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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영화 백두산'같은 재앙 터지면…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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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화산 폭발을 소재로 한 영화 ‘백두산’




시멘트 더미가 이곳저곳에 쌓여 강철로 된 문 앞을 막고 있다. 방사선까지 누출돼 사람은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나자 곧바로 탐사 로봇 '티램'이 투입돼 계단을 오르내리며 내부 상황을 살핀다. 또 다른 탐사 로봇 '램'은 시속 60㎞로 원전 주변 상황을 점검한다. 원전 안전팀은 곧바로 '암스트롱(ARMstrong)'을 투입한다. 두 팔을 가진 사람 모양 상체에 아래는 무한궤도를 단 재난구조 로봇이다. 암스트롱은 100㎏이 넘는 시멘트 더미와 드럼통을 이리저리 치워가며 전진해 두 팔로 강철 문을 열어 사고 현장에 들어간다. 이어 누출되는 가스 밸브를 돌려 잠갔다. 재난·구조 로봇 암스트롱 덕에 막대한 인명·재산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로봇이 위험한 재난 현장에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고 있다. 재난구조 로봇은 차량 운전, 문 열고 들어가기, 밸브 여닫기, 장애물 돌파, 위험물 이송, 인명 구조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임무를 무사히 완수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화재 현장에서도 소방 로봇이 물을 뿌려 건물 전체가 붕괴하는 사고를 막았다. 국내에서도 사람을 구조하고 재산 피해를 막기 위한 재난·구조 로봇 연구가 한창이다.

◇드럼통 드는 힘·볼트 집는 섬세함

지난 3일 오전 찾은 대전의 한국원자력연구원 로봇실험동에는 암스트롱 테스트가 한창이었다. 박종원 박사가 사람 크기의 조종용 로봇팔을 움직이자 암스트롱의 두 팔이 똑같이 움직였다. 암스트롱은 팔을 뻗어 밸브를 돌리거나 드럼통을 들었다. 박종원 박사는 "암스트롱은 원전 재난이나 화학 공장 폭발 사고 현장에 투입돼 사람이 움직이는 것처럼 작동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암스트롱 팔 하나는 100㎏까지 들 수 있다. 원전 내부 밸브를 돌리거나 폐수를 담은 드럼통을 움직이려면 그만한 힘이 필요하다. 연구진은 최종적으로 닫힌 문을 부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섬세함도 갖췄다. 빨대나 작은 볼트, 축구공처럼 탄력 있는 물체도 집을 수 있게 설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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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양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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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사고에 대처하려면 특히 방사선을 견뎌야 한다. 연구진은 부품 중 약한 부분은 납으로 차폐하는 방식으로 방사선을 극복하고 있다. 납 1.2㎝를 덧붙이면 방사선을 두 배 더 견딜 수 있다. 암스트롱은 현재 시간당 500시버트(방사선 단위)를 견딜 수 있고, 1000시버트까지 견디는 것이 목표다. 일본 후쿠시마 사고 당시 원전 내부가 650시버트 정도였다. 연구진은 1500시버트까지 견딜 수 있는 카메라도 개발했다.

한양대·생산기술연구원·수산중공업 등은 건물 붕괴 같은 사고 현장에서 초동 대응을 위해 개발 중인 로봇(재난대응 특수목적기계)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2015년부터 정부 연구비 200억원 이상 들여 만든 이 로봇은 5월 완성을 앞두고 있다. 4.5t 무게 굴착기에 로봇팔 두 개가 달린 형태다. 두 팔은 각각 7가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한쪽 팔로 잔해를 들고 다른 팔로 그 아래 물체를 꺼낼 수 있다. 외부에서 사람이 조종기를 잡고 팔을 움직이면 그 동작대로 로봇팔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로봇이 조종자의 아바타(분신)인 셈이다.

KT는 2018년 서울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 사고를 계기로 로봇을 개발했다. 통신구에서 불이 나면 유독가스가 발생해 사람이 진입하기 어렵게 된다. 통신구에 설치된 레일형·지상형 5G 로봇 '사파이어(死Fire)'는 KT가 개발한 '화재 감지 기술(CTTRS)'로 통신구 안 온도의 이상 변화를 감지하고 에어로졸 소화기로 화재를 조기 진화하도록 만들어졌다.

작년 8월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주최한 지하 탐사 로봇 경진(서브T챌린지) 대회에선 카이스트가 개발한 '팀코스타'가 2위에 올랐다. 앞서 2015년 재난·구조 로봇대회에 출전한 휴보는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융합기술, 발상 전환으로 한계 극복

재난구조 로봇 기술은 미국과 일본이 앞서 있다. 한국은 후발 주자이지만 선진국이 개발한 로봇의 장점을 결합한 융합 전략으로 추격 중이다. 암스트롱이나 재난 대응 특수목적 기계는 일본 히타치가 개발해 후쿠시마 원전에 투입한 로봇과 외형은 비슷하다. 하지만 사람 동작대로 멀리서 조종하는 방식을 도입해 실제 사람이 작업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국내에서 가장 먼저 상용화한 5G 기술 덕분에 대용량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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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스패너도 거뜬 - 지난 3일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로봇실험동에서 박종원(맨 왼쪽) 박사가 재난구조 로봇 암스트롱(ARMstrong)을 조종해 스패너를 들어 올리고 있다. 암스트롱은 볼트 같은 작은 물건뿐 아니라 한쪽 팔당 100kg까지 들 수 있다.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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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개발에 대한 발상의 전환도 이뤘다. 국내 로봇업체 로하우는 기존 중장비를 원격조종 로봇으로 바꾸는 '고스트 장비'를 개발했다. 중장비의 속도 조절 페달과 장비 동작용 레버에 이 장비를 장착하면 조종자의 신호대로 장비가 움직인다. 고스트 장비만 있으면 사고 현장에서 일반 중장비가 원격조종 로봇으로 변신한다.

◇재난구조 로봇 시장 8%씩 성장

재난구조 로봇 시장은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모도르 인텔리전스는 2019년 22억7000만달러 규모인 글로벌 안전 로봇 시장은 매년 8% 안팎으로 성장해 2025년 35억9000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대부분 군용 정찰, 감시 로봇이지만 최근 민간 재난구조 로봇 시장도 급성장 중이다. 김상배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 로봇 연구자들은 실제 재난 현장에 쓸 수 있는 로봇을 목표로 삼았다"며 "극한 상황에서 작동하는 재난구조 로봇은 산업이나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 발 달린 미니 치타, 1초에 3.7m 질주]

진풍2 등 로봇 개 잇따라 개발… 두 발 로봇보다 균형 잘 잡고 빨라

재난 현장에서 탐색견은 구조 요원의 든든한 동반자다. 앞으로는 네 발 달린 로봇개가 탐색견을 대신할 전망이다. 재난 현장처럼 바닥이 울퉁불퉁한 곳에서는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바퀴 혹은 무한궤도가 달린 로봇이나 두 발 로봇보다 네 발 로봇이 훨씬 유리하다. 로봇개는 재난 현장을 누비며 현장 상황과 위험한 작업을 대신하고, 조난자를 찾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머리에 로봇팔을 단 사족(四足) 로봇개 '진풍2'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진풍은 진돗개와 풍산개의 앞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다. 키 1m, 무게 120㎏인 진풍2는 펌프로 기름을 압축하고 팽창시켜 동력을 얻는 유압식 구동 장치를 달고 있다. 그만큼 힘이 세다. 진풍1은 60㎏의 짐을 질 수 있지만 진풍2는 100㎏으로 개선됐다. 특히 머리에 달린 로봇팔은 원격 조종이 가능하다. 조종자는 진풍2가 사고 현장에서 보내온 카메라 영상을 보면서 로봇팔을 움직여 닫힌 문 손잡이를 돌리거나 장애물을 치울 수 있다. 조정산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사는 "해외 로봇개에도 팔이 달렸지만, 일상용품 정도의 무게만 들 수 있다"며 "유압식인 진풍2는 로봇팔로 10㎏ 무게까지 들 수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랩스는 기술고문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김상배 교수와 '미니 치타'를 개발하고 있다. 30㎝ 키에 무게가 9㎏인 소형 로봇개다. 초속 3.7m로 이동해 전 세계 로봇개 중 가장 빠르다. 로봇개 최초로 뒤공중제비도 한다. 옆구리와 머리에 카메라와 센서를 장착해 자율주행이 가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해외에서는 미국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지난해 9월부터 로봇개 '스폿'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고급차 한 대 정도로 가격이 비싼 편이다.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가 개발한 로봇개 '애니말'은 AI(인공지능)를 적용해 사람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상황에 맞는 동작이 가능하다. 영국 북해(北海)의 해상 변전소와 취리히의 지하 하수관을 혼자서 점검하는 시험을 통과했다.




이영완 과학전문기자;대전=유지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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