 따를 자가 없는 캐릭터로 재탄생했다. 그러나 훌륭한 연기에 비해 세종-장영실이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단계를 넘어서 과한 브로맨스를 보여 주는 장면이 지나치게 많다는 평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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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급 배우들의 다양한 아우라는 칭찬하고 싶다. 윤제문-김원해-임원희 3인조가 불러일으키는 유머러스한 순간들은 극의 텐션을 낮춰준다. 세종에게 천문 사업을 중단하고 장영실을 내치라고 호소하는 정남손(김태우)에 비해 데뷔 58년 차 신구 배우가 맡은 영의정은 자신이 생각하는 원리 원칙(-사대의 예)으로 세종에게 직언하는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누구보다도 시선을 빼앗는 신스틸러는 바로 허준호. 클라이맥스에 잠시 등장하지만 시선을 고정시키는 문무대신 조말생 역을 맡은 그는 짧은 순간에 대사 몇 마디와 강렬한 눈빛 연기로 압도적인 시퀀스를 선사한다. 장영실의 곁을 지키는 제자 사임 역은 영화 ‘죄 많은 소녀’와 최신작 ‘멜로가 체질’에서 주목받은 신예 전여빈이 맡았다. 그러나 사임과 장영실과의 만남이나 과거가 다루어지지 않은 채 등장해 몰입이 어렵다. 교과서에서만 봐 왔던 물시계 자격루, 별자리를 보고 시간을 관측하는 천문 관측 기구인 간의대와 간의, 안여 등과 그 제작 원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이 영화가 지닌 큰 장점 중 하나다. 러닝 타임 132분.

[글 최재민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13호 (20.01.2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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