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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가슴으로 읽는 동시] 풍경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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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소리

처마 끝에 달아 놓은 시 한 줄

구름이 못 보고 그냥 가자

바람이 얼른 일어나 읽어 준다

뎅그렁-

-김정옥(1967~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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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소리를 들으러 가볼까. 산사에 가면 이 겨울에도 '뎅그렁뎅그렁' 시를 쓰고 있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보통 시가 아니다. 바람이 읊고 가는 소리시다. 바람이 낭송하는 풍경 시를 들으며 미감(美感)을 높여보는 것도 의미 없지는 않으리. 사물의 아름다움을 읽고 맛보는 건 자신을 아름다움에 물들이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이 시를 줄이면 ‘처마 끝에 달린 풍경이 바람이 불자 뎅그렁 울렸다’는 산문 한 줄이 된다. 이 심심하고 싱거운 글에다 풍경을 ‘시 / 한 줄’로, 구름이 흘러가는 걸 ‘못 보고 / 그냥 가자’로, 바람이 풍경 흔든 걸 ‘얼른 일어나 / 읽어 준다’로, 읽은 시는 ‘뎅그렁’으로, 동심적인 시의 옷을 입히니 산뜻한 한 포기 시로 돋았다. 뎅그렁, 풍경이 쓴 시가 산을 고요히 감싸는 정경이 눈앞에 피어오른다.

[박두순 동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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