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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검사가 제재심서 판사 역할까지..乙 금융사엔 '기울어진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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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제재심 둘러싼 논란들

민간위원이 다수이지만‥금감원 직원도 대거 참여

제재심 법적근거 미약하고 공정성 결여 지적도

"합리적 절차 마련…대심제하며 징계 감경 효과 봐"

이데일리

[그래픽=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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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순원 김인경 기자] 금융감독원의 제재심의위원회(제재심)는 금융권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금감원장의 자문기구지만, 실제로는 금감원의 검사를 받은 뒤 문제가 적발된 금융기관과 임·직원의 징계수위를 결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지난 2014년 회장과 행장의 권력 다툼으로 비화했던 ‘KB 사태’ 당시 금감원은 제재심을 거쳐 최고경영자(CEO)인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KB국민은행장을 중징계해 사퇴시켰다. 같은 해 저축은행 부당지원을 했다가 징계를 받은 김종준 하나은행장도 금감원의 제재심의 판단에 따라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제재심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셈이다.

금감원장은 제재심의 결정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다. 14일 윤석헌 금감원장은 관심이 모아진 해외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제재심에 대해 “제재심의 결과를 존중할 것”이라고 했다. 제재심이 결론을 내리면 수용하겠다는 의미다.

재판처럼 대심제 적용..금감원 “반론권 보장”

제재심의 결정은 여러 단계를 거친다. 금감원 검사국의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징계수위 초안을 정하면 금감원 내부의 별도조직인 제재국이 다시 살펴 수위가 적정한 뒤 판단해 이를 해당 금융기관과 임직원에게 통보한 후 제재심에서 결정하는 방식이다.

특히 DLF 사태처럼 사회적 파급력이 커 중징계가 예상되는 사건은 금융당국(금감원 3명, 금융위 1명) 4명, 민간위원 5명으로 구성되는 제재심에서 징계 수위를 결정한다. 민간위원이 과반 이상이다. 등록된 17명의 민간 제재심의위원 중에서 제재심이 열리기 한 주 전에 무작위로 배정된다.

제재심 자체도 지난 2018년 4월부터 대심제를 적용하고 있다. 재판 과정과 비슷하다. 원고에 해당하는 금융감독원 검사부서와 피고에 해당하는 금융회사가 공방을 벌이는 방식이다. 금융회사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판단의 공정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제재심 5영업일 전부터 금감원 제재조치안을 금융기관이 미리 볼 수도 있다. 금감원의 칼을 미리 살펴보고 스스로 방어할 방패를 마련할 시간을 주겠다는 의미다. 재재심이 끝나더라도 결과에 이의를 신청할 수도 있다.

검사가 판사까지..‘기울어진 운동장’ 지적

하지만 제재심의 운영방식이나 결과물을 두고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제재심은 여전히 금감원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 가깝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금감당국이 제재심 위원의 상당수(4명)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된다. 게다가 제재심의 위원장은 금감원 수석부원장이다. 검사가 재판에서 판사 역할까지 겸하는 셈이다. 실제 지난 2016년 이후 제재심의 97%는 금감원 검사국의 징계 원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검사가 판정까지 내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론적으로는 제재심이 끝난 뒤에도 이의신청이나 법원의 행정소송도 가능하지만, 을(乙)인 금융회사가 인·허가권을 가진 금융당국과 대립각을 세우기는 부담스러운 게 현실”이라며 “제재심 과정에서 금융회사의 얘기를 충분히 듣고 판단 과정에서 이를 반영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제재심 지위 법적 근거도 약해

제재심이 금감원장의 자문기구임에도 불과하고 법적인 근거조항이 미약한데 지나치게 큰 권한을 부여한 것 자체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제재심의 설치근거는 관련 법령이 아닌 감독 규정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금감원의 제재심처럼 1심 재판 역할을 하는 전원회의를 공정위 위원장이 주재하고 공무원도 참여하지만, 관련법에 명확한 근거가 써 있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자문기구인 제재심의 결정이 금융사 지배구조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권한이 큰데, 법적으론 근거가 미약한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관계법에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독립성을 확보해야 논란이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감원의 설명은 다르다. 제재심에 오른 대부분의 징계 건은 당사자가 서면으로 검사국의 지적을 수긍하고 결과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보내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 금융기관과 법률대리인이 참석해 열리는 대심제 사건의 경우에는 징계 수위가 낮아지거나 수위가 유지되더라도 과태료 등이 줄어드는 등 금융회사의 입장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금감원은 설명한다.

금감원 관계자는 “충분히 증거를 확보하고 수용할만한 징계수위를 제시하려고 노력한다”면서 “대심제 이후 수정의결된 경우가 줄어드는 수치만 가지고 공정성 논란을 제기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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