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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김창균 칼럼] 석 달 후 여론조사도 함께 심판대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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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법, 공수처법 강행 이어 靑 수사 막는 검찰 학살에도

대통령, 與 지지율 3%p 상승… 暴走하면 민심 얻는다는 건가

조사 신빙성 총선으로 판가름, 여당 심판 땐 共犯으로 몰릴 것

조선일보

김창균 논설주간


지난 주말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하고 있다’는 응답이 47%였다. 직전 조사보다 긍정 평가가 3%포인트 높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도 3%포인트 오른 40%였다. 자유한국당은 반대로 3%포인트 떨어진 20%였다. 격차가 두 배로 벌어졌다.

이 여론조사가 민심 흐름과 일치한다면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은 해보나 마나다. 20%포인트 지지율 격차는 작년 연말 18세 이상 인구 기준으로 880만명에 해당한다. 60% 투표율을 가정할 때 253개 선거구당 여당이 평균 2만표 이상 야당에 앞서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수도권의 박빙 승부에선 2000표 차이만 나도 낙승이다. 그 열 배 격차가 벌어져 있다면 석 달 안에 따라잡기는 불가능하다.

절대적 수치보다 중요한 게 지지율 흐름이다. 집권 세력이 지난 연말 선거법, 공수처법을 강행 처리한 데 이어 자신들을 겨냥한 수사를 막기 위해 검찰 학살 인사를 진행하는 상황에서 대통령 국정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이 3%포인트씩 올랐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집권 세력이 정상 궤도를 벗어나 폭주를 할수록 지지율은 오히려 상승세를 탄다는 것이다. 민심이 이렇게 방향을 잡았다면 야당의 정권 심판론이 어떻게 먹혀들겠나.

4년 전 이맘때 총선 전망도 여당 압승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35% 정도로 앞서 있고, 더불어민주당과 안철수 대표의 국민당은 그 절반 정도인 18% 내외에서 경합하고 있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가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을 차지할 확률이 80%"라고 예측한 것이 2016년 1월 말이었다. 여당이 국회 선진화법의 단독 처리 기준인 60% 의석을 차지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얘기였다. 반면 야당의 승리 가능성은 10%라고 했다. 실제 선거 결과는 그 10% 확률이 맞아떨어졌다. 석 달 새 민심이 급변했던 걸까, 아니면 여론조사가 민심과 동떨어져 있었던 걸까.

그 무렵 박근혜 청와대와 김무성 새누리당 지도부는 볼썽사나운 여권 내분을 벌이면서도 총선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모든 여론조사가 여당이 최소한 과반 의석은 확보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밑바닥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식의 주먹구구 경계론은 과학으로 포장된 낙관론 앞에 아무 힘을 쓰지 못했다. 박근혜 정권은 총선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고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그 지점이 탄핵으로 가는 출발선이었다. 정권에 등을 돌린 실제 민심이 여론조사에 포착되지 않았던 것인지, 조사기관들이 집권 세력의 입맛에 맞춰 결과를 만지작거렸던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다. 그 어느 쪽이든 여론조사만 철석같이 믿었던 박근혜 정권의 방심이 비극을 부른 핵심 요인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두 여론조사 기관이 매주 정례조사 결과를 내놓는다. 발표가 나올 때마다 국민 상당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요즘 여론조사 누가 믿느냐"며 코웃음을 친다. 여야 지지율이야 야당이 워낙 지리멸렬이니 그럴 수 있다손 쳐도 대통령이 국정을 잘한다는 응답 비율이 절반에 가깝다는 수치는 필자도 수긍하기 어렵다. 이 정권의 경제 성적표가 엉망이라는 건 만천하가 인정하는 사실이고, 손댈수록 가격만 치솟는 부동산 정책, 자신들이 내걸었던 입시 원칙을 손바닥처럼 뒤집은 교육정책, 전 정권 흔적을 지운다고 밀어붙였다가 역풍을 맞은 탈원전, 4대강 뒤집기에 이르기까지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뭘 잘하고 있다는 건가. 심지어 자신들이 유일한 업적처럼 꼽았던 대북 정책마저 비핵화는 간 곳이 없고, 북으로부터 "주제넘게 끼어들지 말라"는 구박만 받고 있다.

물론 여론조사 못 믿는다는 사람들이 주류 민심에서 비켜나 있을 수도 있다. 석 달 후 총선을 치르고 나면 여론조사 신빙성 논란도 결판이 날 것이다. 여론조사가 옳았다면 총선에서 여당이 압승할 것이다. 민심을 제대로 전한 여론조사 기관들도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여론조사 예측과 전혀 다르게 여당 심판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조사 기관들도 심판을 면할 수 없다. 민심과 따로 움직인 여론조사가 정상적 판단을 흐리는 환각제 역할을 한 탓에 정권의 폭주를 유도했고, 그 결과 국정까지 멍들게 한 셈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여론조사 기관의 실력 부족 탓이라면 신뢰를 잃는 것으로 그치겠지만, 거기에 고의성이 작용했다면 국정 농단에 공모한 범죄 집단으로 몰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김창균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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