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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 (토)

여중생 귀가길, 아이 셋 외출…수요 폭증 ‘돌봄 운송’, 택시법은 해결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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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밤 10시 대치동 은마사거리 학원가 도로변. 자녀를 기다리는 학부모 승용차들 사이에 타다가 섞여 있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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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밤 10시 40분. 서울 대치동 은마사거리 학원가 도로는 자녀를 마중 나온 승용차로 가득찼다. 롱패딩 차림의 학생들이 부모 차에 오르는데, 한 여학생은 스마트폰에서 무언가를 확인한 후에야 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타다'가 그 앞에 멈춰섰다. 차 안에는 타다 기사 뿐이었다. 여중생 조모(14)양은 “6개월 전부터 타다로 학원에 다닌다”며 “혼자 타도 안전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잠시 후 도착한 다른 타다에 탑승한 여고생은 “엄마가 데리러 못 오시는 날에 타다를 불러주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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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트가 장착된 마카롱택시에 탑승한 기자의 3ㆍ5ㆍ7세 자녀. 카시트 택시는 서울에만 운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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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전 9시 50분. 스마트폰 앱으로 마카롱택시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왔다. 민트색 택시 안에는 유아용 카시트가 장착돼 있다. 앱으로 예약 신청한 카시트다. 3세 막내는 카시트에, 5ㆍ7세 아이는 뒷좌석 안전벨트에 고정한 뒤 택시 조수석에 올랐다. 기자가 자녀 셋을 모두 데리고 택시에 타는 것은 처음이다. 아이 하나일 때는 품에 안고 탔지만, 아이가 셋이 된 이후로는 엄두도 못 냈었다.



미래산업 키워드 '돌봄', 운송에도



지난주 막을 내린 세계 최대 가전ㆍIT 전시회 ‘CES 2020’의 씬스틸러는 삼성전자가 처음 공개한 케어 로봇 ‘볼리’(Ballie)였다. 로봇 청소기를 돌리고 반려견과 놀아주는 볼리의 모습은 '돌봄'이 미래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란 메시지를 주기에 충분했다.

운송에도 돌봄 수요가 폭증하고 있다. 이는 타다와 마카롱택시의 2019년 고객 데이터로도 확인됐다.



① 카시트 필요한 영유아



마카롱택시 운영사인 KST모빌리티에 따르면, 지난해 마카롱 직영택시 이용객의 27%가 카시트를 신청해 사용했다. 마카롱 앱에서 일주일~하루 전 예약하면 카시트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영유아 부모에게 입소문을 탔다.

도로교통법 개정으로 2018년 10월부터 6세 미만 영유아의 카시트 이용이 의무화됐다. ‘버스·택시 탈 때 카시트를 들고 다니란 말이냐’는 부모들의 반발 때문에 당국의 단속은 아직 없다.

카시트를 갖춘 운송 서비스는 마카롱 직영택시가 유일하다. 문제는 서울에서만 운행하고, 차량도 50대로 적다는 것. 전날 예약을 신청하면 안 될 때가 많았다.

타다는 카시트를 제공하지 않는다. 고객이 카시트를 들고 타야 한다. 그럼에도 ‘카시트를 설치할 때까지 기다려줬다’는 것만으로도 맘카페나 인터넷 커뮤니티에 후기가 올라올 정도다.



② 청소년ㆍ노인 ‘태워보내기’



타다를 운영하는 VCNC에 따르면, 2019년 4분기 대치동 학원가를 목적지로 한 탑승은 전년 동기 대비 1000% 성장했다. 현재는 월 1000건 이상이다. 맞벌이로 바쁜 ‘타임푸어’ 부모를 대신해 자녀의 학원길을 라이딩하는 것이다. 부모는 앱으로 자녀가 승차한 차량의 기사 신원, 이동 경로를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어린이집·유치원이나 초중고 학교를 목적지로 한 ‘등교 라이딩’을 위해 타다를 이용하는 경우도 전년 동기 대비 9배가 됐다. 눈ㆍ비가 내리거나 미세먼지 지수가 ‘나쁨’인 날은 콜이 증가한다. 단거리라도 어린 아이와 걷기가 부담스러운 날이다. VCNC의 모회사 '쏘카'의 성상현 홍보팀장은 “조부모가 아이를 돌보는 가정의 증가세가 반영된 것”이라며 “운전이 부담스러우신 조부모님들이 타다를 타고 함께 등원하신다”고 했다.

병원 목적지의 타다 탑승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10배로 늘었다. ‘환자 라이딩’이다. 타다 측에 따르면 ‘부모님 병원 예약과 개인일정이 겹쳐 타다를 불러드렸다’는 고객 후기가 많다고 한다.



③ 속도보다 안정



돌봄운송의 방점은 속도보다 안정성에 찍힌다. ‘급해서 탄다’는 기존 택시 수요와 다르다. 마카롱택시는 전체의 40%가 월 4회 이상 예약해 이용하는 단골 고객이다. 김형준 KST모빌리티 홍보실장은 “자녀 등하교 시간에 맞춘 반복 예약 같은, 정기 이용객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이런 고객은 급해서 택시를 부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동 중의 편안함에 관심이 높다”고 했다.



국토부 택시법에서, 돌봄운송 될까?



국토교통부의 택시개편안이 허락한 플랫폼 택시 3종은 '①운송 ②가맹 ③중개'다. 돌봄 운송은 이 중 어떤 사업 형태에서 가능할까?

1번 ‘운송’에서 차별화된 서비스가 나올 확률이 가장 높다. KST모빌리티가 법인택시 면허를 인수해 운영하는 마카롱택시 50대가 여기 해당한다.

문제는 돈이다. 택시 면허를 구입하거나 택시업계에 기여금을 내야 1번 사업을 허가해주는 것이 여객운수법 개정안의 내용이다. 고객 수요가 있어도 차량을 늘리기 어려운 구조다. 서울의 법인택시 면허 인수가는 대당 5000만원 전후로 알려져 있다.

2번 ‘가맹’은 기존 개인·법인택시와의 제휴인데, 어디까지나 '협업'이기 때문에 기사에게 운행 방식을 강제할 수 없다. KST모빌리티가 개인택시와 제휴해 기사 교육 후 서비스하는 ‘마카롱파트너스’에는 카시트 서비스가 없다.

3번 ‘중개’는 카카오T나 우버택시 같은 호출 서비스다. 기사와 승객을 연결해 줄 뿐, 운행에 개입할 여지가 적다.



정부도 서울시도 ‘돌봄운송 해봤지만…’



돌봄운송을 제공하려는 ‘관’의 시도는 있었다. 지난해 5월말 보건복지부는 예산 12억원을 들여 장기요양 재가 어르신을 위한 ‘돌봄택시’ 사업을 시작했다. 복지부가 노인 1인당 월 5만원까지 요금을 지원하고,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이 승합차 50대와 기사, 콜센터를 갖춰 운영했다. 장기요양 1~4등급 노인 7만여 명이 이용할 거라 예상됐다. 하지만 7개월간 이용한 노인은 4553명에 그쳤다. 이용 건수는 2만5029건으로, 차량 1대당 하루 3회 운행한 셈이다. 전화로만 예약받고 평일에만 운행하는 점 등이 장애물로 꼽혔다.

서울시가 지난해 3월 홍보했던 여성 전용 택시 ‘웨이고 레이디’도 마찬가지다. 여성 기사가 운전하고 카시트를 갖춘 여성 전용 택시를 2020년까지 500대로 늘리겠다고 했으나, 3개월간 시범운영 후 현재는 중단된 상태다. 웨이고를 운영했던 타고솔루션즈를 인수한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서비스를 재개하려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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