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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임규태의 코덱스]수도원 식당의 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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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조지아공대 기업혁신센터 수석고문]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 유서 깊은 이 수도원 식당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벽화가 있다. 이
이데일리

그림의 제목은 ‘최후의 만찬’. 그렇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묘사한 예수와 12제자의 마지막 식사 장면이 그려진 곳은 ‘식당’이었다. 최후의 만찬은 극적인 상황과 신학적 함의 덕분에 여러 화가들에 의해 묘사되었지만 오직 다빈치의 작품만이 예술적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무엇이 다빈치의 작품을 특별하게 만든 것일까.

첨부한 사진을 보자. 식당 한쪽 벽면을 온전히 활용한 벽화는 대칭형 3차원 구도로 그려져 있으며, 그 소실점의 중심에 예수가 앉아 있다.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의 복 받은 수도승들은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마다 예수 그리고 12제자와 함께 한다는 감동을 느꼈을 것이다. 이 그림에 감명 받은 프랑수아 1세는 그림이 그려진 벽을 통째로 프랑스로 떼어가려 했다. 그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우리는 르부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옆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감상하고 있을지 모른다.

안타깝게도 ‘최후의 만찬’은 다빈치의 몇 안 되는 진품 중에서 가장 많이 훼손된 작품이다. 이 걸작을 누가 망가뜨렸을까. 범인은 바로 다빈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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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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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벽화는 프레스코 기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프레스코 기법은 벽에 석회를 바르고, 벽이 마르기 전에 수용성 물감으로 채색한다. 석회 자체를 채색하기 때문에 벽이 무너지지 않는 한 그림은 소멸하지 않는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가 대표적인 프레스코 벽화이다. 하지만 다빈치는 프레스코 기법을 거부하고 일반 회화에서 사용하는 템페라 기법을 사용했다. 템페라 기법은 석회 벽이 완전히 굳기를 기다렸다가 그 위에 계란 노른자를 안료에 섞은 물감으로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다빈치의 실험 정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멈췄어야 했다.) 프레스코는 석회 자체를 채색하기 때문에 석회가 마르면 광택이 사라진다. 다빈치는 완성 후에도 물감의 광택이 살아나도록 석회 벽에 기름 코팅을 하고 그 위에 템페라 물감으로 채색했다. 그의 아이디어 덕분에 수도원 식당의 높은 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면 다빈치의 그림은 신비한 광채를 내뿜었을 것이다. 처음 몇 해 동안은….

문제는 ‘최후의 만찬’을 그린 장소가 ‘식당’이었다는 사실이다. 수도승들이 매일 이용하는 식당과 부엌에서 나오는 습기 때문에 석회 벽에 그린 물감이 온전히 마를 틈이 없었다. 결국 이 걸작은 완성된 지 10년도 되지 않아 그림이 갈라지고 색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빈치 자신도 이를 보완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프랑수아 1세가 벽을 떼어가려던 이유도 이 걸작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수백 년에 걸쳐 11명의 작가들이 복원을 시도했지만, 오히려 원본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산으로 가버렸다. 이탈리아 정부가 1970년부터 수천억 원을 들여 복원을 시도했지만, 완전한 복원은 요원하다.

다빈치는 왜 프레스코가 아닌 템페라 기법을 사용하는 무모한 실험을 감행했을까. 프레스코 벽화는 석회 벽이 마르기 전 몇 시간 내에 채색을 완료해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는 천재 다빈치에게 정해진 계획표대로 수 시간 내에 그려내야 하는 프레스코 작업은 적합하지 않았다. 반면 마른 벽 위에 채색하는 템페라 기법은 충분한 여유를 갖고 작업할 뿐 아니라,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했다. 결국 다빈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 템페라 기법을 선택한 것이다.

다빈치가 사망한지 500년의 세월이 흘렀다. 밀라노를 방문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은 그가 남긴 ‘최후의 만찬’을 보기 위해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으로 몰려든다. 다빈치의 작품이 원본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훼손되었지만, 그 예술적 가치는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생각의 힘’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은 점점 생각하지 않는다. 인터넷, 스마트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발달과 정보의 홍수는 현대인의 사고 능력을 퇴화시키고 있다. 그들은 선뜻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한다.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사안에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누군가의 말을 앵무새처럼 전달할 뿐이다. 다빈치가 통탄할 노릇이다.

현대인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퇴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교육’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초중고 포함 12년 동안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는다.(할렐루야!) 학력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하는 대한민국의 대학 진학률은 70%에 달한다. 단연 세계 1위이다.(할렐루야!)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대학과 유치원을 포함 무려 20년 가까이 교육을 받는다는 말이다.

문제는 현대 교육이 ‘답’을 기반으로 구축되었다는 사실이다. 답이 있는 지식만 교육 과정에 포함될 수 있다. 답이 없는 지식이 교육 과정에 포함될 수 없는 이유는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답이 반드시 정답일 필요는 없다. 국가가 정하면 그것이 답이다. 이런 교육 시스템에서 학생들은 자신만의 답을 찾을 필요가 없다. 찾을 시간도 없다. 학생이 온전한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만의 답을 찾는 행위는 일탈로 규정된다.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이다.

다빈치의 천재성은 그가 받은 교육 덕분이었다. 사생아로 태어난 그는 정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학교 근처에도 갈 수 없던 그에게는 온 세상이 학교였다. 그의 스승은 하늘을 나는 새, 흐르는 시냇물, 식물, 동물, 해, 달, 별, 인간(시체)이었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가의 삶을 기록한 조르지오 바사리는 ‘최후의 만찬’ 작업을 하던 다빈치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며칠씩이나 그림에 손대지 않고 벽 앞에 앉아서 명상에 잠겨 있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긴 시간동안 정해진 답을 찾는 훈련을 받은 현대인에게 현실은 악몽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정해진 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에는 답이 있는지 없는지 조차 알 수 없는 문제들이 더 많다. 20년 동안 정해진 답을 찾도록 강요해놓고 이제 와서 스스로 답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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